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7-02-26   1380

[판결비평-판결읽기3] “비공개로 일관한 정부 손을 든 편협한 판결”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도 못보는 정보?

지난 2월 2일, 서울행정법원은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의원과 강기갑 의원의 ‘한미 FTA 협정문 초안’ 정보공개 청구를 기각한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한미 FTA 협정문 초안’은 “정보공개법 제9조 1항의 2조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아는 것이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면 우리의 국익은 누가 지켜준다는 말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게다가 행정부의 몇몇 고위 관료들이 밀실에서 국가의 운명을 제멋대로 좌지우지 하는 현재와 같은 상황을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아니면 어느 누가 통제할 수 있단 말인가.

행정부의 통상독재를 막기 위해 국회는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한미 FTA 협정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알 권리가 있다. 사실 우리 측 협정문 초안은 이미 미국 통상대표부의 협상단에 공개가 되었기 때문에 비밀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는 한국과는 반대로 미국의 통상법 조항에는 FTA 협상을 시작하기 전부터 진행과정에 이르기까지 의회에 충분하고도 완전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02년 미국 무역법에는 통상협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국내실업 대책, 피해분야 기업대책, 농민대책 등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미국은 상ㆍ하원 의원들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에게도 협정문 초안을 공개하고 있으며, 각 분야의 자문위원들과 산업계가 한미 FTA의 협상목표 수립, 협상 도중 목표의 수정, 협상 완료 후 평가 등의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산업계의 전문가들을 비롯한 700여 자문위원 그룹과 26개의 자문회의를 통해 한국의 협상전략 및 협정문 등에 대한 종합적 분석을 하고 있다.

미국이 협정문 초안을 공개했다는 그 구체적인 증거는 이미 알려져 있다. 수백 개 제약 관련 기업을 회원으로 둔 미국의 한 협회는 미 무역대표부의 민간자문위원회에 의견서를 보내 “한ㆍ미 FTA 협정문에 대한 몇 가지 수정을 제안한다”면서 그 대상으로 의약품의 특허권, 독점권 등을 언급했던 것이 밝혀졌다.

특히 의견서는 “지적재산권에 관한 장 제9조”에 대해 “동일 또는 유사품목”에서 ‘유사’란 표현은 삭제돼야 한다거나 “제8조의 (7)(a)-(b)항은 특허기간 연장을 최대 5년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등 구체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이와 같은 문서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 정부의 한미 FTA 협정문 공개가 있었다. 미국 의약품 업계의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은 한미 FTA 협상문 초안을 공유했으며, 한 자리에 모여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구체적 내용에 대해 협의를 벌였던 것이다.

진정한 국인을 위해 법원은….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여태껏 통합협정문이나 초안, FTA를 결정하게 된 배경, 안건을 소상하게 설명하는 대외경제위원회 자료를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이와 같은 통상독재는 국회를 허수아비 거수기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법원은 이번 사건에 대해 정부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국익’에 대한 정부 측의 주장만을 수용한 편협한 판결을 내렸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이런 정도라면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편협한 판결을 내렸던 사법부와 다를 바가 무어가 있겠는가.

정보의 공개와 다양한 의견수렴을 통한 의사결정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상태에 빠져 있다. 과거의 역사는 친일반민족행위, 노근리ㆍ경산 코발트 광산ㆍ대전형무소 등에서 대규모 민간인학살, 광주 5ㆍ18학살, 인혁당 사건ㆍ동백림 사건 등 간첩조작사건의 배경에 국익을 빙자한 정보독점과 비밀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국민의 알 권리와 진정한 국익을 위해서 한미 FTA 협정문 초안을 비롯한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진정한 용기를 가진 법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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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표(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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