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0-11-29   4085

[25차 판결비평②] 배심재판은 사실심의 최종심이다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국민참여재판은 1심 형사재판에서 배심제를 채택하여 사실판단에 대한 평결과 양형의견을 배심원들이 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내린 1심 판결에 대해서는 일반 형사재판과 마찬가지로 항소가 가능합니다.
 
이번 [판결비평- 광장에 나온 판결]의 대상이 된 판결들은 배심원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이 판결들은 배심원의 결정을 왜 존중해야 한다고 했을까요? 우리 사법제도에 새롭게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은 어떤 방식이 되어야 할까요?
 
국민의 사법참여와 사법제도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라는 도입취지를 살리는 국민참여재판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아래 비평문들을 읽으면서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25차 판결비평①] “이웃의 법률문제를 주인 된 입장에서 스스로 해결”하는 재판
[25차 판결비평②] 배심재판은 사실심의 최종심이다
[25차 판결비평③] 배심판결 존중은 사법 정당성 확보를 위한 것

판결비평 원문
JWe201011290a.pdf

<사건의 개요>
○ 사건 1.
2008년 8월 피고인이, 모텔에서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진 피해자를 찾아가 주먹으로 때리고 시가 290만원 상당의 금목걸이를 강취하였다는 공소사실(강도상해)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서울남부지법)은 상해부분만을 인정하여 징역 10월을 선고. 이후 항소심(서울고법)에서는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 6월을 선고하였음. 그러나 대법원은 상고심에서 다시 원심을 파기하고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제1심에서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한 평결 결과를 받아들여 강도상해의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으나, 항소심에서는 피해자에 대하여만 증인신문을 추가로 실시한 다음 제1심의 판단을 뒤집어 이를 유죄로 인정한 사안에서, 항소심 판단에 공판중심주의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원칙의 위반 및 증거재판주의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판시하였음

○ 사건 2. 
2007년 12월 피고인이 피해자와 함께 술을 마시던 중 피해자와 말다툼 끝에 목을 졸라 실신케 하고, 이후 과도로 찔러 실혈하여 사망하게 한 범죄사실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청주지법)은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6년을 선고했음. 항소심(대전고법)에서는 피고인의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심신미약 주장에 대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채 이를 배척한 제1심 판결을 파기하되 배심원들의 양형의견이 적정하다고 보아 이를 존중하여 제1심판결의 형량을 유지”하였다고 판시함


25차 판결비평 – 광장에 나온 판결②

배심재판은 사실심의 최종심이다

김희균 교수(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무죄-유죄-무죄로 바뀐 사건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유죄, 3심에서 다시 무죄가 난 사건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무슨 재판인지 전혀 내막을 모르면서도 판결문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시쳇말로 구미가 당긴다. 하지만 구경꾼에 불과한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는 재판이란 피고인과 피해자의 시각으로 보면 악몽과 다름없을 것 같다. 몇 달 사이를 두고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느낌이 왜 들지 않겠는가!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볼 판결이 바로 그런 경우다. 특히 시작이 국민재판이었던 사건이므로, 더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피고인은 미성년자 성매매를 하고 있는 피해자를 위협하여 금품을 뜯어낼 목적으로 여러 사람을 대동하고 여관방에 쳐들어간다. 피해자에게 주먹으로 상해를 가해 코뼈를 부러뜨리고, 돈을 보내라고 위협하고, 급기야 피해자 목에 건 금목걸이를 들고 나왔으며, 그걸 팔아 돈을 챙겼고, 같이 갔던 사람에게 자기 이름을 허위로 대라고 부탁(?)했다. 상식적으로 이 정도 짓을 저질렀으면 징역 3년 6월 정도는 살고 나와야 한다고 본다. 바로 2심이 선고한 형량이 징역 3년 6월이다. 그럼에도 1심은 강도상해죄가 아닌 상해죄만 인정해서 징역 10개월의 솜방망이 처벌을 택했다. 왜 그런 것일까? 배심원들이라 잘 몰라서 그런 것일까?

배심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릴 경우

배심원들이 잘못된 판결을 내린 예는 너무도 많다. 배심원이란 좋게 말해 주권자인 국민이고 사실은 어중이떠중이들이어서, 변론에 속고 증거에 속고 인상에 속고 분위기에 속는다. 그런 게 다반사다. 배심제의 모국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에서도 배심원들의 판결을 다 믿은 게 아니다. 배심재판에 진 사람들이 배심원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기도 했고, 판결을 잘못 내렸다는 이유로 배심원들에게 형벌을 부과하기도 했다. 배심원들의 재판이어서 그 결과를 최대한 존중했다는 얘기는 전설이지, 사실이 아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배심원이 직업법관보다 엄정한 판단을 해 줄 거라는 생각은 미국인들의 상식이 아니다. 그랬다면 설시(instructions)가 그렇게 길고 치밀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만장일치 판결을 집요하게 요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판결의 질로 볼 때 배심재판은 직업법관의 재판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정황증거나 증거서류를 보고 진실을 발견해 가는 능력에서 배심원들은 직업법관과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은 프랑스 국민의 힘을 믿었다. 장장 1년에 걸친 고민 끝에 형사배심을 도입하기로 한 이유도 프랑스 국민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140년에 걸쳐 프랑스는 배심재판으로 인한 폐해를 뼛속깊이 경험한 나라의 하나로 등록되기에 이른다. 25%라는 천문학적 무죄율을 못 견뎌 2차 대전이 한창이던 때에 배심제를 전격적으로 폐지해 버렸다. 

프랑스 국민의 힘 vs. 25%라는 무죄율

직업법관이 아닌 일반 국민들이 하는 재판이란 본질적으로 못 믿을 재판에 가깝다. 특히 우리처럼 조서나 증거서류를 낭독하여 증인신문에 대신하고, 무슨 법률용어들이 난무하는 와중에 배심원들이 “증인의 태도를 보고 진위 여부를 가”릴 거라는 기대 자체가 정상적인 기대가 아니다. 형사재판의 속살을 깊이 헤집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오늘 우리가 보는 판결에서도 배심원들의 판단실수가 눈에 띤다. “피고인이 이 사건 모텔 방에 들어와 약 1분 뒤에 피고인을 때렸고 그 후 1시간 정도 있다가 나갈 때쯤 금목걸이를 가지고 갔”으므로 폭행과 재물강취의 시간적 간격이 있어서 강도상해가 아니라고 한 부분이 특히 문제다.

이에 대하여 상식線에서 판단해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하고 피해자의 목에서 금목걸이를 벗겨 갔으며 그 후 그 금목걸이가 없어진 것은 분명하고[…]피고인이 금목걸이를 벗겨 가기 전에 피해자에게 돈을 요구하였던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금목걸이를] 가져갔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한다고 본다. 즉, 돈을 갈취하기 위해서 여관방에 침입한 피고인이 금목걸이(사안에서 피해자는 도금한 것이라고 피고인에게 말함)를 집었다가 냉장고 위에 놓고 나왔는데 그 후에 없어졌으므로 피고인이 취득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에서 강도상해 부분을 무죄로 한 것은 정황증거(피고인이 사건 다음날 돈뭉치를 들고 있었다는 점과 금목걸이가 그후 없어져 버린 점)를 고려할 때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요컨대, 심정적으로 2심의 판단이 옳다고 본다.

그럼에도 국민참여재판의 결과를 상소심이 뒤집는 것은 찬성할 수 없다.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라 상소에 관한 한 형사소송법의 규율을 받게 되고, 형사소송법 제361조의5에 규정된 총 11개의 항소이유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국민참여재판의 결과를 상소심에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항소가능성을 열어 둔 것은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해서 위헌이라는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반대론을 무마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배심재판이 사실심에 관한 최종심인 것이 당연히, 원칙이다. 영국이 그렇고, 미국이 그렇다. 상식 선에서 1심의 판단은 말이 안 된다, 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1심 판결을 뒤집는 것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관할 위반이다. 1심의 사실인정은 “증거가 전혀 없이 내린 판단”이 아닌 한 1심 배심원의 전권사항이다. 법적으로는 2심 법관 3명의 합의로 1심의 사실판단을 바꿀 수 있는 게 맞지만, 그것은 배심재판과 국민참여재판의 본질을 외면한 법 해석론이다.

배심재판은 사실심에 관한 최종심

다행이 우리 대법원은 상고심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배심원이 증인신문 등 사실심리의 전 과정에 함께 참여한 후 증인이 한 진술의 신빙성 등 증거의 취사와 사실의 인정에 관하여 만장일치의 의견으로 내린 무죄의 평결이 재판부의 심증에 부합하여 그대로 채택된 경우라면, 이러한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증거의 취사 및 사실의 인정에 관한 제1심의 판단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및 공판중심주의의 취지와 정신에 비추어 항소심에서의 새로운 증거조사를 통해 그에 명백히 반대되는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현저한 사정이 나타나지 않는 한 한층 더 존중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현행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불안한 시각이 팽배해 있다. 무엇보다 배심원들이 내린 결정에 ‘이도저도 아닌’ 권고적 효력만을 부여한 것이 그렇고, 원칙은 만장일치․안 되면 다수결 식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의사결정 구조를 고안한 것도 그렇고, 국민참여재판의 본질과는 거꾸로 가는 이런 규정들이 보통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 거기다가 항소가능성까지 무분별하게 인정하게 되면 국민참여재판은 참여재판이 아닌 참관재판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항소가능성 제한해야

앞서, 배심원 재판은 못 믿을 재판이라고 했다. 믿든 못 믿든 그것은 국민들의 몫이다. 지금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배심원을 두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그랬다면 배심원을 국민의 대표로 대우해 주어야 한다. 결정을 존중하는 것, 그것 이상의 대우는 없다.

첨부파일: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