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6-03-17   1431

[비평칼럼] 교육을 위해 기증된 공적재산을 사유재산으로 환원시킨 판결

상지대 정이사 선임 무효 확인 사건

지난 2월 14일 서울고등법원 제5민사부(재판장 조용호, 김환수, 김운호 판사)는, 상지대 임시이사들이 임시이사체제를 종료하여 정이사를 선임할 때 비리혐의 등으로 물러났던 과거 이사들과 협의없이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사립대의 경영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무효라고 판결하였습니다.

2심 재판부의 이같은 판결은 , 과거 이사들은 이미 임기가 종료되어서 소송 제기의 자격이 없다고 판결한 1심 판결(2004가합52)을 뒤집은 것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임시이사의 권한을 제한적으로 해석하고 부패 혐의로 물러났거나 이사취임 승인이 취소된 과거 이사들과 정이사 선임을 협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교육부에 의해 선임된 임시이사의 권한과 의무는 정이사와 동일하다’는 종래의 대법원 판단과도 배치되는 것이며 공교육기관으로서 사립학교의 특성을 무시하고 개인의 사적재산으로 본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과연 사립학교의 임시이사는 그 임기를 종료할 때 비리혐의 등으로 물러난 과거 이사들과 정이사 선임을 협의해야 하는 것인지 공론의 장에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 판결을 비평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비평칼럼은 임재홍 교수(영남대 공법)께서 작성해 주셨습니다(편집자 주).

사립학교를 사적 재산으로 본 서울 고법 판결

상지학원 임시이사진에 의한 정이사 선임행위를 서울고등법원 제5민사부(이하 ‘서울고법 민사부’로 약칭)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 임시 이사진은 상지학원 전 이사장이 공금횡령 및 뇌물에 의한 부정입학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전임교원 임용탈락 및 한의과 폐지 등에 따른 학내소요가 끊이지 않는 등 학교의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해지자 교육부가 사립학교법에 따라 선임하였었고, 임시이사진은 설립자 및 전 이사장측과 연고가 없는 자들을 정이사로 선임하였다.

종래 우리 사회에서 사립학교를 둘러싼 갈등은 사립학교를 출연자 개인의 사적 재산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공교육을 위한 물적 수단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시각 차이로부터 출발한다. 서울고법 민사부의 판결은 출연자 측의 이해관계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치를 져버린 것이다. 즉, 서울고법 민사부는 사립학교를 아직도 출연자가 소유하고 있는 사적 재산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재판부는 “임시이사체제에서 학교법인이 정상화되었다면 ‘종전 이사’에게 그 경영권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임시이사진이 ‘종전 이사’를 배제한 채 정이사를 선임해 학교법인의 지배구조를 변경시키는 것은 ‘보상없는 재산권의 수용(收用)’에 해당하는 것으로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의 본질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논거를 통해 정이사선임결의는 무효라는 결론을 내렸다.

보상없는 수용? 이미 증여하였는데?

서울고법 민사부는 학교법인에 교육권, 일반적 인격권, 행복추구권, 평등권, 직업선택의 자유, 학문의 자유, 재산권 등의 기본권주체성을 인정하여 학교법인의 권리영역을 무한정 확장시켰다. 이러한 권리영역의 확대는 최종적으로 헌법 제37조 제2항의 기본권의 본질적 침해금지조항을 매개로하여 법인의 재산권에 대한 박탈금지로 귀결된다.

더구나 이러한 재산권박탈금지를 도출하기 위하여 학교법인의 이사제도의 본질까지 발견하는 엄청난 이론적 작업까지 수행했다. 즉 “설립자에 의하여 선임된 이사 및 그 이사에 의하여 선임된 후임이사에 의하여 학교법인 설립목적이 인적으로 보장되어 영속성있게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 이사제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구재단의 부정입학 등으로 인한 업무방해는 여전히 절대적인 건학이념에 비추어 학교법인의 업무수행에 문제가 없는 것이고 임시이사의 정이사선임은 건학이념을 해치는 불순한 행위로 둔갑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건학이념에 앞서 우리 헌법과 교육기본법은 공교육의 목적을 규정하고 있다. 바로 건전한 시민을 육성하고,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 교육인 것이다. 설립자나 학교법인의 건학이념이라는 것도 홍익인간의 교육이념과 다르다면 그들은 사립학교라는 공교육기관을 설립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재산출연자와 그에 의하여 임면된 이사만이 교육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사제도의 본질론까지 가는 것은 결국 재산권에 대한 보장을 받기 위함이다. 물건에 대한 소유관계를 정해야 한다면 학교와 학교법인의 재산권 귀속에 대해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적인 재산에 대하여 국가가 보상없이 소유권을 박탈했다면 당연히 보상의 문제가 따를 것이다.

서울고법 민사부 판결은 마치 정이사선임에 대한 인가행위를 수용(收用)으로 보고 이것이 사학의 공립화·사회화를 초래하여 학교법인의 경영권과 인사권 등 자율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보상이 없는 재산권의 수용(收用)으로 보아 헌법상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교육부의 정이사선임인가행위가 수용(收用)에 해당하려면 收用대상이 무엇이고 보상을 받는 주체가 누구인지가 선행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판결은 학교법인의 경영권은 법인이사에게 있다고 한다. 이때의 이사란 임시이사가 아닌 정이사(최초 설립시 이사 및 그들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임명한 이사)만을 말한다. 그러나 경영권은 이사가 아닌 학교법인에게 있다(민법 제34조). 학교법인의 경영권박탈이란 경영대상인 학교의 수용(정확히 하면 학교토지나 시설의 수용)인데 정이사선임인가는 학교의 수용이 아니다.

만약 경영권의 주체로서 특정 자연인 예를 들면 재산출연자 혹은 재산출연자인 이사장을 상정하고 그의 경영권을 박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전혀 비법적 논리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사립학교법상 재산출연행위는 증여행위이고(민법 제47조), 증여란 재산출연자가 학교법인에 무상으로 재산을 수여하는 행위이므로(민법 제554조) 재산출연자는 사적인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고 보상을 받을 지위를 갖지 못한다. 설령 특정 자연인을 경영자로 한다 하더라도 보상을 받는 주체는 학교법인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혹자는 학교법인에 대한 증여는 기술적인 표현일 뿐 학교법인의 최초 이사회가 출연자의 입맛에 맞게 구성되어 있지 않으면 출연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증여’라기 보다는 자신의 재산을 완전히 사적인 영역에서 국가의 감독이 일부 이루어지는 공적 영역으로 전환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현실에 맞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법인이 사립학교법상 누리고 있는 혜택은 지대하다. 우선 교육행위 자체에 대해 특허제를 취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허가 자체가 커다란 혜택이다. 그리고, 사립학교법이 학교법인의 재산이나 교육재산에 강제집행 등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과장하자면 ‘학교법인은 부도가 날 수 없다’라는 신화를 만들고 있다. 그와 같은 혜택은 사립학교가 공적재산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며 출연자의 권리나 학교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보호한다면 이와 같은 혜택의 취지가 형해화될 것이다

서울고법 민사부 판결은 비영리법인인 학교법인에 대한 법리를 오해하고 있다. 이런 오해가 발생한 이유는 사립학교를 특정 자연인의 사적 재산이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서울고법 민사부의 판결은 법리에 하자가 중대하여 계속적으로 그 효력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학교정상화’의 의미

고등법원은 임시이사의 지위나 권한은 정이사에 비해 한정적일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임시이사회가 정이사를 선임하는 것은 권한 밖의 결의로서 무효로 본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최초 임시이사가 선임되기 직전의 이사들이 후임이사를 선임할 권한이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지는 학교법인과 학교를 특정 개인의 사적 재산으로 보는 경우에만 타당성을 갖는다. 즉 임시이사를 사적 재산의 임시적 관리자로 본다면 사적 재산에 대한 경영권은 최종적으로 재산출연자나 재산출연자에 의하여 위촉된 이사들에게만 있다는 주장이 가능해질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립학교에서 재산은 공교육을 달성하기 위한 물적 수단에 불과한 것이므로 재산의 소유관계에 의하여 임시이사의 권한이 정이사에 비해서 한정된다고 축소해서 해석할 필요는 없다. 공교육의 계속성이라는 점에서 보면 임시이사도 정이사와 같은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감독관청인 교육부가 파견한 임시이사도 학교의 경영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사로서 교육이념에 따라 학교를 관리하므로 학교경영에 관한 모든 업무에 대한 수행권이 있는 것이고 그중에는 정이사선임에 대한 권한도 포함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대판 2005마53)의 취지에 맞는 것이다. 또한 사립학교법도 임시이사에 대해서 임기상의 제한규정이나 정이사가 될 수 없다는 제한(동법 제25조)을 제외하고는 별도의 권한제한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임시이사회도 정이사선임권한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임시이사가 선임된 것은 학교운영에 심대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인데 임시이사 직전의 이사들에게 후임인사권을 반환한다면 어떻게 임시이사제도의 원래 목표인 학교정상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혹자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임시이사가 설립자 내지는 전 이사진들과 전혀 관련없는 자들을 정이사로 한번이라도 선임하게 되면 설립자는 증여된 재산에 대해 영향력을 미칠 인적 통로가 영원히 없어지게 되므로 누가 사립학교를 설립하겠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사립학교 설립 및 이를 위한 출연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는 것은 정책적 목표로서 교육부가 이사회선임승인신청 등을 심의할 때 설립자의 추천이나 설립자 관계자 들 중에 적절한 사람은 없는지, 지역사회와의 관계 등을 고려하여 차차 달성해나가야 할 것이지 법적으로 강제해야 할 것은 아니다. □

[참고 : 상지대 사건의 경과]

· 1962.3 재단법인 청암학원 설립(설립자 : 원흥묵)

· 1973.11 청암학원 임시이사였던 김문기 씨가 이사장으로 취임, 재단 인수(상지학원으로 명칭변경)

· 1992 한의학과 폐지 등에 따른 학내분규

· 1993.4 공금횡령 및 금품수수에 의한 부정입학 등으로 김문기 이사장 구속

· 1993.4 김문기 이사장 등 이사 전원 일괄 사표

· 1993.5 박재승 이사장 직무대행 신임이사 선임, 교육부에 취임승인신청

· 1993.6 김문기 씨, 업무방해죄와 특가법위반(횡령) 죄 등으로 징역 3년 선고받음(1994.3 대법원 업무방해죄 등에 대해 징역 1년6개월 선고 확정)

· 1993.6 사립학교법 제25조에 의해 교육부, 임시(관선)이사 파견

· 2003.12 임시이사회, 변형윤 등 9명을 정이사로 선임

· 2003.12 교육부, 임시이사회가 선임한 9명의 정이사들의 이사취임승인

· 2004.1 김문기 씨 등, 임시이사회의 정이사 선임결의 무효확인 청구 소송 제기

· 2004.4 춘천지법 원주지원, 김문기 씨 등이 청구한 임시이사회의 정이사 선임결의 무효확인청구 소송 각하

· 2004.4 김문기 씨 등, 서울고법에 항소

· 2006.2 서울고법 민사5부(항소심), 임시회사회의 정이사 선임결의 무효라고 판결

임재홍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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