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5-10-17   1559

노조탄압을 알리는 행위에 “재갈”

[법정 밖에서 본 판결4] 이마트 노동권침해 정당화

참여연대·시민의신문 공동기획

지난 9월 1일 수원지방법원 제30민사부(재판장 길기봉, 최기영, 김강대)는 민주노총 등이 제기한 ‘신세계 이마트 가처분 이의신청’ 재판에서 종전 가처분 결정내용의 상당부분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선고 2005카합564 가처분이의) 광범위하게 노조의 활동을 금지했던 가처분결정을 수원지법 동일 재판부가 결정한지 반년 만이다.

재판부는 지난 3월 신세계 이마트가 신세계 이마트 노조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서 노동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내용을 대부분 수용했다. 당시 법원이 사용금지한 표현은 △노동자 감금과 미행 △살인적인 인권유린 △악덕기업 △무노조 경영이념 등이었다. 이런 내용을 언론매체 등을 통해 알리는 행위와 매장 100미터 이내에서 소란스러운 집회를 여는 것도 금지시켰다. 가처분 결정내용을 위반할 때마다 50만원의 간접강제금을 지급하라는 명령도 내렸다.

종전 가처분 결정내용의 상당부분을 취소한 ‘신세계 이마트 가처분 이의신청’ 재판은 법원의 무분별한 노동가처분 결정에 제동을 건 판결일까. 아니면 노동자들에게 ‘병 주고 약 주는’ 판결이자 사후약방문일까. 노조의 활동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에 노조의 활동을 광범위하게 금지했던 종전 가처분 결정을 좀 더 신중하게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시민의신문>과 참여연대가 공동주최하는 ‘시민포럼-법정 밖에서 본 판결’ 네 번째 주제는 ‘병 주고 약 주는 재판부, 이마트 노조 가처분 사건과 이의신청 인용’이다. <편집자주>

일시: 10월 12일 오후 2시

장소: 참여연대 2층 강당

사회자: 김민영

참석자: 김제완 고려대 법학과 교수, 이종란 이마트 노동조합 조합원,

이정희 매일노동뉴스 기자

▲ 김민영(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김민영: 지난 10일 퇴임한 유지담 대법관이 퇴임사에서 과거 법원의 모습을 반성하는 발언을 했다. 그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신세계 이마트 노조는 가처분 결정으로 인해 심대한 타격과 피해를 입었다. 과연 법원의 애초 판결에 문제는 없었는지, 노동문제 판결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문제는 없는지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제완: 재판부는 처음 3월에는 회사측 가처분신청 내용을 대부분 받아들였다가 9월 이의신청에서는 대부분 취소해 버렸다. 어떻게 보면 노조에 유리한 판결인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처분 제도의 특수성을 따져 보면 사실상 노조를 극심하게 탄압한 판결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번 판결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피케팅을 사전금지시킨 점이다. 사전금지는 표현의 자유와 노동3권을 고려해 신중하게 해야 하는 사항이다. 재판부조차 이의결정문에서 그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애초 사전금지한 표현들을 살펴보면 재판부가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 김제완(고려대 법학과 교수)가처분이의 판결에서는 ‘이마트 수지점이 노동자를 감금하고 미행하고 있다, 살인적인 인권유린을 하고 있다’는 표현에 대해 ‘중대하고도 현저하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힐 우려가 있는 경우보다 더 신중해야 하는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이유로 계속 금지시켰다. 하지만 그 표현들이 그런 요건을 충족하고 있을까. 재판부의 판단에 동의할 수 없다.

이마트가 속해 있는 그룹이 대표적으로, 또는 거의 유일하게, 무노조이념을 갖고 있다는 것은 왠만한 국민들에겐 상식에 속한다. 재판부는 이런 주장이 객관적 사실에 부합한다는 점을 변론절차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일까.

6개월 동안 노조의 활동이 심각하게 제약받았다는 점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잘못된 판결로 인해 올해 3월 24일 가처분결정일부터 9월 1일 가처분이의 판결까지 약 6개월에 가까운 기간 동안 노조원들은 정당한 사유 없이 피켓도 들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결국 이 사건 재판부는 노조원들에게 ‘병 주고 약 준’ 셈이며 노조활동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가 지난 후 노조원들이 받은 ‘승소판결문’으로서의 가처분이의 판결문은 그야말로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이 사건 가처분 절차를 통해 정작 ‘중대하고 현저하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당사자는 가처분 채권자인 회사가 아니라 오히려 노조원들이었다고 본다.

△김민영: 이마트 노조가 가처분 결정으로 인해 입은 실질적 피해가 무엇인지 노조원의 말을 듣고 싶다.

▲ 이종란(이마트 노조 조합원, 노무사)△이종란: 경기지역일반노동조합 신세계이마트분회 창립총회를 열고 노조를 처음 만든 것은 지난해 12월 21일이었다. 노조탈퇴공작으로 인해 조합원 23명 가운데 19명이 무더기 탈퇴하고 4명만 남았다. 그나마 나는 해고당했고 3명은 3개월 정직을 당했다. 다시 정직기간이 끝나고 업무에 복귀했지만 그나마 일주일만에 또 자택대기명령을 받았고 5월 9일자로 해고통보를 내렸다. 그 사이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부당정직과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해 구제명령을 내렸고 검찰에 기소의견을 송치했다. 그러자 신세계 이마트는 해고시킨 조합원들을 지난 7월 5일 갑작스레 복직시켰다가 7월 10일 모두 계약해지통보를 했다.

정말이지 탄압이 너무나 극심해 노조활동이 굉장히 위축됐다. 복직한지 일주일도 안돼 해고당하는 상황인데도 노조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선전을 하려면 무노조경영 얘기를 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알릴 일이 있어도 인터넷이든 언론이든 제대로 알릴 수가 없어 알리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게 돼 버렸다. 알리더라도 스스로 검열을 해서 ‘이마트는 노조탄압 중단하고 노조를 인정하라’가 아니라 ‘이마트는 노조를 인정하라’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유인물 한 장 제대로 낼 수 없었다.

무노조경영이념을 신세계가 갖고 있다는 것은 지점장이 ‘오너가 생각하는 경영 최우선 방침이 무노조’라고 말했던 것에서 나온 말이다. 그 녹취록을 재판부에 제출하기까지 했다. 재판부는 처음부터 사용자측에 기울어진 입장이었다.

△김민영: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한다’는 홍길동의 말이 생각난다. 노조에 불리한 판결이 이뿐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처분 판결 현황이 어떤지 묻고 싶다.

▲ 이정희(매일노동뉴스 기자)△이정희: 2003년 배달호씨가 자살하면서 대두된 손배가압류부터 얘기하고 싶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정당성 없는 쟁의행위는 불법행위가 되고 그에 따른 손배가압류가 가능해진다. 이로 인해 노조활동이 위축되고 탄압받는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는 가처분을 통해 노조활동을 사전에 제약하는 경우가 나타난다. 한 레미콘업체는 레미콘 노동자 파업에 대해 ‘레미콘 노동자는 노동법상 노동자가 아니다’며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농성에 대해서도 ‘이미 해고된 이들이 농성을 하는 것을 막아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노동계는 계속해서 쟁의행위에 대해 가처분을 가하는 조항을 법원이 너무 확대해석해 결과적으로 노동권을 침해한다고 비판한다. 물론 가처분이 무조건 나쁜 제도라고 할 수는 없다. 2001년에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문제가 있을 당시 회사가 노조원 출입을 막자 노조는 이를 막아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가처분 자체보다는 가처분신청 남용을 막는 방안, 법원의 자의적 판단을 규제할 방안이 필요하다. 가처분 요건에 대해 법원이 충분히 심리를 해야 한다. 가처분 결정 과정에서 법원의 과정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김민영: 의문스러운 것은 한국 법원이 과연 사측 요구를 손쉽게 받아들이는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김제완: 법원이 사측의 손을 잘 들어준다고 딱 잘라서 말하긴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다루는 사건 재판관들은 노동사건이 갖는 특수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본다. 사실 많은 국민들도 노동쟁의가 정당하고 ‘합법적’인 활동이라는 ‘상식’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피켓 시위’가 정당한 행위라는 것을 간과하는 경향이 생긴다. 쟁의행위는 결국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쟁의를 하면 업무를 방해받지 않느냐며 쟁의를 비판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비난에 불과하다.

△이종란: 가처분을 당하고 노조활동 자체가 제약당하는 경험을 하면서 재판부가 노동문제를 제대로 모른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심지어 헌법에서 밝힌 노동3권이라도 깜깜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쟁의행위는 분명 노동3권 가운데 단체행동권에 속한다. 노조를 만들고 1주일도 되지 않아 노조와해공작으로 노조가 초토화됐다. 그런 상황에서 피켓 시위를 통한 선전활동은 노조가 취할 수 있는 기본적인 행동이었다. 법원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았다. 우리가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법원은 재갈을 물린 것이다. 재판부의 판결 때문에 언론과 인터뷰 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재판부와 국민들 모두 노동문제를 깊이 인식해 줬으면 한다.

△김민영: 내가 아는 한 변호사는 판사들이 주로 누구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지를 잘 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른바 잘나간다는 사람들과 술 마시고 주말에는 같이 골프를 친다. 그들이 사용자들의 상황이야 잘 알겠지만 노동자의 애환을 과연 얼마나 이해하겠느냐는 것이다. 거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안을 얘기해보자. 재판부에게 합리적인 판결을 하라고 요청하는 것 말고 다른 방안은 없을까.

△이종란: 이런 자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조와 시민단체가 더 많은 일을 함께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여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민영: 노동분야를 전담하는 재판부를 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정희: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도 그런 문제를 논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노동부는 노동청에서 승격한 1987년 이후 집단행동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이제는 노동문제를 예방하고 조정하는 기능을 가진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정말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가지기 위해 생기는 분쟁과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더 가지려고 하다가 생기는 분쟁은 판결기준이 달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종란: 7월 28일 부당해고구제신청을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냈다. 오는 28일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어제도 신세계 이마트 수지점 앞에서 1인시위를 했다. ‘이마트의 노조탄압이 국감 받는다’는 사실을 시민들에게 꾸준히 알리고 있다. 현행 집시법은 소음기준이 80데시벨을 넘으면 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엠프만 켜도 80데시벨은 넘는다. 말도 안되는 가처분 결정은 철회시켰지만 이제는 집시법(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 우리 활동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판사도 국가의 녹을 먹는 노동자들이란 걸 판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판사들도 자신들이 노동자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김제완: 지금까지는 대법원 판결을 중심으로 법원 입장을 주목했다. 앞으로는 하급심과 가처분신청 등을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김민영: 오늘 우리가 나눈 얘기는 법원이 누구의 편에 서 달라는 것이 아니라 판결로 인해 부당하게 고통받는 사람은 없는지 한번이라고 더 되돌아보라는 것이었다. 오늘 자리가 법원과 재판관들의 책임감을 높이는데 조금이라도 이바지했으면 한다.

강국진 시민의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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