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9-03-02   2582

[한겨레21 기고] 변호사시험은 제2의 사시인가


박근용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


국회에서 법안 부결되면서 2012년 치러야 할 시험 새 국면…
원래 취지를 살린 새로운 법 내놓아야


3월 초 문을 열 로스쿨의 졸업생들이 2012년부터 치르게 될 변호사시험 관련 법안이 새 국면을 맞았다. 지난 2월12일 정부가 제출한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로스쿨의 운명이 또 한 번 요동치고 있다. 정부도 새 법안을 내야 하고, 별 관심 없던 각 정당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돈스쿨’이라지만 장학금 제도 많아


사실 법안의 부결은 누구도 예상치 않았다. 본회의에 앞서 법안을 심의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야 간에 별 논쟁 없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부결됐을까? 본회의에서 반대 토론에 나섰던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의 주장을 들어보자. 강 의원은 정부안을 두고 “현행 사법시험보다도 과목 수가 더 적고, 훨씬 내용이 없는 시험”이라고 했다. 과연 그랬을까? 사법시험 1차 객관식 시험과목은 헌법, 민법, 형법, 선택과목 1개다. 하지만 정부의 변호사시험법안에서 1차 객관식 과목은 사법시험 네 과목에 행정법, 상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이 더해졌다. 외워서 봐야 하는 시험과목이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강 의원은 거꾸로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강 의원은 “정부안대로 하면 로스쿨 3년 동안 수업은 하나도 안 듣고 학원 가서 시험공부만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앞에서는 시험과목이 적어 문제라고 하더니, 이번엔 학생들이 학원에서 시험공부에 매달릴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앞뒤가 안 맞는 말이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본회의에 참석한 국회의원 218명 가운데 140명(반대 100명, 기권 40명)의 마음을 흔들어버린 것이다. 사실 의원들의 마음이 흔들린 대목은 따로 있다고 한다. “과거 사법시험이 가난한 천재들에게 신분 상승의 기회를 제공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데, (이런 로스쿨이 유지되면) 저 같은 사람은 도저히 변호사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변호사시험 법안은 변호사시험을 로스쿨 졸업생만 볼 수 있게 하는데, 비싼 학비가 드는 ‘돈스쿨’에 들어갈 수 없는 ‘가난한 천재’는 변호사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강 의원의 주장은 ‘예비시험 도입’으로 이어졌다. 로스쿨을 다니지 않은 사람 중에 예비시험을 치르게 하고 그 시험에서 100~200명을 합격시켜 로스쿨 졸업자들과 함께 변호사시험을 보게 하자는 거다.

그런데 차분히 살펴보자. 대학에서 로스쿨을 설치하려면 ‘사회적 취약계층 특별전형’으로 뽑는 학생이 정원의 몇%인지 심사받는다. 인가심사 기준에서 말하는 이 계층은 ‘장애인 등 신체적·경제적 여건이 열악한 계층’이다. 로스쿨 인가 경쟁에 뛰어든 학교들은 교육부가 요구한 5%를 넘어, 로스쿨 학생 전체 정원의 6%를 사회적 취약계층에 배정했다.
전체 학생이 2천 명이니 6%면 120명이다. 변호시시험 합격률을 80%라고 가정했을 경우 매년 100명가량의 취약계층 출신 법조인이 나온다.

반면, 합격하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사법시험에 뛰어든 사회적 취약계층이 얼마나 될까? 혹여 있다 하더라도 그들 중 합격한 사람이 매년 100명이나 될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예비시험은 ‘가난한 천재’에게 우호적일까


게다가 사법시험 제도 아래서는 부잣집 자식이든 가난한 천재든 시험 준비 비용을 모두 개인과 그 가족이 짊어지는 데 반해, 로스쿨에는 장학금 제도가 있다. 이 또한 로스쿨 인가 때 심사 기준이어서, 25개 로스쿨의 장학금 지급 비율은 등록금 전액 대비 39%가량에 이른다. 전체 입학생 2천 명 가운데 800명가량이 무상교육을 받는 셈이다. 반액 또는 3분의 1을 지원받는 경우를 감안하면 수혜자는 더욱 크게 늘어난다. 물론 이 가운데는 성적 우수자도 있지만, 사회적 취약계층이 주된 수혜층이다.


이에 반해 사실상 현행 사법시험과 마찬가지인 예비시험 제도의 부작용은 수없이 많다. 우선 각자 알아서 시험 준비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합격에 몇 년이 걸릴지 모른 채 불투명한 미래를 걸고 예비시험에 뛰어들어야 한다. 합격자도 100~200명에 그쳐, 많은 사람을 합격시키는 ‘쉬운 시험’도 아니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다. 그것으로 끝도 아니다. 로스쿨 졸업생들과 함께 변호사시험을 봐야 한다. 이것이 과연 서민과 가난한 천재를 위하는 제도일까. 서민과 가난한 천재들을 위한다면 그들이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이 로스쿨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 아닐까.


결국 의원들은 엉뚱한 논리로 정부 법안을 부결시킨 셈이지만, 사실 이번 법안은 또 다른 이유에서 부결되는 것이 마땅했다. 정부가 제출한 법안에는 변호사시험법을 제2의 사법시험으로 만들려는 정부와 법조인들의 숨은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시험과목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최대한 시험과목을 늘리고 시험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필연적으로 변호사시험 합격률 저하로 이어진다. 결국 변호사 수 증가를 막으려는 의도가 깔린 셈이다. 로스쿨 졸업 뒤 5년 동안 3회만 응시 기회를 주는 것도,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 위원 13명 가운데 절반 이상인 7명을 기존 법조인 몫(위원장 법무부 차관)으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로스쿨은 교육을 통해 법률가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곳이지, 시험 준비 기관이 아니다. 헌법, 민법, 형법 같은 것만 공부시켜서는 법률 지식을 뛰어넘는 법률가로서의 소양을 갖추게 할 수도, 다양한 분야의 변호사를 배출할 수도 없다.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야 전문대학원인 로스쿨의 다양한 수업이 가능할 수 있다. 시험 부담이 클수록 로스쿨은 고시학원이 돼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학생들이 로스쿨 수업을 팽개치고 학원으로 달려가면, 로스쿨은 황폐했던 법과대학의 모습이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다고 해서 좋은 변호사가 나올까. 사법시험 체제가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결국 로스쿨을 도입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시와 같은 프레임, 어려운 시험과 좋은 변호사?


물론 로스쿨 교육의 내실은 엄정하게 따져야 한다. 그래서 ‘법학전문대학원 평가위원회’가 있고, 교육의 질이 로스쿨 인가 신청서와 비교해 떨어지면 인가 취소 등 제재를 할 수 있다.


이제 최악의 시나리오는 정부와 법조인들의 주장처럼 변호사시험을 제2의 사법시험으로 만들고 예비시험 제도가 추가됨으로써 학생들이 로스쿨 교육을 등한시하고, 교육을 통해 다양한 계층을 법률가로 양성한다는 사법개혁의 청사진이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지금이라도 정부와 정치권은 로스쿨 도입의 애초 취지를 되살려 새로운 변호사시험법을 만들어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은, 2009년 2월 23일자 발행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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