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을 공장 품질검사부로 만들 셈인가

사회적 다양성 반영한 사법 판단의 최종지위 포기한 추천
대법관 후보 재추천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회가 임명동의 부결해야

지난 1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13명을 대법관 후보로 추천하였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보수・진보를 막론한 언론들이 대법원의 사회적 다양성 반영을 주문해왔으나 결과는 참담하다. 대법원의 보수화를 넘어 획일화가 우려된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그중 누구를 고른다고 해도 대법원이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하고 갈등을 봉합하는 기구가 아닌, 사건을 기계적으로 처리하고 1~2심의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는 ‘공장 품질 검사부’로 전락할 것은 뻔한 일이다. 대법관 후보의 이념적 다양성은 차치하고, 출신・성별의 기계적 다양성마저 완전히 무시되었다. 법은 완전무결한 것이 아니다. 사회적 가치의 변화를 반영하여 사람들이 만들고 사람이 판결하는 것이다. 지금 추천된 대법관 후보로 대법원을 구성한다면, 대법원이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하는 사법판단의 최종지위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대법원은 국회의 요구대로 대법관 후보 추천을 다시 해야 할 것이며, 만약 대법원이 이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제청을 강행할 경우 국회가 나서 이런 퇴행적 대법관 임명을 거부해야 한다.

 

대법관

참여연대가 지난달 조사한 국민여론조사 결과.(클릭하면 새창으로 보임)

 

참여연대가 지난달 23일 실시한 국민여론조사 결과(전국 성인 남녀 천명 대상, KSOI실시), 국민의 58.9%가 “판결의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 판사 이외의 법조인 중에서 대법관을 뽑아야 한다”고 답변했다. 또한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는 출신이나 성별보다 진보・보수의 균형이라고 답한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이는 그동안의 대법관 임명에 대해 국민이 만족하지 못했으며, 비서울대・여성 몇 명의 기계적 다양성을 넘어 질적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엄중한 요구였다고 본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러한 국민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해버렸다. 앞서 말한 여론조사 결과 중에는 국민의 55.5%가 대법원을 불신하고 있으며, 67.2%가 “대법관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대법원 판결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대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직결되는 대법관 인선임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귀를 닫고 ‘우리 마음대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심각한 인식의 오류는 어디서 왔을까. 먼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안일한 후보추천은 이 위원회의 한계에 기인한다. 지난해 국회는 기존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를 법정기구로 격상시켰으나 그 구성과 역할이 가진 한계를 보완하지 못했다. 위원회의 구성은 법원・검찰・변호사・법학교수라는 법조 직역의 이해를 그대로 대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10인 중 7인의 위원이 이러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당연직만으로 이루어져 있고, 비당연직 중 법관 1인을 제외하면 이러한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물은 2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위원회가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통제하는 기구로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은 이 위원회가 가진 비민주적 절차 때문이다. 대법원규칙을 통해 통제되고 있는 후보추천과정은 법원행정처가 주도하며, 위원회는 들러리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일반인들도 대법관 후보를 천거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이 과정은 비공개하도록 되어 있으며, 대법원장은 이 과정에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다. ‘민주적 통제’라는 것은 일반 국민들이 접근할 수 있고, 그 기준과 내용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의견을 내는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왕적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통제한다는 명분만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어떠한 통제장치도 거부한 셈이다. 이런 마당에 추천된 13명 중 한 명의 여성 후보자도 없다는 이야기는, 이미 대법원장이 낙점한 대법관 제청자 중에 여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어제(3일)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대법관 후보를 재추천하라”는 성명을 냈다. 대법원이 “대법관을 뽑는 것은 우리 마음”이라는 안이한 인식을 가지고 대법관 제청을 강행해서는 안 된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제청하지만, 사법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번 대법관 후보 추천은 국민의 요구를 무시한 처사다. ‘부러진 화살’ 파동을 겪으면서도 사법부가 배운 것이 이 정도라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것은 립서비스일 뿐이고, 속으로는 “우리가 하는 일에 토 달리 말라”는 오만한 인식을 드러냈다. 국민의 요구를 무시한 권력은 교체된다. 그것이 사법부라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논평원문

JW20120604_논평_대법관후보추천비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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