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10-02-21   2580

신영철 대법관 사건 1주년을 맞아보니

법의 정신에 투철한 사법개혁을 고대하며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0년 연초 사법개혁이 국가현안이 되고 있다. 사법개혁은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주의를 더욱 제도화하기 위한 핵심과제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민주화의 거센 광풍 속에서도 사법권과 사법절차는 상대적으로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을 청산하는 데 아쉬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을 추진하더라도 어떤 목적과 대안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그 평가가 같을 수 없다.

요즘 일부 하급심 판결을 둘러싼 논란이 사법개혁의 원인이라면 그 개혁논의는 불순한 의도에 의해 주도되고 있을 위험성이 매우 크다. 심급제가 존재하는 이유로 볼 때 특정 법률규정의 해석과 적용에 대한 하급심의 입장 차이는 사법권 자체의 문제일 가능성 보다는 입법규정의 미비나 기소권의 남용에 의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철저한 ‘개인적’ 독립을 요체로 하는 사법권 독립의 원칙에 비추어, 사회적 공감대가 넓지 못한 민감한 사안을 둘러싼 판결은 하급심에서 충분히 다양한 시각이 대두되어 사회적 공론화과정을 거치고 상고심인 대법원의 최종적인 결정을 통해 해결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할 수도 있다.

대법원의 합의체 결정의 경우에도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으로 나뉘어 향후 입법적 보완이나 기소권의 남용 방지를 위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민주적 법치주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강기갑 대표에 대한 공무집행방해사건, 문화방송의 PD수첩사건, 교사 시국선언사건과 같이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사안에 대한 하급심 판결에 대해 사퇴압력과 같이 법관의 신분상의 독립을 저해하는 수준을 넘어 인신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치닫는 야만적 행태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폭거이다.

이 시점에서 되돌이켜 보게 되는 것이 1년 전 사법개혁논의를 촉발했던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의 재판독립침해사건이다.

참여연대는 신영철 대법관 재판개입 1년을 맞아 시민들과 함께 신 대법관에게 엽서를 보내고 있다. >>참여하기

신영철 대법관 옹호하던 이들이 ‘사법개혁’ 들고 나서다니

당시 대법원의 자체진상조사의 결과 확인된 사실만으로도 신 대법관은 촛불시위관련 사건배당과정이나 재판 진행중 사법행정권의 통상적인 범위를 넘어 사법권의 근간이 되는 재판상의 독립을 훼손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위헌의 의심이 있는 법률조항에 대해 헌재에 위헌심판을 제청할 것인지, 현행 법률대로 진행할 것인지, 현재 위헌심사가 진행중이므로 재판의 진행을 중지할 것인지는 재판의 기본적인 내용이며 이에 대해 사법행정권에 근거하여 개입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요즘 논란이 되는 사안들과 같이 법의 해석과 적용이라는 재판 자체를 둘러싸고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행정권’을 이용하여 사법권의 정수인 ‘재판’의 독립을 훼손했던 것이다.

더더구나 문제된 사건은 단순한 일반 민형사사건이 아니라 전국민적 관심사를 불러 모았던 소위 ‘시국사건’으로서 정치적 휘발성이 매우 강한 사건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사법권의 중립적 판단이 요청되는 사안이었다. 나아가 이런 무리한 행동의 근저에 대법관 ‘영전’이라는 인사문제가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도 사법권의 독립에 대한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였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당시 법원 내부의 소장판사들이 판사회의를 통해 우회적으로 신 대법관의 자진사퇴를 요구한 것이다. 또한 뜻있는 법학자들과 법조인들이 신영철 대법관의 탄핵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도 정치현안에 대한 입장 차이를 넘어 자유민주주의의 제도적 근간이 되는 재판의 독립을 수호하고자 하는 충정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법관의 신분상의 독립을 들먹이며 신 대법관의 사퇴나 탄핵을 반대했던 일부 언론이나 한나라당이 요즘 판결의 내용을 두고 마녀사냥식 사법개혁론을 운위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이 나라가 21세기 선진사회를 지향한다는 자유민주국가인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공소장 판결’ 시대로 퇴행을 막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당시 신영철 대법관의 탄핵을 다수의 힘을 빌어 무시했던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은 사법개혁을 주도할 정당성을 상실하고 있다. 국민과 헌법의 입장에서 요청되는 사법의 개혁은 재판의 독립을 확고히 하고 법의 정신을 드높이는 사법의 민주화이다.

법의 정신은 공정과 형평(fairness)이며, 법치는 자의성(恣意性)의 배제를 근간으로 한다. 법의 적용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정한’ 적용이 법치주의의 핵심가치이다.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법을 운용하는 것은 법을 적용하지 않음보다 못하다.

최근 논란이 된 판결들이나 공소권 남용의 비판을 받고 있는 전교조나 전공노에 대한 편파수사 등이 대표적 사례가 된다.

자유민주주의가 사법권의 독립을 핵심가치로 하는 것은 법집행자가 자의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을 통제하기 위함이다. 하급심의 다양한 판결을 두고 검찰이 기소하는 대로 결정하지 않았다고 사법권을 공격하는 것은 권위주의시대의 유산인 공소장판결의 시대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반헌법적 작태에 불과하다.

오히려 사법개혁이 필요한 것은 이러한 반헌법적 사법부 길들이기가 통용되기 힘든 민주적 사법제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 과제는 숱한 연구와 논의를 통해 이미 제안되어 있다. 대법원장 중심으로 집권화된 사법행정제도의 분권화, 대법관의 증원 및 대법관임명제도의 민주화를 포함한 법관인사 및 법원행정에 대한 국민참여의 강화, 사실상 승진제로 운용되는 법관인사제도 개혁, 법관의 신분보장강화와 연계된 퇴직법관의 활동규제 등이다.

헌법에 반하는 연구회 활동의 금지나 원심파기율의 인사고과 등 편의적 사법개혁 논의는 오히려 사법개악이 될 위험성이 높다.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개입파동이 있은 지 1년 후 사법개혁논의가 사법개악의 차원에서 운위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법개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춘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절실한 때다.

(이 글은 2월 19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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