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6-11-28   1432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⑦] “국회, ‘변호사기득권보호위원회’의 악명을 씻어주십시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에게 보내는 편지

법률가 양성 및 선발제도의 개혁을 위해 지난 10년간 논의되었으며, 2003년부터 운영된 사법개혁위원회에서 마침내 도입하기로 결정했던 로스쿨 제도임에도, 현재 국회에서 관련 법률안의 심의가 완전히 중단된 상태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국회의원들에게 로스쿨 제도 도입에 필요한 법안을 조속히 심의하여 법률가 양성 및 선발제도를 개혁하는데 동참할 것을 설득하기로 하여 15일부터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일곱 번째 편지는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의 “국회, ‘변호사기득권보호위원회’의 악명을 씻어주십시오” 입니다.

주성영 법사위 간사 의원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간사라는 중책을 맡고 계신 주의원님께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간곡히 요청 드리고자 합니다.

변호사 정원제 폐지의 유일한 현실적 대안 로스쿨

저는 변호사 증원이 절실하면서도 현재의 정치 지형에서 너무나 요원하기 때문에 유일한 타협안으로 열매 맺은 것이 로스쿨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스쿨제도는 현재 정원을 정해놓고 상대평가를 통과한 사람에게만 자격을 주는 사법시험을, 적정한 지식, 소양과 기능을 갖춘 사람은 누구나 변호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변호사자격시험으로 전환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로스쿨의 총정원을 교육인적부에서 통제하긴 하겠지만 현재 법무부에 의한 사법시험 정원제와는 질적으로는 다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혹자는 ‘과연 변호사 정원제의 폐지 또는 변호사 증원이 절실한가?’라고 반문합니다. 저는 ‘상식대로 살아도 불행하지 않게 살 수 있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식의 법제화의 일꾼들 변호사

의원님도 인터넷 등을 통해 매년 최소한 두 세 번씩 국민들을 대상으로 ‘이민 선호도’를 묻는 설문조사의 결과를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다시 말씀드리지 않겠으며, 88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른 이후에도, OECD와 WTO에 가입한 이후에도, 노벨상, 칸느와 베니스에서의 수상, 그리고 여러 명의 프리미어리거들과 메이저리거들이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데도, KTX, 인천공항과 새 청계천이 생긴 이후에도, 별로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저의 비관적인 예측에 따르면, 개인당 국민소득이 2만불이 넘는시점에서도 이민선호도 설문조사 결과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은 영원히 ‘남아 있으면 손해인 나라’로 남는 것인가요?

한국 사회를 돌아볼 때 기업의 관점에서 보든 서민의 관점에서 보든 가장 살기 답답한 이유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입니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특별히 내세울 능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 아무런 편법 쓰지 않고 상식대로 살다 보면 계속 크고 작은 손해를 보다가 나중에는 경쟁의 저 뒤편에 팽개쳐진 자신을 발견하기 일쑤입니다. 사회 곳곳에 상식적이지 않은 제도들이 도사리고 있으면서 사람들 사이의 상식적인 거래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당장 대한민국 국민이라면절대다수가 사정을 듣고 보면 “비상식적이다”라고 동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제도적 명제들을 나열할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 수많은 기업활동에 대한 허가재량을 기준도 없이 행정청이나 지자체에 부여하는 관련 법제들을 들 수 있습니다. 엄청난 양의외환거래법과 증권거래법, 관련 법령 및 규칙 등은 외국에서는 쉽게 가불가(可不可)를 판단할 수 있는 수많은 기업행위들을 이런 식으로 매우 모호하게 규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업하기 힘든 나라가 “동북아시아 허브”가 될 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직접 기업들 법률자문을 해본 경험이 있는 저에게 거의 농담에 가깝습니다.

물론, 비상식의 피해자는 일반 국민들 중에 더 많습니다. 지나가는 소도 웃을 지경의 독거노인, 장애인 등의 생활보호대상자에 대한 지원수준 현재의 안보상황에서 불필요하게 긴 기간의 청춘을 무의미한 반복 노동에 바쳐야 하는 젊은이들 고용인들과 똑같은 통제 속에서 일을 하면서도 고용관계를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소위,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지요). . . 비상식의 목록은 끝도 없습니다. 조금 더 작은 수준으로 내려오면 더욱 무수하게 많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공공기관의 수많은 온라인서비스들이 MS익스플로러를 통해서만 접근가능하고 다른 웹브라우저를 통해서는 접속이 되지 않습니다. 비상식의 리스트는 사회 곳곳에서 어차피 힘든 기업인들과 국민들의 삶을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게 갉아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이 제도들이 비상식적이라는 것을 모두들 동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모두들 동의하는 이와 같은 명제들이 왜 올바른 변화를 추동하고 있지 못할까요?

이들 제도들은 보통 두 가지 이유로 유지됩니다. 첫째, 누군가 그 제도에 대해 기득권을 가지고 있어 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고, 둘째, 다른 사람들이 이들의 기득권을 ‘관행’의 이름으로 받아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상식의 원천적 믿음: “국가는 기득권을보호할 의무가 있다?”

이와 같은 제도들을 개혁하는 것이 물론 국가의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에게 맡기기에는 국가 스스로가 위와 같은 제도의 주범인 경우가 많습니다.

국가 스스로가 상식보다는 기득권을 바탕으로 한 실력 대결로 결정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국회는 위와 같은 제도들로부터 치부하는 기득권자들에게 ‘포섭’된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법부의 모습도 보게 됩니다. 도리어 한국에는 “국가는 기득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암묵적인 규범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이며, 이 규범은 법제도 속에 수많은 비상식과 몰상식을 낳고 있습니다.

개개인 국민과 기업 소상인들 모두가 상식을 법제화하는 역할을 조금씩 맡아주어야 합니다. 상식을 법제화하는 것은 말로만 쉽게 타이른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강제력있는 법적인 논리를 구성함은 물론 이 논리를 집행하는 절차를 꼼꼼히 밟아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들과 기업들을 도와줄 수 있는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사법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법부에게 알아듣게 말을 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법률가들이 더욱 많이 필요합니다. 우리 주변에 더욱 더 많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가 아는 교수님 한 분은 리눅스를 주로 쓰시는 분인데 리눅스시스템을 통해 온라인 공공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는 점에 분개하셨습니다. 관련 행정기관에 편지도 보내고 하였지만 별 소득이 없어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위협한 후에야 몇몇 행정기관들이 시정을 하였다고 하고, 시정을 하지 않고 있는 기관에 대해 소송을 실제로 제기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것은 그 교수님은 법을 공부하셔서 강제력있는 법적 논리를 구성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역시 법을 공부한 저도 “오늘 당장 시정을 요구하겠다”고 분개하는 비상식의 경험을 수도 없이 했지만 실제로 실천에 이른 경우는 아직 한두건 정도입니다. 하물며 법을 공부하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기득권보호를 위한 몰상식의 사표, 사법시험 정원제

그러나, 한국에서는 바로 사회 곳곳에서 상식을 법제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어야 할 변호사들이 비상식의 사표(師表)라고 말할 수 있는 사법시험 정원제의 보호막 속에서 치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법시험 정원제는 “국가는 기득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신화를 만들어낸 원조로서 사회 곳곳의 개혁논의를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변호사들마저 이럴 수 있다면 다른 직업종사자들도 당연히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할 것이며, 결국 한국의수많은 사회개혁 논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가진 것 빼고 다 바꾸자’는 내용을 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2000년 10월경 대한변협이 변호사 정원제 폐지에 대해 반대입장을 표명한 것에 대해 저는 다음과 같은 논평을 낸 적이 있습니다.

변호사 1인당 인구수가 1만명에 이르고 (미국은 약 250명입니다), 법률서비스 단가가 높아 저소득층은 ‘민사상 치외법권’에 살고 있고, 노조전문 변호사는 단 1명에, 교도소 및 기타 수용시설에 많은 이들이 법의 보호 및 관심 ‘밖’에 갇혀있고, 기업활동에 대한 규범적 통제의 부재로 수많은 투자자들이 IMF사태로 전재산을 날리고, 기업들도 ‘법대로 하면 손해본다’며 뇌물을 남발하고, 유학갔던 장애인 박사가 김포공항에 발을 디디며 ‘나는 다시 장애인이 되었다’고 말하고,

위의 상황은 6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큰 변화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아직도 변호사들의 수입을 보전하기 위해 숫자를 통제해야 합니까?

변호사들을 많이 만들어 놓으면 과연 ‘좋은 일’ 할까?

바로 이 시점에서 위의 질문이 궁금하실 것입니다. 과연 변호사들을 많이 만들어 놓는다고 해서 이들이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만 할 것인가? 도리어 사회를 어지럽히는 소송만 남발하는 것이 아닐까?

변호사들을 많이 만들어 놓으면 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목소리를 법적인 주장으로 만들어 공론화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정말제대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단순히 실정법의 내용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비상식의 장(場)이 되어버린 실정법이 아니라, 그 법보다 높은 헌법, 또 헌법해석의 기준이 되는 상식과 합리성에 기초하여 창의력있게 구성된 논변으로 사법부를 설득하는 노력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각기 다른 신념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에게 무엇이 ‘좋은 소송’이고 무엇이 ‘나쁜 소송’인지를 강요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념과 이해가 상충하는 여러 계층과 집단의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들을 잘 정리된 법적 주장으로 온전히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사법부도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 등의 비난을 벗어나 더욱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저울질한 판결을 낼 것입니다.

제 서한을 읽으시며 다른 여러 가지 질문들이 많으실 줄로 압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로스쿨 지지자 분들의 서한들이 같은 지면에 공개될 것입니다. 로스쿨제도의 도입에법제사법위원회와 한나라당은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법제사법위원회와 한나라당이 로스쿨이 담고 있는 개혁의 열망을 헤아려 순조롭게 로스쿨법안을 통과에 힘써준다면, 법제사법위원회는 ‘변호사기득권보호위원회’로, 한나라당은 ‘부자보호당’이라는 세간의 비난의 목소리를 반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로스쿨 제도에 대한 지지를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11월 28일

박경신 드림

⑥ “로스쿨에서의 교육, 그 변화를 상상해 보십시오”

⑤ “로스쿨 반대 이유, 이의있습니다”

④ “획일적인 사법연수원 교육, 이제 수명을 다했습니다”

③ “전태일이라면 로스쿨 도입에 동의했을 것”

② “세상은 왜 로스쿨을 원할까요”

① “일본 로스쿨,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박경신(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고려대 법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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