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7-03-02   1703

[국민참여재판-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⑦] “모의재판 경험자로서 자신있게 말씀드립니다”

이 편지는 국민의 사법참여를 위한 국민참여재판의 이해를 돕고 관련 법안의 도입을 바라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한상희, 건국대 교수)가, 국회 법사위위원들에게 보내는 ‘국민참여재판-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릴레이 편지 제7호 입니다.

박세환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광주광역시에서 9년째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는 이상갑입니다. 요즘 남부지방의 한낮 날씨가 15도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휴일이 되면 따뜻한 봄나들이에 나선 가족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정치도 국민들에게 봄볕처럼 따스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제 역할을 하루빨리 회복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다시 한번 해봅니다.

오늘 제가 생면부지의 의원님께 이 편지를 올리는 것은, 현재 국회 법사위원회에 계류 중인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안’과 관련하여 제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하여 그 입법을 서둘러 주실 것을 당부드리기 위함입니다.

재판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만나본 시민들 대부분은 법정에 직접 가서 실제 재판하는 모습을 보고나면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보아온 재판과는 많이 다르네요. 재판이 진행 중인 모습을 직접 방청했는데도 사건의 쟁점이 무엇인지, 그에 대해서 검찰과 피고인 측 주장의 핵심적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군요. 오늘 우리 재판이 잘 된 것인가요 아니면 종전보다 불리하게 된 것인가요 ’라고 말하곤 합니다. 우리 시민들에게는 우리나라 식 재판 즉 직업법관에 의한 재판, 서면공방이 중심인 재판이 낯설고, 오히려 미국식 재판 즉 배심원단이 참여하는 재판, 구술변론이 활성화된 재판이 더 친숙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방청객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형사재판의 당사자인 피고인에게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있습니다. 재판이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 가지는 중요성에 비하여 정작 판결에 이르는 재판 과정에 있어 당사자의 참여권, 결정권은 매우 부실하게 보장되고 있는 셈이지요.

이런 문제는 최근 강화되고 있는 구두변론주의, 공판중심주의에 의해 상당부분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충분한 해결과는 거리가 먼 것이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공판중심주의 역시 직업법관, 검사, 변호사 등 전문가들의 눈높이에 맞춰 진행된다는 구조적인 한계 속의 제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면 우리나라 재판 역시 그동안 헐리우드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시민배심원단이 심판자로 참여할 수 있게 되고, 검찰과 변호인은 국민(배심원단)의 눈높이에 맞춰 법정 안에서 치열한 구두공방을 전개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심판구조의 변경은 궁극적으로 국민이 사법서비스의 확고한 중심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하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모의재판은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지난해 11월 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위 법률안에 따른 절차를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델로 하여 꾸며진 사건에 그대로 적용하여 실시한 모의재판에 변호인 역할을 맡아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이날 모델이 된 사건은 구청장이 관내 건설업체로부터 3천만 원의 뇌물을 받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례였습니다.

위 법률안이 통과될 경우 앞으로 형사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서 모의재판을 중심으로 진행경위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먼저 이날 오전 10시 광주지방법원 401호 대법정에서 배심원 선정절차가 있었습니다. 이 절차는 광주시민 중 사전에 무작위로 추출된 44명의 배심원후보자들 중에서 그날 오후 2시에 열릴 모의재판에 참여하게 될 9명의 배심원을 선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법원사무관이 44명의 명단 중에서 무작위로 9명의 후보자를 선택하면 검사와 변호인은 그 9명 개개인을 대상으로 그분들이 배심원으로 선정될 경우 자기 측에 유리할 것인가 불리할 것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다양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예컨대, 검사는 ‘민선구청장은 관선 때와 달리 선거비용 회수, 지역관리 등을 위해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관내 업자들과 결탁할 위험성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지,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결탁 관행이 특히 건설업계에서 심하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물어 그 답변 내용에 따라 배심원의 성향을 판단합니다. 변호인은 ‘뇌물죄처럼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범죄는 명백한 증거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확실한 증거가 부족하더라도 유죄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민선 구청장은 주민의 평가가 가장 중요하므로 여론수렴을 위해 관내사업자 등과 더 가깝게 지내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므로 이들의 관계를 비리유착관계라고 단정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물은 다음 그 반응을 예의주시합니다. 변호인과 검찰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조금이라도 상대방에게 유리할 것 같은 배심원을 배제하기 위해서 기피신청을 하고, 5차례의 반복절차를 거쳐 9명의 배심원이 선정되었습니다.

오후에는 검찰과 피고인 측이 신청한 4명의 증인과 피고인에 대한 심문이 이루어졌습니다. 배심원단은 3시간 동안 계속된 검찰과 변호인의 치열한 공방을 숨죽이며 지켜본 다음 40여 분간의 평의 끝에 만장일치로 피고인은 무죄라는 평결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시민문화는 충분히 성숙합니다

국민참여형사재판 제도의 실시 여부와 관련하여 가장 논란이 되는 쟁점은 배심원의 공정성 담보 문제입니다. 배심원의 성향은 사건의 결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편중된 배심원 선정, 배심원의 자질 부족은 정확하고 공정한 판결을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정한 배심원단 구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 후보자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그 반응을 살펴본 결과, 개인적 경험이나 직업, 나이, 성별 등에 따라 의외로 개인별 가치관의 편차가 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배심원단 구성과정은 마치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시장가격이 결정되는 모습과 흡사하였습니다. 검사와 변호인이 기피권을 행사하여 상대방 쪽으로 치우치는 배심원단 구성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기 때문입니다.

‘배심원의 평의’와 관련해서도 우려가 많습니다. 우리 사회는 서구와 달리 논리적인 토론문화가 성숙되지 못하였고, 연고주의와 온정주의 등 비합리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있다는 지적이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모의재판을 하기 전에 동일한 내용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3차례 리허설을 하면서 그 때마다 새 인물들로 배심원단을 구성하여 평의를 하였는데, 결과는 항상 동일하였습니다.

사개추위는 광주 모의재판 이외에도 서울에서 2차례, 부산에서 1차례 등 총 4건의 서로 다른 실제사례를 응용한 사건을 대상으로 모의재판을 하였습니다. 각 모의재판마다 3차례씩 리허설을 하였는데(결국 4개의 모델사건에 대해서 각 3차례씩 12차례 모의재판을 한 셈입니다), 다른 사건들에서도 배심원단의 평의결과는 일관되게 동일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배심원단의 평결은 현직 판사들로 구성된 재판부의 결론과도 완전히 일치하였습니다.

모의재판에 참여한 판사, 검사, 변호사들은 법정공방이 끝난 다음 배심원들이 평의실에서 토론하는 동안 그 모습을 다른 방에서 CCTV로 주의깊게 지켜보았는데, 배심원들이 정확한 법률용어를 구사하지 못할 뿐 사건의 쟁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검찰과 변호인 주장의 강점과 약점, 증거의 문제점 등을 제대로 포착하여 토론하면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을 보고 모두들 깜짝 놀랐습니다.

또 자신의 의견과 다른 주장을 받아들이는 자세 역시 매우 개방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막연하게 염려하는 것보다 우리 시민문화가 훨씬 성숙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시기상조는 핑계입니다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실제로 시행해보면 보완해야 할 점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2012년까지는 배심원의 평결과 의견이 권고적 효력이 있을 뿐이고 약 5년 간의 시범실시를 거쳐 문제점을 최대한 보완한 다음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 당장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도입하는 데에 결정적인 문제는 없다는 사실을 모의재판에 참여한 법률실무가들은 모두 다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하여, 정치를 이끌어오는 분들은 그 시대 국민의 의식수준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수많은 혁명의 역사가 이 주장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 있겠습니다. 국민참여 형사재판제도 도입이 시기상조라는 일각의 주장 역시, 이 같은 고쳐야 할 잘못된 역사의 되풀이 현상의 일종이라고 평가한다면 지나친 것일까요?

국민들에게 따뜻한 봄볕과 같은 정치, 국민참여형사재판제도 입법화에서부터 시작해보시면 어떨까요? 의원님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를 당부드리며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상갑(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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