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구성과 운영에 민주적 통제 절실”

‘헌재,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서 ‘관습헌법’ 논리 부당성 확인

“우리는 경국대전이 아니라 근대적 의미의 헌법을 배우는 것이다. 입헌주의는 근대적 의미의 성문헌법에 기초한 정치이고, 관습헌법을 적극적으로 배제해온 역사다. 결국 이번 결정은 반입헌주의적인 폭거다.”

“헌법의 논리를 빌린 정치적 비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가 28일 공동 주최한 ‘헌법재판소,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발제자 중 한 명으로 나온 이경주 인하대 헌법학 교수는 헌재의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 위헌결정에 대한 쓴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내 주목을 받았다.

이 교수는 “수도가 관습헌법의 사항이고 따라서 수도이전은 헌법 개정사항이라는 논리는 헌법의 논리를 빌린 정치적 비토 선언”이라며 위헌 결정에 깔린 헌재의 논리를 강력히 성토했다. “헌재의 이런 정치적 욕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확인됐다”는 이 교수의 설명은 계속됐다.

“2001년 제주4·3특별법이 국회 의결로 통과된 후 이 법의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에 대해 헌재는 본안판단을 하지 않은 각하 결정을 내리고도 4·3사건의 희생자에 남로당 핵심간부, 적극적 폭동 가담자 등은 포함돼선 안된다는 발언을 하는 등 정치에 관여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냈다. 이번 국가보안법 합헌 판결도 그렇다. 과거 법리적 위헌이지만 한정합헌 판결을 내린 소극적 태도에서 돌변해 전격적인 합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국회라는 열린 공간에서의 정치를 부정하고 정치와 헌재의 교착상태를 만들어냈다.”

이 교수는 “헌재가 상종가를 치고 있는 상황에 한나라당도 고무돼, 대표연설을 통해 4대 개혁입법의 취소를 요구하는 등 한나라당이 헌재를 굳건한 동맹자로 맞이하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헌재는 민주적 정당성에 태생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런 각광은 대단히 짧을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관습헌법 근거 위헌 결정은 헌법 귄위 스스로 부정”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관습헌법 논리에 근거한 위헌 결정의 부당성을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김상겸 동국대 헌법학 교수는 “성문헌법을 갖고 있는 국가에서 관습헌법을 인정하더라도 그 효력은 어디까지나 성문헌법의 보충적 효력밖에 없다”며 “관습헌법에 해당하는 사항에 대해 성문헌법상의 성문헌법과 동등한 개정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은 법체계와 논리에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임지봉 건국대 헌법학 교수는 이번 헌재의 위헌결정에 대해 수도에 관한 사항이 관습헌법에 해당하는 지 관한 논란, 관습헌법이 ‘유일한’ 위헌판단의 근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점, 관습헌법의 개정이 성문헌법 개정과 동일한 절차를 요할 수 없다는 점, 위헌 결정의 또 다른 근거인 국민투표권 침해논리는 ‘청구인 적격’ 개념을 와해시킬 수 있는 위험한 논리라는 점 등 크게 다섯 가지 근거를 제시하며 그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임 교수는 “청구인 적격이 있다는 것은 특정한 기본권을 현재, 직접 침해당한 국민만이 그 사건 헌법소원의 청구인이 될 자격이 있음을 의미한다”면서 “수도=서울이라는 관습헌법 자체에는 직접 침해 가능한 기본권이 발생할 수 없기 때문에 헌재는 이번 헌법소원의 청구인들이 청구인적격을 가질 수 있도록 일정연령 이상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주체가 될 수 있는 헌법 130조의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권을 끌어들였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신행정수도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권 침해로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헌법개정에 따른 국민투표권은 국회 의결이 끝나야 비로서 현실적인 권리가 발생하는 것인데 헌법개정안이 제안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투표권 침해를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임 교수는 “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소수의견 역시 행정법에서 하위공무원의 자의적인 재량권 행사를 통제하기 위해 대두된 재량권의 일탈·남용 금지의 법리를 행정부 수반이자 국가원수인 대통령에 대해 적용한 것으로, 도저히 적용될 수 없는 법리”라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갑배(대한변헙 법제이사) 변호사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성문헌법을 놔두고 불문헌법을 위헌 기준으로 적용하지는 않는다”면서 “무엇이 헌법적 사항이고, 무엇이 법률적 사항인지를 헌재가 판단한다면, 또한 국민투표에 의한 판단사항을 헌재가 결정한다면 헌재가 사법은 물론 입법과 행정까지 총괄하게 돼 권력분리 원칙과 국회 입법권을 손상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동석 아주대 헌법학 교수는 “이번 헌재의 결정은 독일 비스마르크 헌법의 흠결조항을 연상시킨다”면서 “군주의 특정한 권한을 제한하는 명시적 성문헌법이 없는 경우 그 권한은 군주의 것이라는 논리인 흠결조항 논리는 성문헌법의 빈곳을 관습헌법으로 채워 넣겠다는 이번 위헌 결정의 논리와 비슷하다”고 비판했다. 오 교수는 특히 “국민의 인권과 기본권에 관한 사항은 사법적극주의를 취해야 하고, 질서보호에 관해서는 사법소극주의를 취해야 할 헌재가 오히려 이와 정반대되는 입장을 취해 왔다”고 뼈있는 비판을 던졌다.

“헌재 구성과 운영, 이대로는 안된다”

토론회는 헌재의 이번 결정의 부당성에 대한 지적에서 ‘왜 헌재가 이런 엉터리 결정을 내렸는가’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헌법재판관의 선출과 헌재의 운영 과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부재하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았고, 따라서 그 대안 역시 “헌재의 구성과 운영에서 국회, 국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에서 구했다.

김진욱(민변 사법위원회 위원장) 변호사는 “법원과 검찰은 독자적인 권력 블록을 형성하려 하고 있고, 헌재 역시 이들 조직으로부터 충원되고 있다”면서 “사법권의 독립은 입법, 행정으로부터의 독립이지 국민으로부터 독립이 아니며, 미국의 많은 주에서 직접선거에 의해 판사들을 선출하고 있다”면서, 헌재 재판관의 선출에 있어 국민에 의한 직접선출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경주 교수는 헌재에 대한 국회에 의한 간접통제, 국민에 의한 직접통제, 법률소원의 제한, 헌재 재판관 구성의 다양화 등 여러 대안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국회에 의한 통제방법으로 국회에서 직접 선출하는 방법이나 국회의 추천 몫을 확대하는 방법, 헌재 재판관에 대한 탄핵심판의 입법화, 국회청문절차의 강화 등을 생각할 수 있다”면서 “국민심사제도, 헌재 재판관 소환제 같은 국민에 의한 직접통제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한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여론은 6대 4 또는 4대 6의 찬반 여론임에도 헌재의 이번 결정이 8대 1로 나왔다는 것은 헌재가 국민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다행히 2006년 9월 5명의 헌법 재판관의 임기가 종료되므로 이 때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출신의 재판관 구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는 조국(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서울대 법대 교수의 사회로, 최근 헌법재판소의 결정 분석(발제 임지봉 교수, 토론 오동석 교수), 헌법재판소의 관습헌법 인용(발제 김상겸 교수, 토론 김갑배 변호사), 바람직한 헌재의 구성과 역할(발제 이경주 교수, 토론 김진욱 변호사), 종합토론의 순으로 진행됐다.

장흥배 기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