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4-05-10   1214

‘사법개혁위원회’ 이대로는 안 된다

1. “사법제도 개혁을 위한 기본방침 및 그 실현방안 등을 심의하기 위하여” 지난해 10월 대법원 산하에 사법개혁위원회가 설치된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지난해 8월 대법관제청파동으로 촉발된 사법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여 만들어진 사법개혁위원회(이하 사개위)는, 대법원의 기능과 구성, 법조일원화와 법관 임용방식 개선, 법조인 양성 및 선발, 국민의 사법참여, 사법서비스 및 형사사법제도 개선 등 우리나라 사법제도 전반의 개혁방안을 제시하여 사법개혁의 출발점이 되리라 기대되었다.

그러나 사개위는 사법개혁의 총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할 것이라는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다할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올해 연말까지로 정해진 활동 시한의 절반 가량이 지났으나 일부 관련자들을 제외하고는 사법개혁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과연 논의가 진행은 되고 있는지조차 모를 지경이다.

2. 사개위에는 현재 법원, 법무부, 변호사회, 법학교수, 행정부, 시민단체, 언론계에서 각 2인, 국회, 헌법재판소, 경제계, 노동계, 여성계에서 각 1인의 위원이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대표자들로 사개위가 구성된 데는 비록 사법전문가는 아닐지언정 상식적 견해에서 나오는 보편성이야말로 사법개혁의 핵심이며 국민이 원하는 사법개혁이라는 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역대 정권에서 정부주도형으로 추진됐던 사법개혁 논의와는 다르게 국민적 요구에 부응한 이번 논의야말로 당사자나 관련자가 아닌 보통의 국민이 이해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는 사법개혁안을 도출해 내고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기대되었다.

3. 그러나, 현재 사개위 회의에서 각 위원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서로간 다양한 입장을 교환하며 본래의 입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보다 넓은 시각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 받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해당 분야의 대표자로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입장을 방어하고 옹호하느라 여념이 없을 따름이다. 특히, 법조계를 대표하는 위원들의 조직보위적 견해는 정도가 지나쳐 바람직한 합의를 도출해 내는데 방해가 되고 더 이상 어떠한 논의도 진행되지 못하게 만들며 논의의 적극성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들은 법조 관련자가 아닌 위원의 발언이나 개혁적 발언에 대해 “잘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라고 일축하거나 “이미 부처에서 개혁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중복적으로…” 운운하며 구체적 논의를 사전차단 하고 있다.

4. 심지어 법조를 대표하여 나온 일부 위원들은 사개위의 활동과 관련해, 사개위는 단순히 논의를 정리해 대법원장에게 전달하는 기구이며 논의 결과의 채택 여부는 대법원장이 결정하는 것이라며 사개위의 위상과 역할을 폄훼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사개위 규칙에 의하면, 사개위의 임무는 사법개혁안을 심의하고 그 결과를 대법원장에게 건의하는 것으로 명기돼 있는 터라 일차적으로는 대법원장에 의해, 최종적으로는 대통령에 의해 개혁안이 수정되거나 거부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비록 규칙상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사개위를 구성하고 각계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대표자들을 위원으로 위촉하였다는 것은 사개위에서 도출해낸 건의안이 국민적 합의안으로서 이를 상당부분 수렴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또한 제아무리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란의 가능성이 있다 할지라도 그 결과에 대한 확신을 갖고 적극적으로 논의에 참여하여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위원회 구성원의 기본자세라 할 것이다. 분야별 대표자들과 전문가들 50여명이 1년이 넘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논의한 결과에 대해 수용여부가 불투명하다는 발언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는 것은 사법개혁의 의지가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에 다름아니며 사법개혁을 추진할 위원회의 일원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 일이다.

5. 사개위는 사법개혁 논의를 위한 자리이지 현재의 사법부나 사법체계를 통해 형성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의 방어용 전장이 아니다.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모아 시작된 논의의 장(場)에 전향적인 자세로 임하지 않을 것이라면 차라리 논의에 참가하지 않아야 마땅할 것이다. 이러한 점은 일부 위원뿐 아니라 현재 사개위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관련자들에게 주지되어야 한다. 관심분야의 여부를 떠나 모든 의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에 참가하는 것이 기본자세일 것이나 실제 회의 석상에서 몇 몇 위원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견해를 명확하게 피력하지 않는 위원들이 다수이고, 사전에 배포되는 전문위원들의 조사자료나 보고서 등에 대해 사전 숙지하거나 소속 분야의 의견을 대변하기 위한 노력이 더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 정도이다. 위원들의 이같은 태도는 사법개혁이라는 역사적 과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이 부족함을 넘어서 주어진 역할과 임무에 대한 배임으로 여겨질 지경이다.

6. 특히 이처럼 책임감이 부족한 위원들의 태도는 회의록을 공개는 하되, 실명을 표기하지 않는 데서 기인하는 면이 크다. 현재 사개위 회의의 주요 자료와 회의록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 발언내용을 담은 회의록에 실명이 기재되지 않음으로써 위원들의 발언에 책임감이나 신중함이 상당히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사개위 회의 또한 원칙적으로 비공개이며 위원의 소속 기관이나 단체의 실무자만 배석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일수록 완전한 공개를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 자체가 민주성을 확보하는 길일진대 사개위 회의가 이처럼 제한적으로 공개되거나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7. 사개위는 사법개혁 의제에 대한 여론수렴을 위해 지금까지 ‘국민의 사법참여’와 ‘법조인 양성 및 선발’을 주제로 한 공청회를 두 차례 개최했다. 이외에는 일반 시민들의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없었다. 사법개혁 의제선정에서부터 공청회를 통해 여론을 수렴하는 것이 필요함을 누차 강조했던 참여연대로서는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는데 옹색한 사개위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최근 사개위가 각종 관련 단체에 사법개혁의제에 대한 의견 요청 공문을 발송, 일괄적으로 오는 5월말까지 취합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아연할 따름이다. 사법시스템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을 정도의 광범위한 의제들을 한꺼번에 던지며 의견을 취합하겠다는 것은 발상 자체도 지나치게 관료적일 뿐 아니라 의견취합의 의지에 대한 회의마저 불러 일으킨다. 과연 어떠한 기관이나 단체가 그토록 광범위한 의제에 대해 준비된 의견을 갖고 있을 것이며 짧은 시간 안에 설득력 있는 의견을 정리할 수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생색내기용 의견 취합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각 의제별 논의에서 매회 의견을 취합하는 작은 규모의 공청회를 개최한다거나 최종 의결 전에 관련 단체나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를 개최할 수도 있을 것이며, 분야별 첨예한 대립으로 인해 조율이 어려운 의제에 대해서는 대규모 설문조사와 전문그룹별 의견조회를 병행하는 등 다양한 의견수렴의 장치를 시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 사개위는 대법원 웹사이트의 사법개혁코너를 통해 의견서를 작성해 발송하면 담당자가 이메일로 의견을 접수하는 형식(폼메일)으로 의견을 취합하고 있으나, 이 방법은 담당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그 내용을 확인할 길이 전혀 없다는 데서 적절한 여론수렴 장치로 평가하기 어렵다.

8. 사실, 이와 같은 사개위의 문제들은 그 구성단계에서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면이 적지 않다. 사법개혁이라는 국민적 과제를 논의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기구는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 구성하는 것이 정도이다. 또한 위원의 구성에 있어서도, 그동안 국민적 질책에도 불구하고 자기개혁을 게을리한 법조계는 가능한 참여를 제한하는 것이 정도이다. 그러나 사개위는 애초 이와같은 정도에서 벗어나 대법원규칙으로 규정되었을 뿐 아니라 위원들 가운데 법조 관련자가 절반 이상이나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사개위 활동에 대해 나름 기대를 갖고 주목해 온 것은 그만큼 현재 한국사회에서 사법개혁이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개위는 현재 주요한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는 일부 위원의 교체와 회의 분위기 쇄신을 통해 이러한 국민적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9. 이제 남은 시간은 겨우 6개월 남짓할 뿐이다. 그동안의 활동이 논의의 구체화를 위한 준비단계였다면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결정하는 핵심적 단계로 들어서야 할 때다. “어떻게 하면 국민이 보다 쉽고 편리하게 정의로운 법률서비스를 이용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위원들 뿐 아니라 관계 기관인 청와대와 대법원, 사개위 활동을 모니터하고 예의주시하고 있는 관련 단체, 언론 등도 한국사회의 오랜 염원이었던 사법개혁에 참여하는 주체로써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논의 자체가 풍성해질 것이며 전문가만의 탁상공론이 아닌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질과 연결되는 구체적 사법개혁안이 도출될 것이고, 국민적 합의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사개위는 사법개혁안에 구체적 실천 방안 및 추진 일정을 포함해 이번 사법개혁 논의가 또 한번의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며 청와대와 대법원 등 관계기관 또한 사법개혁안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조금의 불신이라도 생기지 않도록 적극적인 수용을 명문화해야 할 것이다.

사법감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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