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칼럼(lb) 2010-12-08   1733

무소불위의 권력, 기업과 기업인

이 글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실행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신 숙명여대 권순원 교수가 12월 8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기사원문보기)

경영학을 교육하는 교수에게 기업과 기업인은 가장 중요한 텍스트다. 대학은 성장과 실패의 기업 생태로부터 기업 경영 원칙과 전략의 적절성, 그리고 경영관리의 방법론 등을 탐구한다. 또 기업조직의 운전을 담당하는 기업가의 철학과 비전, 그리고 행위로부터 경제조직으로서뿐 아니라 사회조직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기업을 이해한다. 이런 맥락에서 기업가는 시장 행위자로서의 기업과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매개이며 기업의 가치, 의무(obligation) 그리고 책임(accountability)을 운반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기업의 사회적 위상과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가의 철학과 행위를 따져보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사회 기업가들은 어디쯤에 있을까? 어제 오늘 우리들 주변에서 벌어지는 추행과 추문은 우리사회의 많은 기업과 기업인들이 여전히 크로마뇽인의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분식회계를 통한 비자금 조성, 탈세, 불법 사내 하도급을 통한 노동시장 교란,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근로자들을 외면하는 부도덕 등. 무엇보다 고용승계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던 화물연대 노동자 유홍준씨(53)를 야구방망이 등으로 폭행하고 적지 않은 돈을 ‘맷값’으로 지불한 재벌가 최모 전 M&M 대표의 비상식적 행태를 통해 우리시대 기업과 기업인의 모습을 확인하는 현실은 참담하다.

게다가 최모 전 대표의 가훈이 ‘약자를 보호하고 적에는 단호하게’였다고 하니, 가훈만을 놓고 보면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고용승계를 거부당한 노동자 유씨는 그에게 ‘적’이었던 셈이다. 폭행 당시 최 전 대표는 유씨에게 “1대당 100만원씩 주겠다”며 5~6대를 때렸고 유씨가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1대에 300만원씩”이라며 다시 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사태로부터 우리는 기업인들에게 뿌리깊게 박힌 반노동주의와 계약적 질서가 부재하는 노동현실을 확인한다.

매 1대에 100여만원. 주 40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할 때 2010년 최저임금 월 기본급은 85만8990원이며 약 250만명의 근로자가 최저임금 생활자들이니 최소 250만 근로자의 한 달 급여보다 무려 14만여원이나 많은 돈이다. 기업가 최모 전 대표가 구타비용으로 지불한 돈의 합이 2000만원이니 사람의 고통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한갓 종이에 불과한 돈이 최저 임금 생활자 한사람에게는 2년치 연봉이다. 돈의 가치가 사람에 따라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이토록 처절하게 경험할 수 있을까?

과거와 다른 의미에서 기업과 기업인들은 통제받지 않는 우리사회의 우상이 되었다. 기업에 국적과 국경은 더 이상 중요한 경계가 아니며, 국가단위의 제도와 정책은 기업의 선택과 행동에 장애가 되지 않게 되었다. 우리나라 일부의 초국적 대기업들이 총 부가가치 가운데 약 80% 이상을 해외에서 거둬들이는 현실이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다. 백가쟁명을 논하던 대학의 강의실 또한 기업과 시장의 식민지가 된 지 오래다. 사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렇듯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된 기업에 대한 두려움의 반영이다.

요컨대, ‘기업이 본래 영리추구를 목표로 하는 경제조직이라 하더라도 이윤창출을 넘어서는 책무를 진다는 것, 즉 기업은 단지 경제적 가치뿐만이 아니라 인간 및 사회적 가치의 실현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회책임’에 대한 요구. 하지만 골방에서 폭행당한 노동자 윤씨, 그리고 울산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통해 확인되는 반노동주의와 법률 부정의 현실 앞에 기업가로서의 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권순원 | 숙명여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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