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일반(lb) 2021-10-05   656

[기자회견] 플랫폼 종사자법 졸속 추진에 반대한다

정부와 국회가 졸속으로 입법 추진 중인 플랫폼종사자법은 플랫폼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안이 될 수 없습니다. 해당 법안은 플랫폼노동자를 노동자와 자영업자 사이의 제3지대로 내몰고, 플랫폼기업이 노동법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플랫폼기업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거나 변경하는 것을 규제하는 내용도 없고, 보수와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AI 알고리즘 정보를 영업상 비밀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는 등 문제가 많습니다.  이에 노동시민사회는 플랫폼종사자법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기본법 제정 등 플랫폼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대로 된 방안 마련이 필요합니다. 

 

노동기본권 외면하는 플랫폼 종사자법은 플랫폼 사업자 보호법!
당사자와 시민사회는 반대한다

드러난 플랫폼 기업들의 독점적 횡포, 과도한 수수료와 위험에 시달리는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대책은?

 

정부는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 대표발의 형식을 빌어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하 ‘플랫폼종사자법’)>을 내놓았다. 지난 7월 국회 환경노동위 공청회를 거친 뒤,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이 법안을 연내 처리하겠다며 서두르고 있다. 가히 ‘속도전’이라 할 입법 논의 과정에 당사자인 플랫폼 노동자들 의사 한번 확인한 적이 없다.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공청회는 소수 전문가 진술 듣는 요식행위에 불과했고, 플랫폼 노동자들을 불러 현장 증언이나 토론회 한번 열려는 노력도 없었다.

 

형식이 이 지경이면 그 내용은 어떨까? 우선 이 법안은 플랫폼 종사자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중개 또는 알선 받은 노무를 제공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주로 자신의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보수 등을 받는 사람’ – 그러면서 법안 제안설명에 따르면 ‘번역, 데이터 라벨링 등’을 그 예로 들고 있다.

이렇게만 보면 비대면 웹기반형 크라우드노동을 수행하는 프리랜서가 주된 적용대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미 고용노동부와 노동연구원이 공동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협의의 플랫폼 종사자 중 웹기반형은 23%에 불과하다. 배달·대리운전·택배·모빌리티택시기사 등 당연히 노동법이 적용되어야 할 지역기반형(77%)이 무려 3배 이상 많다.

 

물론 법안에 따르면 프리랜서가 아니라 노동자로 인정될 경우 노동법을 우선 적용하도록 하는 유리의 원칙(법 제3조)이 명시되어 있지만,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7~8년이 소요되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와야 하는 당사자들 입장에선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우리의 이런 생각은 단순한 의심이 아니다. 지난 6월 이 법안을 홍보하기 위해 안경덕 고용노동부장관이 찾은 첫 번째 현장은 다름 아닌 배민라이더스 센터였다. 장관은 그 자리에서 이 법이 입법되면 전업 배달기사는 물론 부업으로 일하는 배민 커넥터 등 모든 플랫폼 종사자가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아니, 노동법으로 보호받아야 할 배달 노동자에게 어째서 플랫폼종사자법을 적용해 노동법 영역에서 밀어내겠다는 것인가.

 

그뿐이 아니다. 9월 30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비대면·디지털 일자리 노동자의 과로사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며 플랫폼종사자법 입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배달 라이더, 택배 기사, 물류창고 일용직 등 최근 과로사로 죽어가는 플랫폼 노동자 모두 당연히 노동법과 중대재해법이 적용되어야 할 이들이다.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 제3지대를 만들겠다는 위험천만한 길, 결국 플랫폼종사자법이 정조준한 목표가 이것이었음을 고백한 것 아닌가.

 

이미 플랫폼 기업에 종속성이 높아 노동자로 인정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019년 11월 요기요 배달 라이더가 노동자라고 확인했고, 중앙노동위원회 역시 타다 드라이버, 대리운전 기사가 노동자라고 잇따라 판정했다. 제아무리 AI를 내세우고 알고리즘으로 통제한다 하더라도 노동자인 이상 플랫폼 노동자들은 당연히 노동법을 적용받아야 한다. 그런데 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굳이 플랫폼종사자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가? 

 

사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낯선 주장이 아니다. 자본은 노동법을 회피하기 위해 각종 수단을 쉬지 않고 고안해왔다. 특수고용을 만들어 노동자가 아니라 부정하고, 간접고용으로 바지사장에게 사용자 책임을 떠넘겼다. 우리는 이미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경험했다. 이름만 ‘보호’인 이들 법률을 통해 뼈아프게 배운 교훈은 무엇인가? 플랫폼 노동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한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익하고 유해한 가짜 보호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플랫폼 기업을 통해 일하는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하고 일하는 모든 사람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기존 노동법을 확장해가야 한다.

 

정부는 언제까지 호박에 줄을 그어 수박이라 우길 건가. 가짜 보호법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품종을 내놓아야 한다. 지난 9월 13일 유럽연합의회는 “라이더, 운전기사 등 플랫폼 노동을 위한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적 권리 보장(Fair and equal social protection for riders, drivers and other platform workers)” 결의안을 찬성 524표, 반대 39표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의결한 바 있다. 결의안에 따르면 ▴기존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권리와 완전히 동일한 권리를 플랫폼 노동에 보장할 것 ▴입증책임을 전환해 노동자인지 여부를 사용자가 입증하도록 할 것 ▴배달·운수 플랫폼에서 일하는 라이더·운전기사의 경우 각종 사고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상해보험을 보장할 것 ▴알고리즘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노동자들이 언제든지 문제를 제기하거나 수정을 요구할 권리를 보장할 것 등을 명시하고 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호주 등 세계 곳곳에서 플랫폼 종사자를 노동자로 인정한 판결이 쏟아지고 있으며,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법·제도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이런 세계적 흐름과는 정반대로 한국만 역주행을 하며 플랫폼 기업의 손을 들어주려는 것인가. 4차산업혁명이네 혁신이네 포장하지만 결국 노동법 적용 배제라는 사기를 치기 위한 명분이었을 뿐, 국민과 노동자를 우롱하며 거대한 괴물 플랫폼이 되어버린 카카오·쿠팡·배달의민족·네이버의 모습을 지금 보고 있지 않은가.

 

지금 이 법안을 누가 지지하고 있는가? 플랫폼 기업을 대변하는 사용자단체 코리아스타트업포럼만이 플랫폼종사자법을 환영하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법안의 성격이 분명하지 않은가. 정부는 지난해 12월 일자리위원회에서 노동계의 반대 의견을 묵살했고, 플랫폼 노동 당사자와 시민사회의 우려를 일관되게 무시한 채 플랫폼 종사자법을 강행·추진해왔다.

오늘 모인 플랫폼 노동 당사자들, 그리고 이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목소리를 내려 한다. 플랫폼종사자법은 플랫폼 노동자로부터 노동법을 빼앗고, 플랫폼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해롭고 위험한 법이다. 이 법의 추진을 중단하고, 플랫폼 노동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플랫폼 노동에 노동법을 적용하고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입법 논의를 시급하게 시작해야 한다.

 

2021년 10월 5일

 

 플랫폼 당사자 및 시민사회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 당사자 단체 : 라이더유니온/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웹툰노조/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 시민사회단체 : 참여연대/ 민변 노동위원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우리동네노동권찾기

 

보도자료 [원문보기/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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