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비정규직 2009-07-20   1838

비정규직법은 민주주의의 문제

이 글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실행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신 이화여대 도재형 교수가 지난 7월 17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비정규직 관련 법 제도를 논의할 때, 우리는 그것을 노동시장 혹은 시장질서와 관련된 것으로만 이해한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는 한국 민주주의가 존속할 수 있느냐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그 문제는 경제적 차원을 넘어서 민주주의의 유지와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국가는 기업의 경영권과 재산권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킬 의무를 진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건강한 시민, 즉 국가의 앞날을 고민하며 진지하게 토론하고 투표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국가는 건강한 시민을 키우고 보호해야 한다.


노동시장에서 거래되는 노동력을 보유한 개별 노동자가 바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다. 여기에는 비정규직도 포함된다. 하지만 오늘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생각할 때, 그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하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 투표하라는 것은 잔인한 요구처럼 보인다.


참여정부는 2006년 비정규직법을 제정하여, 기업이 2년을 초과하여 비정규직을 고용할 경우 정규직화하도록 했다. 이것은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지를 개선하고, ‘경제적으로 합리적’이지만, 도덕적으로나 규범적으로 용인하기 어려운 기업을 보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초보적 수준의 법률이었다. 이를 통하여 민주주의를 운영할 시민을 보호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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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 법률로 인해 비정규직들의 고용이 오히려 불안해졌다며 정규직화 규정의 적용을 3년간 유예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담겨 있다. 현행 법률에 의하면 기업이 어떤 비정규직을 2년 이상 사용할 경우 그를 정규직화해야 하므로, 기업은 2년이 경과하기 전에 그 비정규직을 해고할 것이고 따라서 비정규직의 고용이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이 전제에는 무서운 내용이 숨겨져 있다. 그 속에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기업’만 존재할 뿐 ‘착한 기업’, 즉 비정규직을 정규직과 동일하게 대우하고 정규직화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기업은 없다. 정부와 여당은 착한 기업을 시장에서 우대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보호하려고 남들보다 더 노력한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런 착한 기업이 망하더라도, 정부가 이를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정부가 보기에 그런 기업은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기업으로 시장에서 도태되어도 무방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부나 한나라당이 착한 기업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다. 그런 기업이나 기업주를 만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착한 기업을 보호하지 않겠다는 나라에서 착한 기업을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정부와 여당의 말대로라면, 우리 국민 역시 앞으로는 노동시장에서 착한 기업을 만날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불행한 국민이고 불행한 국가다.


<도재형 교수,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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