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칼럼(lb) 2009-02-23   1440

[기고] 청년실업에 “소견 짧은” 교수가 대통령께 다시 말씀드립니다

청년실업에 “소견 짧은” 교수가 대통령께 다시 말씀드립니다
[기고] “눈높이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뉴시스> 2009년 2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SBS가 주최한 ‘대통령과의 원탁대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에서의 토론 내용을 소개하며, 필자를 직접 거명하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였다고 한다.

SBS 토론 당시 필자는 현재의 청년실업 문제는 청년들이 자신의 눈높이를 낮춘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했다. 먼저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행정인턴’의 경우 10개월 한시고용이라는 시간적 한계가 있고, 인턴이 하고 있는 일이 전공이나 부서의 고유 업무와 거리가 먼 경우가 많으며, 인턴을 하더라도 향후 채용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점 등의 문제가 있기에 이는 진정한 청년실업 해소 정책이 아니라 청년실업 유예 정책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행정인턴으로 채용된 청년은 2009년 통계에서는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을 것이나, 인턴 기간이 끝나는 내년이면 바로 실업자로 분류되고 만다. 또한 정부가 세계 최초로 체결했다고 홍보하는 ‘미국 대학생 연수취업 프로그램'(WEST)의 경우 참가비와 생활비를 합하면 3000만원이 넘게 들어 가난한 대학생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엄두도 나지 않는 상황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청와대 인턴이나 몇몇 부서의 경우는 인턴의 업무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만, 전국적인 실태를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 행정인턴 모집에 정원이 미달되거나 선발된 사람이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었으나, 시간관계상 여의치 못했다.

▲ 지난달 30일 SBS <대통령과의 원탁대화>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맨 오른쪽은 필자 조국 교수. ⓒ연합뉴스

그러나 대통령은 장·차관 워크숍에서 이러한 필자의 비판에 “정말 화가 났지만, 대통령이란 자리에 있으면서 ‘당신 소견이 짧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라고 토로한 후, “그 교수는 임시직을 안 해 봐서 하는 소리”라며, “임시직이더라도 굶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라고 반문하고, “인턴 같은 임시직도 소중한 일자리”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옛말을 빌자면, 필자가 ‘역린'(逆鱗)을 건드린 모양이다.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것은 업을 삼는 일개 서생(書生)에 불과한 자가 생방송에서 겁도 없이 최고 권력자를 향해 비판적 언사를 일삼으니 ‘어심'(御心)이 심히 불편하셨나 보다. 조선시대 같으면 필자는 즉각 파직되어 오지로 귀양을 떠나 사약을 기다려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권위주의 체제 아래였다면 정권은 필자의 뒷조사를 하여 망신거리를 찾거나, 무슨 빌미를 잡아 구속·수사했거나, 불문곡직 해직시켜 버렸을 것이다. 아, 민주화가 좋은 것임을 이렇게 확인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아니다, 대통령은 필자 같은 자는 즉각 ‘임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사를 장·차관들에게 전달한 것이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나 필자로서는 한 번 더 대통령의 화를 돋울지도 모르는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먼저 필자는 “임시직이 굶는 것 보다 낫다” 거나 “인턴 같은 임시직도 소중한 일자리”라는 대통령의 판단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필자는 과거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하면서 ‘시간강사’라는 임시직을 수년간 경험한 적이 있다.

문제는 필자는 현재와 같은 행정인턴 제도로는 청년실업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하였는데, 대통령은 이를 임시직 경험이 없는 자가 임시직을 무시하며 임시직보다 굶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와 대통령 사이에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에 중대한 장애가 있다는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

필자는 SBS 토론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2000년 벨기에가 실시한 ‘로제타 플랜’을 한국에서도 실시할 생각이 없는지를 물었다. 이는 고용인 수 50명 이상인 민간기업은 전체 고용인의 3%에 해당하는 수만큼 청년실업자를 추가 고용하도록 조치하고, 이를 위반한 기업은 1명 당 매일 74유로의 벌금을 부과하고, 의무를 이행한 기업에게는 고용한 청년에게 들어가는 첫 해 사용자 사회보장 부담금을 면제해주는 정책이다.

이에 대하여 대통령은 그것은 벨기에의 경기가 좋을 때 한 것인데, 우리는 경기가 좋지 않으니 그 정책을 채택할 수 없다고 답하였다. CEO 출신으로 “기업 프렌들리”를 모토를 내세운 대통령으로서는 기업에 부담을 주는 이러한 ‘반기업’적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현재 청년 실업은 ‘로제타 플랜’ 정도의 혁신적 정책이 도입하지 않고서는 해결되기 어렵다. ‘로제타 플랜’은 청년실업을 구조적으로 해소함과 동시에 안정적 소비자층을 창출하기에 기업에도 도움이 되는 정책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답해야 한다. 구직을 위해 100번씩 원서를 넣고도 직업을 갖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눈을 낮추라고 훈계하면 그만인가? 행정인턴으로 10개월간 한숨을 돌리게 해주지만, 그 뒤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다른 행정인턴을 하라고 할 것인가?

이제 정부와 기업은 그간의 “고용 없는 성장” 정책을 폐기하여야 한다. ‘로제타 플랜’ 외에도, 실업고와 전문대에서의 산학협력과 취업약정제의 확대·강화, 조기직업교육 제도의 실시, ‘사회적 기업’ 육성과 청년의 ‘사회적 기업가’로의 변신 지원, 신규취업 연령제한 폐지 등의 정책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예컨대, 일본 고이즈미 정권의 신자유주의 노선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던 나카타니 이와오는 최근 출간된 <자본주의는 왜 자멸했는가>에서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홀렸던 과거를 참회했다. 그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경제사회”, “사회가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과 정부 책임자들에게 이 책을 읽어 본 후 청년실업 해결을 다시 한 번 고민하라고 간청하고 싶다.

* 이 글은 프레시안에 실린 기고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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