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비정규직 2009-03-02   140

[통인동窓] 임시직·빈부격차 당연시시장만능의 포로, 한국인

글쓴이: 이병훈(중앙대 교수)·강은애(중앙대 박사과정)


돈이 돈 버는 세상, 돈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인데, 거기에 대해서 당연히 돈 가진 자가 또 더 가지고 또 더 벌고 투자도 하고. 이 사회가 투자를 해야 돈을 버는 건데, 우리로서는 가진 게 없다보니까 몸으로 투자를 하고 몸으로 때워야 되는 거지요.”


소자본으로 근근이 봉제업체를 운영해오고 있는 강재섭씨가 말했다. 건설일용직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김수택씨도 우리 사회를 ‘돈이 돈 버는 세상’으로 규정한다. 아파트 경비원인 황종수씨와 용역업체 건물청소원인 이경숙씨 역시 ‘너도 나도 없이 살던 옛날’에 비해 ‘지금은 없는 사람이 자꾸 더 없이 빈곤에서 벗어나올 수 없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음을 토로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빈부격차는 있었지만, 지난 10여년 동안의 신자유주의시대를 거치면서, 정부 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듯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가 날로 심화되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남편을 여의고 농사일을 하며 두 자녀와 함께 살아가는 유경희씨는 TV에서 우리 사회의 부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접하면서 “쓰고 싶어도 못쓰고 시장만 가도 벌벌 떠는” 자신의 초라한 신세를 떠올리며 “진짜 기죽죠”라고 털어 놓는다. 강재섭씨는 “전쟁이 확 일어나서 네게 내 것이 되고 내게 네 것이 되는 세상”으로 뒤바뀌었으면 할 정도로 “없는 서민을 죽어라 짜내는” 우리 사회에 대해 선명한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노숙자 된다는 압박감 속에 살아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은 비정규직의 양산과 고용불안 그리고 일터 동료관계의 상실 등을 초래하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삶의 일부로서 가장 뚜렷하게 경험되고 있다. 자동차 제조업체의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고광택씨는 우리 사회에서 과도하게 남용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현실을 빗대어 장차 그의 자녀들이 정규직 일자리를 얻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야, 정규직 없다. 너희 때는 (정규직 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하하 지금 사회가. 저는 그래요, 애들한테, 앞으로 가면 갈수록 대한민국에 정규직은 5% 안이다.”(고광택)


“언젠가는 노숙자 될지도 모른다. 정신 차려라, 그래요. 진짜 할부 한 몇 달 밀려봐요. 차 뺏겨버리고 어쩌다보면 노숙자 되는 거예요.”(이진우)


또한 그는 주변의 비정규직들이 월 120만원의 저임금에 허덕이느라 “월급 받아서 애 하나 못 키운다고 애를 못 놓는” 현실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경숙씨와 홍순임씨는 “만날 뻑하면 자른다”는 위협 속에서 고용불안을 상시적으로 느끼면서 긴장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덤프트럭 지입차 주인 이진우씨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신규진입을 쉽게 허용하는 정부의 탈규제정책에 따라 업계가 포화상태에 놓여 치열한 일감 경쟁에 시달리면서 “언제 노숙자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오현우씨 역시 전문직이라 해도 비정규직 신분 때문에 늘 직장이동을 대비해야 한다. 이처럼 고용 불안과 치열한 경쟁이 지배하는 일터에서는 더 이상 예전 같은 정겨운 동료관계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편한 경험들


고광택씨는 지난 1998년 구조조정을 경험한 이후, 현장 동료들 사이에 “뭐든지 있을 때 최대한 벌어놓고 보자”는 인식이 팽배해졌다고 한탄한다. 이런 인식은 살아남기 위해 점차 자신과 자기 가족의 이익만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개인주의의 확산으로 이어진다. “남이야 망하든 지랄하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개인주의 때문에 일터의 동료관계가 날로 각박해지는 현실을, 비정규직인 조중호·황종수씨 역시 안타까워했다.


공기업의 중간관리자로 일하는 김한성씨는 조직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말까지 ‘올인’하고 있는 자신의 고단한 직장생활을 토로한다. 재벌기업 정규직 사원인 최형철씨는 인사고과경쟁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행복하지 못한 직장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이민이라는 탈출구를 떠올린다. 그러나 언어 및 금전적 자원이 없다면 불가능한 ‘값비싼 도피처’인 이민은 최형철씨 자신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의 서민들에게 손쉬운 대안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생산성-효율성이 지배하는 인식세계


“공산주의가 생산성이 완전 떨어지니까 몰락한 거 아니에요? 능력이 있어도 똑같이 받으니까. 이제 인간이다 보니까 능력 있는 사람들이 능력대로 대우를 못 받는 거.”(조중호)


“경제적인 시스템은 당연히 자본주의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경제 시스템에서의 효율성은 어쨌든 갖고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전체적인 파이를 키우려면 그런 시스템을 갖고 갈 수밖에 없는 거고.”(오현우)


자동차공장 사내하청으로 일하는 조중호씨와 금융기관 전문계약직으로 종사하고 있는 오현우씨 모두 효율성과 생산성 그리고 능력주의를 기준 삼아 몰락한 공산주의에 비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우위를 내면화하고 있다. 이는 경제적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규범이 은근하게 우리 서민들의 사고방식에 깊숙하게 스며들어,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작금의 변화에 대해서조차 당연시하는 가치판단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면화된 무한 경쟁 논리


아파트 경비원인 황종수씨와 박영국씨는 최저임금제의 적용으로 인건비가 상승하게 되자, 아파트 단지에 전자경비시스템이 도입되어 상당수의 동료 경비원들이 “잘리게 되었는데도” 인건비 절감을 위해 “그럴 수밖에 없지요”라고 손쉽게 감내하고 있다. 홍순임씨는 자신이 청소용역업체에 근무하며 박봉에 시달리면서 용역업체의 경쟁을 통해 인건비 절감이 이뤄지고, 용역업체가 없어지면 실업자가 많이 생기는 문제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청-용역업체들이 “앞으로 (경제) 발전이 되려면 그런 게 있기는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기간제 교사인 최미경씨는 “엄청 경쟁”에 내몰리는 민간 회사들과 달리 “학교에는 경쟁이 없어 느슨하다”고 지적하면서, 경쟁 도입을 통해 “애들이 싫어하는 선생님은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상이 확 뒤집어 졌으면 좋겠다


강재섭씨는 “세상이 확 뒤집어졌으면 좋겠다”는 말 뒤에 허탈한 웃음을 남겼다.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빈익빈 부익부의 세상이라고 판단을 하면서도, 큰 아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 번듯한 직장을 구한다는 것 즉, 현재의 경쟁 속에서 밀려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설일용직인 이창석씨 역시 건설일용직의 수입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사회 불평등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이를 달관하며 잊으려 하거나, 아예 ‘자연스러운 것’으로 자기 최면을 건다. 일자리 찾기가 더욱 어려운 장애여성인 장현희씨는 4대 보험에도 들기 어려운 식당주방일을 하면서 현실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나머지 “나쁜 일자리”라 해도 큰 불만은 없다고 말한다.


심각한 청년실업의 문제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고지은씨는 점차 ‘일의 목적’을 찾기 어려운 대중들의 내면을 보여준다. 자아실현으로서의 일이라기보다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일이 바로 그것이다. 고지은씨는 아르바이트로 편의점 두 곳에서 밤낮으로 일하기 때문에 몸은 고달프지만 “돈 벌면 좋잖아요”라고 말한다.


박봉에도 증권 투자하고 돈 잃고, 시장의 노예로


사회양극화가 심화될수록,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보상받는 것이 어려워진다. 고임금과 저임금이라는 일자리의 양극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융 중심의 축적체제로의 변환을 주요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은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개인들을 금융투자(주식, 증권 및 펀드)로 유인한다.


“증권, 그것도 거의 중독성이에요.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힘들어요.… 보통 때는 점심 먹고 증권회사 나가보고. 왜 나가냐 하면 뉴스도 접해보고 돌아가는 방향도 듣고…. 그래서 한 번씩 나가고. 증권회사 끝나면 거기 친구들하고 소주 한 잔하고.”(박영국)


오늘의 세계적 금융위기에서 드러나듯이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는 많은 서민, 즉 개미투자자들로 하여금 금융투자로 큰 돈 벌기를 바라는 욕망의 굴레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있다. 박영국씨는 아파트 경비일로 받는 박봉의 상당수를 꼬박꼬박 증권투자에 갖다 바칠 만큼 중독되어 있다. 조중호씨와 김한성씨 그리고 최미경씨의 남편 역시 증권투자 중독의 유사 경험을 들려주고 있으며, 이경숙씨와 조중호씨는 소액이나마 펀드투자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모두가 주식장세에 휘둘려 결국 적잖은 손해를 보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본전 생각에 더욱 증권중독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무한 경쟁의 피해자도 자녀를 경쟁에 단련시켜


각종 광고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펀드상품들은 일을 통해 제대로 돈을 벌 수 없는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이 된 듯하다. “노후자금이다 생각하고” 펀드를 계속 하고 있는 김한성씨는 그 좋은 예이다. 재산 불리기와 더불어 자녀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소망일 것이다. 이 때문에 빈부의 차를 막론하고 교육투자에 열중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보게 된다.


“너네(두 자녀)는 절대 이 길(농사)로 나서서는 안 된다고 못이 박히게 가르쳐요. 나중에 서울 가서 머리 굴리면서 펜 들고 일하든지 햇볕 뜨겁지 않게 햇빛 막아주는 데서 일하라고.”(유경희)


고단한 농촌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 딸의 교육에 열 올리는 유경희씨나 “엄마, 아빠 꼴 나지 않도록” 자녀들의 공부를 다그치는 김수택씨, 그리고 날로 심각해지는 일자리경쟁에서 살아남게 하기 위해 자녀의 대학진학과 공무원시험 등을 일일이 챙기고 있는 조중호씨 모두가 자식들이 현재 자신들의 처지보다 발전되길 바라면서 악착같이 자녀교육에 열중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행복하게 살기? 악착같이 살아남기?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 경쟁적 교육 시장에 맹렬히 뛰어드는 사람들,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많이 일 해야 하는 사람들, 돈이 돈을 버는 세상에서 노후 밑천 마련을 위해 금융재테크투자에 열 올리는 사람들의 일상적 삶은 그야말로 ‘신자유주의적’이다.


살기 위해 무조건 경쟁에서 뒤처지지 말아야 하는 사회가 될 때, 우리의 삶을 짓누르는 것처럼 보이던 신자유주의는 어느새 우리의 삶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와 자연스러운 생활규범으로 작동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는 수많은 서민들에게 고달픔과 불안 그리고 좌절감을 안겨주면서 동시에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일상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전지구적 금융위기를 맞아 많은 지식인들이 신자유주의의 종말과 대안적 경제체제를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지만, 우리의 서민들은 학교와 일터에서 치열한 경쟁논리에 이미 길들여져 자신의 삶을 어느 누구에게 의존할 수 없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삶의 이치를 뼈저리게 체득하며 살아가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의해 야기되는 양극화의 부조리와 사회공동체의 위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이 같은 현실에 가위 눌려 살아가는 우리 서민들이지만, 그들의 반응은 그저 순응하는 듯 덤덤하기만 하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정책의 이념으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과 사회관계에 스며들어 그들의 생활양식이자 문화적 규범으로 강고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 이 기사는 17인의 일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담은 <양극화시대의 일하는 사람: 환경미화원에서 변리사까지>(2008, 창비)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임을 밝혀둔다.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다음은 구술자 명단.


황종수(남, 62세, 아파트경비원·용역)
이경숙(여, 43세, 건물청소원·용역)
박영국(남, 65세, 아파트경비원·용역)
조중호(남, 52세, 제조업·사내하청)
홍순임(여, 60세, 건물청소원·용역)
고광택(남, 45세, 제조업-대기업정규직)
최미경(여, 36세, 기간제교사)
김한성(남, 42세, 공기업·정규직)
오현우(남, 35세, 금융업·전문계약직)
이진우(남, 48세, 덤프트럭운전사)
고지은(여, 22세, 편의점·아르바이트)
최형철(남, 30세, 대기업정규직)
장현희(여, 47세, 식당노동자)
강재섭(남, 40세, 봉제업운영)
이창석(남, 51세, 건설일용직)
김수택(남, 50세, 건설일용직)
유경희(여, 42세, 농민)


<이병훈(중앙대 교수)·강은애(중앙대 박사과정)>


※ 이 글은 경향신문 2009년 3월 2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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