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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회위원회    차별없는 노동을 위해 노동정책대안을 제시합니다

  • 캠페인&노동히어로
  • 200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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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홍근(참여연대 자원활동가)


장애인이 안타까운 것은 장애로 인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라는 딱지를 붙여 외면하는 사회가 안타까운 것이다. 17일 참여연대에 모인 장애인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닌, ‘장애인’으로만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대해 말을 꺼냈다.

참가자 전원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단지 장애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편견을 적극적으로 고쳐나가야 하는 장애인 복지단체들이 같은 이유로 장애인 노동자를 차별한다는 것이다. 장애인 복지관에 이력서를 냈다가 장애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은 이의 말은 그곳이 장애인 복지관인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었다. 여기에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시각장애인의 임용을 거부한 사례까지 더하면 편견은 더욱 광범위하게 퍼져있음을 알 수 있다.

장애인들이 하는 일은 대다수가 단순노동이다. 장애인 고용 장려금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제도를 통해 싼 임금으로 기존 직원들이 하기 싫어하는 허드렛일을 맡기는 식이다. 장애인들은 길어야 2년을 버티지 못한다. 그들이 일을 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일을 너무나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야근은 죽도로 했다. 경쟁성, 효율성의 논리가 조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 보조를 맞춰 가려하다보면 몸에 무리가 온다.”

장애인이라서 이것밖에 못했느냐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항상 남보다 먼저 출근하고, 남보다 늦게 퇴근하며 남들이 그날 할 수 있는 일들은 자신도 그날 다 했다. 그러나 언제나 해고 1순위는 자신들이었다고 한다. 능력에 대한 평가보다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회사에 짐이 된다는 편견이 작용하는 탓이다. 몸이 축나도록, 누구보다 열심히 회사를 위해 일하고, 1순위로 해고당해 직장을 잃었을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물론, 단순노동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일’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들도 편견의 희생당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장애인은 같은 팀원들이 현장에 나갈 일이 있으면, 언제나 자신을 두고 나갔다고 말했다. “프로젝트에는 분명히 내 이름 적혀 있는데, 나는 그 현장에 가지도 못하고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혼자 빈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 느낌을 잊을 수 없었다.”

이런 차별의 내면에는 장애인은 우리와 다르다는 차별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한 상사는 심리학과를 졸업한 장애인에게 아주 진지하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장애인 심리, 비장애인 심리가 달라서 서로 소통의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게 무엇이냐?” 마치 장애인은 생각하는 것도 비장애인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장애인은 처음부터 비장애인과 소통하기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마치 장애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하는 걸 보면 오히려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어떻게 교감 나눌지 모르면서, 아는 척 흡사 장애인들 이해했다는 듯이 말하는 게 문제다.”라는 한 참가자의 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참가자들은 장애인 노동자들에 맡는 업무를 해야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장애인을 적극 고용하겠다고 말한 회사에서 시각장애인을 고용했다. 눈이 어느 정도 보이는 장애인이어서 두꺼운 책을 봐야 할  업무를 맡겼다. 그러나 그 시각장애인은 한 곳을 오래 보고 있으면 뿌옇게 되서 보이지 않아 일을 잘 하지 못했다. 그러면 회사에서 다른 적합한 일을 맡겨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일을 못 한다고 질책한다.” 이런 실례는 장애인 노동자라면 누구나 겪는다.

실제 장애인에 적합한 일을 시키겠다고 하는 경우도 대부분은 위 사례처럼 해당 장애인의 장애를 자세히 알지 못해 처음부터 무리인 일을 맡기는 때가 많다. 이런 보이지 이해 부족이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역시 다르다’는 편견을 부풀린다. 청각장애 노동자가 이직률이 가장 높다고 말하는 참가자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청각 장애의 경우 노동은 지장 없지만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오해를 불러일으켜 소외되는 부분 많다.” 장애인이 가진 장애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서부터 편견의 벽은 허물어 질 수 있다.  

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장애인 노동자들과 실제 많이 마주쳐야 한다. 그러나 실제 여건은 그리 좋지 못하다. 장애인 의무고용을 규정한 법은 2%의 장애인 의무 고용을 보장하고 있지만, 대다수 회사들은 이를 잘 지키지 않는다. 처음 언급한 것처럼 정부의 장애인 복지단체 조차 장애인 임용을 거부하는 사례가 이를 잘 말해준다. 참가자들은 정부부터 제대로 법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일반 회사를 보고 의무고용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누가 법을 지키겠느냐고 반문했다.

어떤 사회든 노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권리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장애인 노동자의 문제는 복지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직업재활이란 말을 반대한다.”는 한 참가자의 말도 이와 같다. 장애인은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지원을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는데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국가가 그 일을 찾아줘야 한다. 그러자면 직업재활이 아니라 직업교육이란 말을 쓰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참가자들은 작은 문제들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갈 것을 주문했다. 참가자들은 특히 장애인들의 활동을 도와주는 활동보조인 제도를 꼽는다. 장애인 노동자도 활동 보조인이 있을 경우 훨씬 수월하게 업무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 활동보조인을 활용할 수 있는 최대시간이 하루 세 시간 뿐이다. 이 시간을 더 늘린다면, 장애인 노동 영역 역시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

장애인 의무고용으로 회사에 주는 각종 혜택이나 활동보조인 서비스 확대 등은 모두 국가의 예산이 필요하다. 선천적 발생 장애보다 후천적 질병이나 환경으로 인해 장애인이 된 사람들이 더 많다는 통계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즉, 국가는 특정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음을 상기하고 그런 일을 겪은 이가 사회관계에서 추락하는 일이 없도록 사회적으로 묶어줄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

“장애인은 직장생활을 하는 게 아니고, 직장에서 버티는 게 된다.”는 한 참가자의 말은 장애인 노동자가 겪는 고생을 잘 말해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장애인들을 위해달라는 게 아니다. 장애가 아닌, 능력을 봐 달라는 것이고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를 먼저 봐달라는 것이다. 소통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나는 비장애인이고 당신은 장애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말이 장애인 비장애인지, 그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다. 그냥 인간으로서 바라보면 나와 다른 게 없는 동료를 만날 수 있다. 

그런 시각으로 접근하면 단순히 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펼치는 것을 넘어, 학교 교육에서부터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같이 교육을 받게 한다든지, 당사자인 장애인이 제도권 정치권에  적극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세금을 내는 노동자”이고 싶다는 참가자의 말에 모든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애인 노동자는 ‘일’하고 싶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노동의 권리를 장애인이라고 해서 차별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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