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히어로 FGI ②] 무턱대고 ‘아줌마’ 호칭에 성추행도 예사, 여자라서 겪는 모욕·수치심 만만치 않다

여성노동자 3명 중 2명이 비정규직인 사회

 

 IMF 이후 비정규직 및 저임금 일자리의 비중 증가로 소득불평등과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취약한 사회안전망으로 인해 취약계층의 노동·인권실태는 악화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와 <오마이뉴스>는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노동을 말할 수 있는 <우리 사회 노동히어로가 말한다> FGI(Focus Group Interview)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주>  

 


▲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가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우리 시대 노동 히어로가 말한다> 두번째 FGI(Focus Group Interview, 표적그룹 인터뷰)가 11일 저녁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노동히어로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은 단식 94일차가 되는 12일 오전 병원에 실려갔다. 벌써 두 번째다. 다행히 단식은 중단하기로 했지만 해결점은 보이지 않는다. 어느 새 투쟁한 지 1117일이 되었다.

기륭전자만이 아니다. 이랜드 노동조합의 '스머프'들은 투쟁 이후 두 번째 추석을 맞게 됐다. 투쟁한 지 12일로 448일 됐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랜드그룹은 홈에버를 삼성홈플러스에 넘기고 책임을 회피했다. KTX 여승무원들도 있다. 이들의 투쟁은 어느새 926일차를 맞이했다.

모두 손꼽히는 장기투쟁 사업장이다. 모두 '여성'들이다. 어느 순간부터 언론에 등장하는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에는 항상 여성들이 주인공이었다. 우리나라 노동자 중 54%가 비정규직인 현실. '일하는 여성' 3명 중 2명이 비정규직인 현실이 낳은 '아픔'이다. 하지만 이들을 옭아매고 있는 것은 '비정규직'이라는 굴레만이 아니다. 여성이라서 겪어야 하는 모욕과 수치심 역시 만만치 않다.

11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가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우리 시대 노동 히어로가 말한다> 두번째 FGI(Focus Group Interview, 표적그룹 인터뷰)에서 이들,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비정규직에게 사회가 안기는 모멸감

지하철 차량기지 건물청소를 5년간 한 이덕순(52·현 전국여성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씨는 가계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에 청소일을 택했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터라 마땅히 다른 일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청소일은 생각 외로 사람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는 일이었다.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사무실을 청소하고 나오는데 과장급 직원이 불러서 '책상을 안 닦았으니 닦아라'고 했다. 책상을 닦으면서 책상 위에 쌓여있던 책을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옮긴 뒤 그냥 놓아둔 채 나왔는데 그 직원이 손으로 책상을 탁탁 치면서 책을 다시 원위치 해 놓으라는 것이다. 입도 열지 않고 손짓으로만…."

이씨는 그 순간 직업에 귀천(貴賤)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귀천은 회사의 대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회사는 정규직에게는 '승차권'을 주지만 청소하는 '비정규직'에겐 승차권을 주지 않았다. 당연히 상여금도 단 한 푼도 없었다.

이씨는 "우리에게도 승차권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가 거절했다, 하지만 일하러 가는데 내 돈 내고 역사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화나지 않겠느냐"라며 "그래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개찰구 밑으로 기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호텔에서 룸메이드로 일했던 허장휘 전국여성노조 서울지부장의 경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허 지부장은 "룸메이드가 호텔의 꽃이라고 교육을 받지만 사실 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가씨도 있는데 룸메이드는 무조건 '아줌마'라고 부른다. 존댓말도 쓰지 않는다. 그런데 회식 자리는 데리고 다닌다. 그런 자리에서 성추행을 하는 것이다. 동료 중 한 명은 정직원 두 명이랑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데 성추행을 당했다. 몸을 등 쪽에서부터 훑으며 '우리 데이트나 갈까' 그렇게 꼬시는 것이다. 고객들도 마찬가지다. 룸메이드 앞에서 일부러 자기 벗은 몸을 보여준다는가…. 일하면서 모멸감을 많이 느낄 수밖에 없다."

이랜드에서 계산원으로 일한 정미화(47)씨는 "일할 때 울고 싶은 적이 많았다"라고 했다.

회사에서는 모니터링제를 만들어 정씨가 고객이랑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하는지, 기분을 나쁘게 했는지 일일이 감시했다. 그리고 지적을 받게 되면 휴일에 '친절교육'을 받게 만들었다. 지하에서 30명씩 모여 몇 시간동안 인사만 수십번씩 해야만 했다. 교육을 받으러 휴일에 나오는 것에 대한 수당은 없었다.
 

▲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준비하던 9일 저녁 7시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일터의 광우병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촛불문화제'에서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 <노동과 세계> 이기태  기륭전자 비정규직
 

인간 취급 못받아도 쉽게 못 때려치는 이유

역시 고용에 대한 불안도 높았다. 이들은 하나 같이 어렵게 일을 구했다.
 
정씨는 결혼 이전 무역회사에서 일하며 인정을 받았지만 결혼 이후 직장을 구하려고 하니 비정규직, 임시고용직만이 남아 있었다. 허씨의 경우는 더욱 암담했다.

허씨는 "36살이 넘은 것이 죄지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라며 당시의 절박감을 토로했다. 허씨는 이혼 이후 딸 두 명을 책임지겠다는 생각에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고 했다. 7개월 간 하루에 세 탕씩 일을 나가기도 했다. 그러다 지하철에서 터진 코피가 멎지 않는 일까지 생겼다. 허씨는 당시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힘겹게 일을 구하고 나니 험한 일을 당해도, 인간 취급을 못 받아도 쉽게 못 때려치는 것 아니겠느냐."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3년째 청소를 하고 있는 박갑순(56)씨도 하루에 세번 이상 좌변기를 박박 닦았다. 집에서는 1주일에 한번 할까말까한 일이었다.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지만 식대도 없다. 각자 쌀을 가지고 와 밥을 해먹으며 끼니를 때우는 정도다. 그렇게 일을 해도 마음 한편에 고용에 대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S대가 깨끗하기론 전국 1위 대학교다. 총장도 마음에 들어한다고 알고 있다. 그래도 벌써 10년이나 계약 중이라 올해 재계약이 되지 않을까봐 조마조마했다. 원청과 용역업체가 바뀌면 해고자도 나올 수 있으니까…."

 "법·제도가 권리 찾아주지 않아"… 중요한 건 '투쟁'

▲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가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우리 시대 노동 히어로가 말한다> 두번째 FGI(Focus Group Interview, 표적그룹 인터뷰)가 11일 저녁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노동히어로
 
고용불안은 처우개선을 위한 노력에도 걸림돌이 되곤 한다. 만약 부당한 처우를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면 그날 이후로 그는 해고 1순위가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팔레스호텔 룸메이드로 3년째 일하다가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으로 '미운털'이 박혀 지난 5월 중순 대표격으로 해고된 최명숙(55)씨였다.

 

최씨는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룸메이드로 일할 때 사측의 용역전환 시도에 맞서 승리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들어간 팔레스호텔에서 최씨의 눈에 부당한 사례들이 여기저기에 눈에 띄었다. 이후 최씨는 1년 뒤 룸메이드들을 모두 데리고 여성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성과는 있었다. 사측과 교섭이 잘 이뤄져 좋은 결과를 이뤘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 뒤 호텔은 다른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나머지는 고용승계가 이뤄졌지만 최씨는 '노조 결성의 대표격'으로 해고당했다.

그러나 최씨는 여전히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최씨는 "룸메이드도 전문직이나 다름없다. 단지 사회가 전문직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이라며 "비정규직도 정규직이 하는 일의 양이나 질에 있어서 떨어지지 않는데 차별을 받는다는 것이, 그리고 그 문제점을 모르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최씨와 마찬가지로 이들 모두 투쟁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최근 부당해고를 당했다가 승리한 성신여대 여성 청소부들이 좋은 사례다. 특히 이들은 모두 정부가 공언하는 여성 비정규직 대책 마련에 대해 불신감을 드러냈다.

홈에버 월드컵 매장에서 계산원으로 일했던 장은미(40)씨는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이 만들어달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고, 우리 삶의 애환을 모르는 정치인들이 만들었다"라며 "법은 있는 사람들 위주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씨는 "법이나 제도가 좋아진다고 해서 우리 사정이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실 육아수당, 출산휴가와 같은 법을 현실에서 얼마나 적용받나"라고 반문했다.

"다 빛 좋은 개살구고, 그림의 떡이다. 지금도 합법적인 '구멍'을 찾아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용역업체들도 있다. 우리는 지하철에서 일하면서 노조를 통해 기존에 없던 연차수당을 임금으로 받아내는 등 우리의 권리를 얻어냈다. 사실 나는 이제 다 살았다. 하지만 젊은 여성들이 제대로 인정받고 일하는 세상을 위해서 계속 투쟁하며 살 생각이다. "
 

 

 2008.09.16 09:25 ⓒ 2008 OhmyNews 이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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