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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12월
  • 2015.11.30
  • 994

“그래, 가보는 거야!”

이정아 회원

 

글. 이영미
참여연대 미디어홍보팀 간사. SNS를 맡고 있고, 월말이면 참여사회의 교정을 본다. 종이신문, 종이매체를 애정하는 사람.
사진. 오유진 운영기획팀 간사, 최상천 참여현상소 회원

 

참여사회 2015년 12월호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둘째딸의 서러움을 토로하는 덕선(혜리)에게 아빠(성동일)는 말한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어서 그래.” 인생의 모든 과정이 처음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도전하면서 산다. 그래서 새롭고 낯선 무언가에 도전하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인지 모르겠다.


“근데 참여연대는 꼭 이렇게 정치적이고 무거운 거 해야 되나. 좀 재밌는 거 하면 안돼요? 게이 이야기 할까요? 인권 이야기는 요즘 그게 제일 핫한데. 아니면 세월호로 뮤지컬을 해보는 건 어때요?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능청스럽게 연기를 펼치던 그녀는 생애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올랐다고 했다. 그녀가 참여한 연극 <기억을 기억하라>는 세월호 참사와 개인의 기억을 엮은 것으로 정해진 대본 없이 진행되는 즉흥 연극이다. 참여연대의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의 하나인 시민 연극 워크숍으로 시작하여, 11월에 열린 인권연극제에 참여하기 위해 공동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공연이 끝나고 1주일 뒤, 아직 연극의 설렘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이정아 회원을 카페 통인에서 만났다.

 

 연극, 너는 내 운명?

 연극 무대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은 결심인 듯해요. 어떻게 하겠다고 마음먹게 됐나요?
몇 년 전부터 연극을 좋아해서 많이 보러 다녔어요. 연극이 매력적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할 것이라는 생각은 안했어요. 근데 아카데미에 연극 강좌가 올라온 것을 보고는 그동안 보러 다녔던 연극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더라고요. 작품화되어서 무대 올라가는 건 처음이라고 하던데, 그거 때문에 사실 망설여지면서도 한편으론 기횐데? (웃음) 생각도 했어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기회니까.

 

 맡은 배역이 무엇이었나요?
특별한 배역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각자의 기억을 재구성하여 이야기를 만드는 연극이에요. 대본이 없어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의견을 내고 이야기를 만들고 배역이 정해지는 좀 특별한 연극이었죠.

 

 제목에 ‘기억’이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반복됐는데, 연극이 무엇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기억을 기억하는 게 역사고 생명이잖아요. 모든 것이 소멸해도 남는 것은 기억이고. 강의를 하나 들었는데, 어떤 현장에서 고통 받는 사람이나 힘들었던 사람이 가장 두려운 것이 잊히는 거래요.

 

 세월호 참사의 흔적을 담기 위해 안산을 다녀오셨는데, 뭐가 가장 기억에 남으셨어요?
세월호 기억 저장소와 단원고를 데리고 다니면서 소개해 준 활동가가 기억나요. 거의 자기 생활 없이 매진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까 싶었어요. 저런 분 때문에 세월호의 기억이 연결되고 내가 이 자리에 와있구나 생각이 드는 거예요. 기억을 기억해서 연결해 주는 분들….

 

참여사회 2015년 12월호참여사회 2015년 12월호

 괴로움과 마주하는 법

대부분 사람들은 괴로운 기억은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괴로웠던 기억과 정면으로 응시할 때 우리는 그 괴로움으로부터 담담해질 수 있다. 연극에는 그런 힘이 있다.

 

 고교 시절 전교조 선생님이 해직된 기억을 연극에 담았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연극 수업 다섯 번째 쯤에, 개인이 생각할 때 세월호와 연관 있든 없든 자기의 역사 속에서 슬픔의 순간을 끄집어내 보라고 하셨어요. 그냥 적으라고 했으면 그런 거 안 적었을 거 같은데, 세월호 내용으로 참여하고 있는 거잖아요. 왠지 모르게 그 기억이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굉장히 고통스러웠나 봐요.
선생님에 대한 미안함도 있지만, 아이들의 차가운 시선, 나를 보던 눈빛이 잊히지 않아요.

 

 ‘너 혼자 왜 그러냐’는 시선이었나요?
그렇죠. 완전 괴리된 느낌. ‘잘난 척하네’ 그런 시선. 국사와 가정 선생님이었어요. 두 분 수업은 듣고 있으면 뭉클해지는 게 있었는데 전교조 창립할 때 두 분이 해직이 된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시위를 했는데 어떤 애들은 ‘고 3이라 공부해야 되는데 왜 저래’하는 차가운 반응이었어요. 친했던 애들 얼굴은 기억도 안 나는데, 그 아이들의 눈빛은 기억이 나요.

 

 그 아픈 기억을 어떻게 연극에 녹여내셨어요?
하나씩 하나씩 기억을 꺼내어 봤어요. 그때 학생주임 선생님이 시위하는 아이들을 사진을 마구 찍었거든요. 그런 것도 이야기로 살리고요.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셨지만 재밌었던 거 같네요.
네 재밌었어요. 생각보다 훨씬. 기억을 끄집어내주고, 악역을 맡은 동료가 학생주임 대신 사과도 해주니까 치유도 되고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연극을 만들어가면서 다 같이 울었어요.

 

 연극을 보러온 지인들 반응이 어땠어요?
어떤 후배는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하고, 또 한 후배는 다음에도 하면 불러달라면서 얼마나 준비했기에 이렇게 할 수 있냐고 묻더라고요. 연극을 보면서 우는 분들도 많았는데, 특히 연극 마지막 부분에 이정옥 선생님이 울먹이며 시를 읽으셨는데 많은 분들이 함께 우셨던 것 같아요.

 

 연극을 통해, 선생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연극도 좋았지만, 수업을 시작하고 연극을 올리기까지 끊임없이 자아가 성장하는 느낌이었어요. 인생을 바라보는 철학,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관계 맺기 등 전반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가르치는 것, 즐겁고도 무거운 과제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그녀의 직업은 초등교사다. 6학년 담임. 사춘기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이 나이의 아이들을 대하기란 참 어렵다. 아이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다가가야 하는가, 각박한 경쟁과 사교육 현장을 보며 뭐라고 해줘야하나, 내 역할은 무엇인가, 그녀는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요즘 아이들 하는 거 정말 많죠?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많죠.

 

 교육 현장에서 가장 큰 고민이 뭐예요?
아이들하고 소통하는 거요. 늘 부족한 거 같아요. 그리고 가르침에는 왕도가 없다는 거. 각본 없는 연극 같아요. 이렇게 될 거라는 시나리오를 쓰지만, 늘 그렇게 안 되죠.

 

 교사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많이 고민할 거 같아요.
그렇죠.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지? 그런 고민 많이 해요. 내가 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다, 라고 정해놓으면 뒤로 물러나게 되고 방관자처럼 되죠.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애써요.

 

 아이들에게 꼭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아이들이 자기 자신으로 서기를 바라요. 그거, 진짜 힘들죠. 그런 얘기를 하면 무슨 말 하는지 전혀 모르는 애들도 있지만, 너 자신의 삶을 살라고 하는 말에 울컥해서 감동하는 애들도 있어요. 어떤 아이는 그래요,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넬슨 만델라인데, 선생님이 노예의 삶을 살지 말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고.


 나의 버킷리스트

그가 참여연대 회원이 된 것은 ‘누군가에게 빚진 마음’ 때문이다. 회원이 되고, 아카데미 강좌를 듣고, 마침내 연극 무대에도 함께 했다. 참여연대가 너무 좋아서, 최근 서촌으로 집을 옮겨왔다. 햇볕이 잘 드는 작은 마당이 있는 한옥, 그의 조근조근한 목소리, 섬세한 성정과 잘 어울린다.

 

 한옥에 살면 뭐가 좋으세요?
나무 냄새도 맡을 수 있고요, 마당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좋아요. 툇마루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으면 마음이 참 평온해져요. 남들은 어떻게 이런 집을 구했냐며 부러워해요. 운이 좋았죠. 전세집을 보러 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그 집을 짓고 있는 중이었어요. 직접 집주인과 만났고 얘기가 잘되어 구할 수 있었어요. 집이 너무 편해서 어디 공원이나 카페에 따로 나가고 싶지 않아요(웃음).

 

 올 한 해도 저물어 갑니다.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당연히 연극이죠. 연극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들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는데, 뭐든 씩씩하게 결정하는 분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물었죠. “어떻게 그렇게 용기 있게 결정하세요? 저는 불안하고 무서워서 못 하겠어요”라고 했더니, “나도 엄청 불안해,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불안한데, 그래도 하는 거야” 하시더군요. 그때 아, 이거구나 싶었죠. 불안해하면서도 어떻게든 나아가는 것, 그게 필요한 거죠.

 

 새해 계획이나,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제가 호기심이 좀 많아가지고, 하고 싶은 게 많아요. 구체적인 계획이라면 2016년에 휴직을 생각하고 있어요. 가르치는 일을 잠시 접어두려고요. 요즘 뒤늦게 오춘기가 와서요.(웃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아야겠다 싶어요. 휴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일단 해봐야 그 다음에 또 뭔가 할 수 있는 힘이 나올 것 같아요.

 

2015년. 그녀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연극무대에 오르고,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고, 또 시대의 아픔을 만났다. 새로운 시도와 배움은 2016년에도 계속된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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