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10월 2015-10-02   2050

[역사] 국정 교과서의 추억

국정 교과서의 추억

글.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참여사회 2015년 10월호 (통권 227호)ⓒatopy

 

누가 편향적일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뜨겁다. ‘사실에 충실한 중립적인 교과서를 만들려면 국정을 해야 한다.’ 국정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참 씁쓸한 논리다. 유신독재 시절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여 정권찬양의 도구로 전락시킨 세력의 계보에서 나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역사전쟁은 주로 현대사 서술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2000년대 들어와 보수·우파세력은 검정으로 6종이 나온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싸잡아 편향적이라는 이념적 꼬리표를 붙였다. 근현대사 연구와 교육에 기반을 두고 집필된, 학문과 교육의 가치에 충실한 정상적인 교과서를 비난하며 역사교육을 정쟁의 장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에겐 편향과 중립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거론할 자격조차 없다. 예전 국정 교과서를 펼쳐 보라. 상상 그 이상의 편향적 서술에 놀랄 것이다.

 

5.16쿠데타와 10월 유신, 민주주의를 위한 선택?

박정희 장군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혁명군은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자들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구출하고 국민을 부정부패와 불안에서 해방시켜 올바른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1961년 5월 16일 혁명을 감행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

 

1974년에 처음 나온 국정 국사 교과서의 5.16쿠데타에 대한 서술이다.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혁명이라 쓰고 있다. 10월 유신 역시 한국적 민주주의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2년 10월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처하고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고자 헌법을 개정하고 10월 유신을 단행하였다. 우리는 이제 한국적 민주주의를 정립하고 사회의 비능률과 비생산적 요소를 불식하여야 할 단계에 와 있다.

 

1979년에 새로 나온 국정 국사 교과서는 사실 왜곡까지 감행한다. 이 교과서 현대사에는 단 하나의 사료가 제시되어 있다. 바로 혁명공약이다. 그런데 혁명공약 6항이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세력이 제시한 원문과 다르다. 군사정변세력이 내놓은 혁명공약 6항은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은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1979년판 국정교과서에 실린 6항의 내용은 다르다.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을 조속히 성취하고 새로운 민주 공화국의 굳건한 토대를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는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
 
사연은 이렇다. 군사정변세력은 5·16 군사정변 직후 민정이양을 약속한 본래의 6항을 ‘민간인용’이라는 모호한 근거를 대며 1979년도 판 국정교과서의 6항처럼 개조했다. <민국일보>에서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정치부장인 조세형이 국가재건최고회의령 제15호 위반으로 구속되는 필화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5.18민주화운동 은폐, 전두환 정부 찬양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들어선 전두환 정부에서 나온 국정교과서 역시 유신독재가 걸었던 편향과 왜곡의 길을 따랐다. 1982년에 나온 국정 교과서에는 5.18민주화운동은 은폐하고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10.26사태) 이후 한때 혼란 상태가 나타났고, 이러한 혼란 속에서 북한 공산군의 남침 위기에서 벗어나고 국내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정부는 국가 보위 비상 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뒤 각 부분에 걸쳐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였다.

 

현대사의 맨 마지막 문장은 전두환 정부에 대한 헌사로 끝났다.

제5공화국은 정의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모든 비능률 모순 비리를 척결하는 동시에 국민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민주 복지 국가 건설을 지향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의 장래는 밝게 빛날 것이다.

 

오늘의 청소년에게 결코 보여주고 싶지 않는 수준 이하의 국정 교과서다. 게다가 이렇게 부끄러운 교과서로 배운 세대가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 된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국정에서 검정으로의 진화는 민주화의 산물이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는 분명 실패한다. 설령 국정이 추진된다 해도, 국정 교과서의 태생적 한계인 부실·왜곡·편향의 시비로 역사교육이 바로 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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