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04월 2019-04-01   993

[여는글] 솔바람과 풀꽃 시계의 값

여는글

솔바람과 풀꽃 시계의 값 

 

본래 산에 사는 사람이라

산중 이야기를 즐겨 나눈다

오월에 솔바람 팔고 싶으나

그대들 값 모를까 그게 두렵네

 

《무소유》의 저자 법정 스님이 평소 마음에 새기면서 즐겨 읽은 옛 스님의 선시이다. 이 시의 매력은 ‘솔바람을 팔고 싶으나 값을 모를까 두렵다’는 은유에 있다. 옷깃을 시원하게 스치는 바람이겠으나 사실은 심장에 일침을 가하는 칼바람이다. 시인은 솔바람의 값어치를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혹여 그대는 어설프게 얼마냐고 되물을 것인가. 얼마냐고 묻는 순간, 그대는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 쯧쯧쯧.

 

초등학생 자녀를 둔 아빠가 공원을 거닐다가 풀꽃을 따서 아들과 딸의 손목에 시계를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은 풀꽃 시계를 보고 아주 좋아한다. 그런데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미소 짓던 아빠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진다.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 얼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국민학교 시절, 반 친구들이 거의 다 예쁜 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그의 손목은 허전했다. 아버지에게 사달라고 조르고 싶었으나 조숙한 그는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어느 날, 그는 아버지와 함께 외할머니 집에 놀러 가 함께 들길을 걸었다. 그때 아버지는 들에 핀 풀꽃으로 손목에 시계를 만들어 주고 손가락에는 반지를 만들어 주었다. “참, 멋진 시계지? 이 세상에서 향기가 나는 시계는 이거 하나밖에 없을 거야, 참 예쁘구나.” 그날 밤 어린 아빠는 풀꽃 시계가 망가질까봐 조심하면서 잠을 잤다. 이제 또 물어보자. 그때 그 풀꽃 시계는 값은 얼마였을까. 그는 과연 풀꽃 시계를 누구에게 팔 수 있었을까. 이 물음에 답을 할 수 있다면 그대는 다시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 쯧쯧쯧.

 

세상에는 소중한 것들이 참 많다. 그래서 그것들을 가지고 싶어 한다. 오래도록 간직하면서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내게 의미가 있고 유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가치’라고 한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나를 기쁘게 하는 가치를 찾고 누리면 우리는 행복한 삶이라고 말한다. 

 

가치에는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 고유의 가치, 특별한 가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빠의 풀꽃 시계는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그만의 고유하고 특별한 가치다. 오월에 부는 솔바람의 멋을 감수하는 일은 저마다의 취향이다. 그러나 지상의 ‘공기’는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절대적이다. 풀꽃 시계의 추억과 의미는 아빠와 아이가 교감하는 소중한 가치이지만 ‘시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누려야 하는 소중하고 절대적인 다수의 가치이다. 

 

누구나/모두와 함께 누려야 하는 것들, 우리는 그것을 ‘공공재’라고 한다. 공공재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냥 ‘공공의 가치’라고 하자. 함께 누려야 할 것들은, 더불어 누리지 못하면 균형이 깨진다. 소수가 불공정하게 독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의 법칙은 참으로 엄정하다. “혼자만 살고자 하면 혼자도 살 수 없다. 함께 살고자 하면 나도 너도 살 수 있다” 공공의 가치 존중은 선심성이 아니다. 당위성이다. 이치가 그러하기 때문에 그러해야 하는 당위성이다. 

 

공기, 에너지, 토지, 물의 사대 원소는 우주의 원천이며 인간사회의 공공재이다. 생명, 안전, 건강, 주거, 교육은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삶의 공공재이다. 공공의 가치란 다름 아닌 공공의 이익을 말한다. 교육을 앞에 두고 사업과 장사의 논리로 횡포를 부린 유치원 사태는 실로 공공의 적이 되었다. 왜 수학에 ‘공통분모’가 있는지 생각해 본다. 우리 사회의 공통분모가 많을수록 좋은 세상이리라. 

 

공공재

 


글. 법인스님 참여연대 전 공동대표,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을 지냈으며, 전남 땅끝 해남 일지암 암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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