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03월 2020-03-01   1202

[특집] 18세 선거권과 밀레니얼 정치의 가능성

특집2 세대가 바뀐다?

18세 선거권과 밀레니얼 정치의 가능성 

글. 서현수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전문대학원 조교수, 정치학 박사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와 미래 세대의 정치 참여   

2020년의 오늘, 우리는 글로벌 기후위기와 경제사회 불평등 심화, 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질적 변환, ‘탈진실 시대’의 도래와 현대 민주주의 공론장의 위기, 미중 패권 경쟁 및 국제안보질서의 취약성 증대, 그리고 신종 바이러스 확산 등 사회적 재난의 일상화 등 다층적이며 중대한 사회 변동과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당면한 위기와 전환기적 상황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기존 산업사회적 문법과 상상력에 기초해 성립된 정부 거버넌스와 대표 시스템, 그리고 이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기성 정치세력들 속에서는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해법과 대책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고 있다. 기성 정치의 무능과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널리 퍼져온 핵심 이유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아동, 청소년 등 미래 세대가 기성세대와 시스템의 성찰 및 대안 제시를 촉구하고, 나아가 직접 정치 현장에 뛰어들어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학교 기후파업(school strikes) 직접 행동으로 글로벌 환경정치와 청소년 참여 운동의 아이콘이 된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가 대표적이다. 유럽과 북미, 오세아니아 등 여러 대륙의 발달한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청년 그룹들의 정치 참여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괄목할 도전과 성취를 과시하면서 민주주의의 질적 진화와 이를 주도할 잠재력을 지닌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알리고 있다. 

 

핀란드, 30대 초반 여성 총리의 탄생은 어떻게 가능했나?

핀란드는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2019년 12월 정부 연정의 위기 상황에서 34세의 젊은 여성 총리 산나 마린(사민당)이 등장하면서 핀란드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특히, 연정에 참여한 5개 정당(사민당, 중앙당, 녹색당, 좌파동맹, 스웨덴인민당)의 대표가 모두 여성이고, 그중 4개 정당의 대표가 30대 초반의 여성들로 구성되면서 더욱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산나 마린은 가난한 싱글맘/동성커플 가정에서 성장한 뒤 백화점 상점 직원 등 다양한 직업 활동을 거친 청년으로 불평등 해소와 기후위기 해법 마련 등을 최우선적 정책 목표로 제시하였다. 

 

청년 정치의 관점에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산나 마린이 이미 20대 초반에 사민당에 가입한 뒤 대학과 지역에서부터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26세에 시의회 의장, 30세에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34세에 재선 국회의원 및 교통통신부장관을 거쳐 총리에까지 올랐다는 점이다. 이는 핀란드에서 결코 예외적 경로가 아니며, 정부에 참여한 다른 젊은 정당 대표들도 모두 비슷한 이력의 소유자들이다. 
 

핀란드는 15세부터 정당 가입이 허용되며, 정당 청년 조직(party youth organization)은 모 정당의 중요한 인재 충원 통로이자 정책 싱크탱크로서 기능한다. 또한, 국회의원과 지방자치 선거에서 전면적인 (권역별) 비례대표 선거제도를 운용함으로써 폭넓은 스펙트럼의 다당제 정당체계와 합의 민주주의를 구현함은 물론 청년, 여성 등 다양한 사회집단이 정치적으로 대표되는 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평등한 교육과 보편적 복지국가의 힘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핀란드는 북유럽의 보편적 복지국가로 전 생애 주기에 걸쳐 시민들이 처하는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고 평등한 복지와 사회보장을 제공하는 효과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실제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한 산나 마린이 젊은 나이에 정치활동에 뛰어들고 총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요인으로 핀란드의 우수하고 평등한 교육 시스템과 복지국가가 기능하였다. 이는 산나 마린 자신이 언론 인터뷰 등에서 항상 강조하는 점이다. 민주주의란 “나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의 정책 결정 과정에 나도 참여해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가르치는 학교 안팎의 시민교육은 기본이다. 

 

물론 산나 마린과 그녀의 정부 앞에도 어려운 과제와 도전들이 산적하다. 특히, 주류 정당들에 대한 불만과 EU 통합 및 이민·난민 반대 정서를 정치적으로 동원하며 최근 세를 늘린 극우 포퓰리즘의 도전을 극복하면서 포용적이며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를 위한 제도 개혁에 성공해야 한다. 나아가,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민주주의 시대가 제기하는 도전과제들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후기근대적 조건에 걸맞은 열린, 포용적 민주주의의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

 

기본소득당  다운로드

‘기본소득’이라는 의제정당으로 창당 1개월여 만에 당원 2만 여명에 육박하는 기본소득당(왼쪽)과 남성 기득권 중심의 기성정치를 흔들겠다는 녹색당의 ‘2020여성출마프로젝트’(오른쪽). 이번 총선에서 소수정당들은 3%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출처 기본소득당, 녹색당 홈페이지 갈무리 

 

18세 선거권, 청년 정치와 민주주의 혁신 위한 첫걸음    

한국에서는 20대 국회가 곧 임기를 마치고 2020년 4월 총선을 통해 21대 국회가 구성될 예정이다. 지난 연말에 이루어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이번 선거에서부터는 만 18세 이상의 시민이면 각급 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학교에서의 선거와 시민(정치) 교육을 둘러싼 논쟁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는 아직 18세 선거권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채 되어있지 않은 모양새다. 그동안 청소년 참여와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중앙선관위조차 정작 이번 총선을 앞두고 추진되던 서울시교육청의 청소년 모의 선거를 금지하는 등 모순적 행보를 보이는 데서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적 시민권의 실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더욱이, 이번 선거법 개정에서도 피선거권 연령 기준은 다루어지지 않았다. 대통령 40세, 국회의원과 지자체장 및 의원 25세의 피선거권 규정 역시 과도하게 보수적인 것으로 21대 국회에서 추가 법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참정권은 투표권에 국한되지 않고, 필요하고 원한다면 자신이 직접 정치적 대표가 되기 위해 선거에 나설 권리까지를 포함하며, 그러한 기회와 가능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될 때 10~20대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 동기와 정치적 효능감도 제대로 형성될 것이다. 특히, 취업과 경제생활 등 삶의 필연적 조건들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20대 초반 시민들이 ‘세계애(amor mundi)’의 실현과 공동체 업무를 위한 정치 활동에 높은 수준으로 참여할 기회가 제도적으로 막혀있고, 이로 인해 청년의 정치 참여와 관련해 중요한 경력 단절이 초래되고 있어 개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주요 정당들의 선거 후보 공천과정은 물론 선거 사이의 시기에 이루어지는 정당 활동 과정에서 청년 조직의 위상과 역할이 전향적으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최근 많이 논의되는 청년수당이나 기본소득 그리고 사회주택 등의 정책 방안도 청년의 정치·사회 참여를 위한 물질적 기반 제공의 측면까지 고려해 더욱 진지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청년 정치나 청년 정책을 ‘악세서리’처럼 활용하는 행태는 이제 극복되어야 하며, 청년 당사자들도 정치적, 정책적 식견과 역량을 기르고, 적절한 자원과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자력화(empowerment)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18세 선거권 시대의 도래가 향후 청년 시민들의 온전한(full-scale) 참정권 보장으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기성 정치와 대의 민주주의 전반의 미래지향적 혁신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특집 바뀐 선거, 바뀔 세상?

1.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한계와 극복 방안  김형철

2. 18세 선거권과 밀레니얼 정치의 가능성 서현수

3. 한국판 ‘보이스텔스바스 합의’는 가능한가 장은주

4. 새로운 선거제도, 21대총선 가이드  오유진, 민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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