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12월 2021-11-30   610

[특집] 홍콩 시민사회의 오늘과 미래

Before 

2019~2020년 아시아를 뜨겁게 달군 홍콩의 민주화 운동. 그러나 2020년 6월 30일, 중국 정부는 홍콩의 자치권을 억압하는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강행하였고, 이후 홍콩의 민주화 운동은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홍콩 역사상 가장 대규모, 장기간에 벌어진 시민 항쟁은 이대로 사그라지는가?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 홍콩인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나. 


 

After

홍콩 시민사회의
오늘과 미래

 

글. 홍명교 플랫폼C 동아시아팀 활동가

 

 

홍콩 역사상 가장 대규모, 

장기간에 걸친 시민 항쟁 

 

2019년 6월, 200만 거리 행진으로 촉발된 홍콩 항쟁은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침체와 당국의 강력한 탄압으로 인한 위축으로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이 운동은 홍콩 역사상 가장 대규모로, 장기간에 걸쳐 벌어진 시민 항쟁이었고, 중국 중앙정부와 홍콩 경찰당국의 전방위적 탄압으로 종결된 동시대의 비극이다.

 

이 운동이 지속되는 동안 2명 이상이 명백한 항의 입장을 드러내며 자결했고, 2명 이상이 경찰 폭력에 목숨을 잃었다. 시위 과정에서 약 3천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1만 250명이 체포됐고, 2천 5백여 명이 기소됐다. 적지 않은 활동가들이 해외로 망명했고, 중산층 시민의 이민 행렬도 이어졌다. 2019년 6월부터 2020년 4월 초까지 홍콩경찰이 사용한 무기 수량은 최루탄 16,191발, 스펀지탄 1,880발, 포대탄 2,033발, 고무탄 10,100발, 실탄 19발, 페퍼스프레이 1,491병, 최루액 107병, 물대포차 출동 65일, 장갑차 출동 68일이었다.

 

이 운동은 홍콩 청년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는 가운데, ‘보편적 참정권’에 대한 약속이 노골적으로 부정된 데 따른 정부에 대한 강한 환멸, 경제적 불평등이 구조화된 현실에 대한 분노에서 촉발됐다. 홍콩의 민주파 시민과 청년들은 자신이 직면한 사회 불평등과 정치적 압제가 홍콩의 부동산과 정치권력을 장악한 엘리트들의 정치 노선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겼다. 홍콩 출신의 정치경제학자 훙호펑은 “청년들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보고 있다”며, 이것이 분노의 배경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홍콩 항쟁은 150년 식민지 역사에서 축적된 모순, 자본주의 위기 국면의 미·중 간 대결이라는 국제 정세, 글로벌 금융도시의 분업화된 노동구조와 이주노동, 전통적인 부동산 재벌 체제와 불평등 문제, 중국 대륙 내부 사회운동과 홍콩 시민사회의 관계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혼재돼 있다. 2019년 11월 치러진 구의회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거둔 역사적 승리는 아무런 전망도 그릴 수 없었던 이 항쟁의 ‘다음 전망’을 위한 준거를 마련해주었고, 동시에 중앙정부가 이 운동을 완전히 무너뜨려야만 한다고 여기게 만들기도 했다.

 

2021년에도 계속된 홍콩 탄압과

‘직공맹’ 등 주요 사회운동 조직의 해체 

 

2020년 초까지만 해도 홍콩 항쟁의 기세는 나쁘지 않았다. 100만 시위로 새해 첫날을 맞이했고, 2월에는 의료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조직하기도 했다. 홍콩의 민주노총격인 ‘홍콩직공회연맹香港職工會聯盟’(이하 ‘직공맹’)은 수만 명을 조직하면서 새로운 저항주체들을 노동조합이라는 틀로 묶어내고 있었다. 이들은 마치 ‘친서방이냐 친중국이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던 운동의 향배를 둘 모두가 아닌 ‘대안 홍콩’의 상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근거하면서도, 중화민족주의를 거부하고, 대륙의 사회운동 역량과 연대할 수 있는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 직공맹은 오랫동안 대륙의 노동자운동과 연대해왔다. 그러니 이것은 조슈아 웡 등 미국 공화당 정부의 백인우월주의자들과도 서슴지 않고 연대하고자 했던 친서방 외교 노선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시도는 중앙정부의 전방위적 탄압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4~5월 시도됐던 도시 총파업은 당국의 방해로 투표율을 채우지 못했고, 급기야 5월 말 중국 인민대표대회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발의함으로써 홍콩의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부정할 것임을 드러냈다. 전국인민대표대회는 홍콩기본법 18조를 무기로 삼아 홍콩 시민사회를 옥죄었다. 애초부터 ‘헌법’이라고 하기에는 불안정한 지위를 갖고 있던 기본법이 중앙정부의 의지에 의해 격하된 셈이다. 실제 이는 일국양제의 완전한 종결을 의미한다.

 

2021년에도 홍콩 사회운동에 대한 탄압은 지속됐다. 사회민주연선의 렁쿽훙과 지미 샴, 공당(노동자당) 소속 시드 호 전 의원과 직공맹 리척얀 사무총장 등 홍콩 사회운동의 대표적 인사들이 구속됐고, 8월 10일에는 최대 산별노조인 홍콩교육전문인원협회香港教育专业人员协会가 48년 역사를 끝으로 해산했다. 9월 25일엔 1989년 톈안먼 항쟁에 대한 연대 운동을 계기로 창립한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香港市民支援愛國民主運動聯合會가 32년 만에, 10월엔 직공맹이 31년 만에 해산했다.

 

 

“사람의 마음이 죽지 않는 한 우리는 

다시 거리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홍콩은 표면상 미국식 시장자본주의와 중국식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충돌한 전장이었지만, 두 모델 모두 절대다수에 대한 소수의 지배, 양극화의 심화, 불평등과 노동권의 박탈 등을 공유한다. 능력에 따른 보상을 우선한다는 리버럴리즘이나, 권위주의 정부의 현능賢能정치나 평등과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민중의 삶을 지켜줄 대안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모순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지난 11월 13일, 홍콩 내 음식배달 플랫폼 시장 점유율 1위 기업 ‘푸드판다’의 배달 노동자들은 5일에 걸친 파업을 통해 플랫폼 기업의 착취에 맞서 홍콩의 평범한 사람들이 단결하고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줬다. 사측과의 협상 끝에 성공적으로 끝난 이 투쟁은 연맹조직이 사라진 이후에도 여전히 현장에서부터의 운동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감옥에 있는 홍콩의 많은 활동가들은 다시 희망의 근거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하며, 미래를 기약하고 있다. 최근 홍콩과 미얀마에서 벌어진 저항에 유독 많은 관심을 쏟고 연대의 목소리를 냈던 한국 시민사회 역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꾸준한 연대를 이어나가야 한다. 

 

 

참여사회

ⓒJoseph Chan

 

이제 홍콩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누군가 말했듯 홍콩의 미래는 벽 위에 쓰여 있지 않다. 

세상일은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며, 오직 사람의 마음이 

죽지 않는 한, 언젠가 우리는 다시 빅토리아공원에서 

정부청사까지 행진하면서, 거리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 리척얀의 옥중서신 중에서

 

 

➊ 기본법 18조에 따르면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위원회와 홍콩특별행정구 정부의 의견을 구한 후, 이 법의 첨부 문건3에 포함된 법률을 증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특집2017-2021 Before /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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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홍콩 시민사회의 오늘과 미래 홍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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