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글] 동물은 생명이다

여는글

동물은 생명이다

 

내가 개와 친구가 될 줄은 몰랐다. 어릴 적, 농사짓는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지극정성으로 소를 돌본 적은 있지만 개와 고양이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다. 다른 이들이 반려동물이라고 애지중지 가족처럼 지내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도 좋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3년 전부터 레트리버 혼종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차로 유명한 해남 일지암에서 처음 만났다. 그래서 이름을 다동茶童이라고 지었다. 다동이는 천사견이라는 별명답게 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기 때문에 절 식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다동이는 서울에서 지인의 품 안에 자랐다. 그런데 지인의 어머님이 몸이 좋지 않아 운동을 시킬 수 없게 되었다. 하루 종일 집과 가게에 갇혀 지내다 보니 마침내 우울증을 얻었다. 밥도 잘 먹지 않고 생기를 잃어갔다. 그런 연유로 내가 키우게 되었다. 

 

다동이를 키우게 되니 이웃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개를 키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어려움을 알려 주었다. 다동이가 어릴 때는 귀엽고 건강하지만 나중에 늙어서 병 들면 수발하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병이 들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어떻게 지켜보느냐며, 죽음이 주는 이별의 아픔을 어찌 감당하겠냐고 했다. 어떤 이는 반려견과의 이별 후유증 때문에 오랫동안 힘들었고, 그런 연유로 동물을 키우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 조언을 듣고 다동이와 어떻게 지내고 이별해야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하고 다짐했다. 먼저 ‘나의 다동’이가 아니라, ‘나와 다동’이로 관계를 설정했다. 내가 다동이의 보호자고 양육자지만 결코 나의 소유물이 아니다. 나는 다동이에게 일방적인 우월자이거나 권력자가 아니다. 다동이는 내 마음대로 편하게 취급하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기에 내 취향대로 다동이를 대하지 말아야 한다. 나의 감정대로 소홀히 대해서도 안 된다. 

 

꽃도 인간도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듯이 다동이의 생애주기도 그러할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꽃이 화려하게 피어나면 기뻐하고 좋아한다. 그러다가 꽃이 시들면 추하다고 말하며 눈길을 주지 않는다. 이게 과연 꽃을 사랑하는 마음일까? 진정 꽃을 사랑한다면 꽃의 생로병사를 잘 살펴보고 눈길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를 사랑하고 예뻐하는 인간은 노인을 불편해 하는 경우가 있다. 즉 ‘늙음’을 혐오한다. 그리고 ‘죽음’을 무서워하고 어둡게 생각한다. 이건 인식의 오류이자 편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동식물의 생로병사는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흐름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라는 자의식과 ‘나의 것’이라는 소유의식으로 편견과 편향의 태도를 갖는다. 배제와 혐오는 이렇게 ‘나’라는 고정되고 편향된 의식을 바탕으로 일어난다. 

 

다동이도 자연 수명의 절반을 넘어가고 있다. 다동이의 어릴 때의 모습을 본 몇 사람들은 이제는 그리 귀엽지 않다고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과연 이게 사랑일까? 동물을, 한 생명을 자기 취향대로 취급하는 것은 사랑이 아닐 것이다. 나는 늙어가고 병이 드는 다동이를 담담하게 애정으로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다동이가 이 세상 떠나는 날,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이좋게 잘 지냈지, 너 때문에 내가 많은 기쁨을 누리고 살았어, 그동안 나와 함께 해주어서 고마웠어, 잘 가, 안녕” 아름다운 이별 또한 자연이다.

 

『장자』 「추수(秋水)」 편의 얘기를 떠올려 본다. 장자가 호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초왕이 보낸 대부가 거듭 찾아와 정치를 맡아달라는 왕의 뜻을 전했다. 장자는 낚싯대를 쥔 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내가 듣기에 초나라에는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있는데 죽은 지 3천 년이나 되었다더군요. 왕께서 그것을 헝겊에 싸서 상자에 넣고 묘당 위에 간직하고 있다지만, 이 거북은 죽어서 뼈를 남긴 채 소중하게 받들어지기를 바랐을까요,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을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을까요?”

 

다동이가 살아 있는 동안 나는 그의 생명을 존중할 것이다. 생명이란 살아 움직이는 것, 자신의 의지와 감정을 맘껏 표현하는 것이 생명의 이치다. 생명은 자유이고 평화이며 존중이다. 동물은 생명이다. 생명은 나와 너의 관계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7-8월호 (통권 287호)

 


글. 법인 스님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에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으며 현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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