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2월 2009-02-01   781

참여연대는 지금_시민운동 현장체험




진짜 세계와의 조우



우은혜
참여연대 3기인턴

아침 8시. 아니 사실, 8시 반. 천성이 게으른 탓에 학교 1교시 수업조차 듣지 않았지만 주섬주섬 일어나 씻고 가장 두꺼운 옷을 몇 겹씩, 그것도 모자라 목도리에 마스크까지 쓴 채 집을 나선다. 이런 게 직장인의 고달픈 라이프인가 되뇌이며 버스를 타고 내린 곳은 통인동 참여연대 앞. 오늘은 정말 지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용산역 근처에서 버스가 밀렸다. 잠에 취해 왜 그러는지 길을 살펴보지도 못했지만 눈치를 보며 들어온 4층 민생팀 사무실에서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용산 철거민들이 강제 진압시 발생한 화재로 죽었고 그로 인해 사무실은 다소 긴장된 분위기였다. 긴급회의가 돌아가고 실시간으로 언론을 체크하면서 논평이 발표되고 전화통화들이 이어졌다. 우리가 여기 이렇게 있어야 하는 거냐는 간사님들의 말씀도 오갔다. 내가 TV로, 인터넷으로만 접하던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국사회의 맨얼굴을 바로 앞에서 보는 느낌이었다. 외과의사의 손에 쥐어진 붉은 심장 같은 리얼 월드(real world)를 나는 2009년 1월 참여연대에서 생생하게 접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양성을 넘어서는 상상력

작년 12월 29일, 세 번째 인턴을 맞이해주신 참여연대 간사님들은 우리들에게 무려 124명의 지원자 중에서 엄선된(?) 만큼 자부심을 가지라고 하신 동시에 우리 때문에 기회를 잃게 된 다른 이들을 기억하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나 스스로도 무척 해보고 싶은 인턴십이었던 만큼 열심을 내야겠다는 각오로 시작했지만 아시아를 대표하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역시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주5일 업무지원 반, 교육 반으로 이루어지는 인턴 프로그램은 일정 자체의 물리적 부담보다도 그 다양한 컨텐츠를 소화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집이나 학교에선 쉽게 배우지 못할 것들이 단기간에 우리에게 정말 많이 주어졌고 난 그것들을 허겁지겁 소화하느라 분주했다.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삶과 사회를 꿈꾸기 위한 상상력 특강과 참여연대의 기본적인 운동방식에 대한 교육부터 시작해, 문래예술공단과 하자센터, 희망제작소 방문, 국민참여재판 방청, 그리고 강수돌 교수님의 강연, 진영종 교수님의 영어 강독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경험하지 못했던 삶과 사회의 모습들에 대한 그 다양한 상상과 실천들은 처음엔 생경했지만 신기하게도 곧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특히 이번 인턴 교육 프로그램의 핵심이었던 ‘사회적 기업’ 체험은 20대인 우리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주는 중요한 키워드이지 않았나 싶다. 나는 자본주의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행태가 극단화되면서 많은 사회적 병폐들이 양산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회의 때문에 기업에 취직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이유로 대안적인 기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이윤과 함께 공익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가들이 외국에는 이미 하나의 사회적 집단으로서 존재하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것을 지원하고 창조해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일단 이기적이고 사회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기에 어느 세월에 이 곳은 살만한 곳이 될까 한숨 쉬던 나에게 그 사람들은 생각만 하지 말라고 말하며 저만큼 나아가 활기차게 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이전에 생각하고 있던 지평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것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난 더 기발한 삶의 방식들을 앞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진짜 세계를 보고 싶다면 참여연대로 오시길

또 다른 인턴의 중요한 본분인 업무지원에 임하기 위해 우리는 월, 화 그리고 수요일 오전에 각각 배치된 부서로 가서 주어지는 일을 한다. 지난 2기 인턴이었던 친구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민생팀에 지원한 나는 주거권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사실 일을 돕는다기보다는 그 분야를 이해하고 공부하는 교육생 같았다. 간사님은 우리의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보다는 이 기간에 좀 더 많이 배우고 생각하게 되기를 바라시는 것 같았다. 특히 나는 좀 더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업무를 하는 친구들에 비해서도 별다른 역할을 못 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바로 옆에서 매일 담당간사들이 자료를 조사하고, 정책을 모니터링하면서 이에 대응하여 업무를 진행하시는 걸 보고 도우면서 어떤 방식으로 정부정책과 이에 대한 사회의 반응이 진행되고 있는 건지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TV에서 보던 인터뷰를 옆자리에서 진행하고 있고, 논평과 기자회견이 일상적인 참여연대라는 공간에서 나는 리얼 월드를 사는 느낌이었다. 용산 철거민 참사가 일어난 날 아침, 이 글의 첫 대목에서 묘사한 그 장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이 곳의 일상이 그러했다. 청와대가 보이는 참여연대의 옥상은 상징적이면서 또 실제적이었다.

짧지 않은 지난 인턴 생활 동안 내가 느낀 참여연대는 직접적인 공권력이나 영향력 있을 만한 자본을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자유롭게 시민의 의지와 공익을 추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사람에 대한 애정과 꿈꾸는 용기가 있는 이 곳의 간사님들, 자원 활동가, 전문가 실행위원님들을 보면서 좀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로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내가 그저 책에서 보고 머리로만 생각했던 것들을 삶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을 알게 된 것이 사실 어떤 교육 프로그램보다 나에겐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시민이 사회의 주인되는 날을 기다리며


나는 점점 더 어수선한 사회를 경험하게 되면서 홉스가 말한 자연상태란 아직도 유효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인터넷에 정부정책을 비판했다고 경찰에 붙잡혀가고 생존을 위해 투쟁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꿈꾸는 것까지 비관적으로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걸 나는 이번 방학 동안 배웠다. 여전히 다른 이를 위해 함께 눈물을 흘려주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오늘을 헌신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존재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며 세상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가, 내가 해야 할 일이란 것도 말이다.

이제 남은 후반기에 인턴들은 그동안 경험하고 고민한 것을 토대로 자율적인 워크샵을 준비한다. 우리는 세 팀으로 나뉘어서 인문학의 사회적 기업화, 공동체 소통 활성화를 위한 배지 캠페인, 20대의 주거권 인식 운동을 진행한다. 나는 민생팀에서 업무를 도우며 접하게 된 주거권 관련 팀에 속해서 동료들과 함께 열심히 논의하면서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멋진 결과를 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인턴들의 워크샵은 분명 2월 13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시민이 매일매일 사회의 주인이 되는 것이 참여연대의 목표처럼 우리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걸 모두들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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