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3월 2009-03-01   2316

이제훈이 만난 사람_ [공동대표 청화스님] “내가 약해질 때 상대방이 강해지는 것”

참여사회 3월호_이제훈이 만난사람



“내가 약해질 때 상대방이 강해지는 것”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청화靑和 스님


이제훈 <한겨레> 통일팀장
사진 김영광 사진가


불이여
불이여
여섯 사람 몸부림치며
저승으로 건너가게 다리를 놓아준 불이여
그러고 나니
이 나라 경제 살리는 길이 거기서 트이더냐
……
사람을 보낸 불을 생각하는 오늘은
크게 소용돌이치는 강물을 마십니다
다 휴지처럼, 마른가지처럼 태울 듯한
저 설레는 불을  끄는 바다가 되게
강물을 마십니다
……


 지난 2월 5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용산 참사 희생자를 위한 시국법회’ 때 발표된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청화(靑和) 스님의 ‘시국법어’의 한 대목이다. 청화 스님은 지난해 ‘촛불 정국’의 와중에도 시국법어를 내놓은 바 있다. 속세를 떠난 수행자의 시국법어라…….



노승, 아픈 세상 시로 다독이다

이달엔 청화 스님의 ‘말씀’을 듣기로 했다. 스님은 대한민국 온 산천에 널려 있는 스님들의 교육과 재교육을 총괄하는 조계종 교육원장이다. 또 참여연대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수행자이자, 운동가이고, 시인이다. 5년 임기의 조계종 교육원장 일을 3월 20일로 마치는 청화 스님을 2월 11일 낮 조계사 교육원장실에서 만났다. 1시간 30분 남짓한 만남 동안 세상사에 대해, 현대인의 삶과 종교에 대해,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 스님의 삶에 대해 많은 말씀이 있었다.






“좌익승려? 수행자에겐 좌우가 없다”


지난해 9월 4일 ‘프리존뉴스’라는 인터넷 매체에 실린 ‘조계종을 흔드는 좌익 승려’라는 기사에 스님도 거론됐던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난 수행자일 뿐이다. 좌, 우와 무관하다. 다만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사는 건 아니고. 현실에서 분명한 입장과 관점을 갖고 사는 게 수행자의 진면목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 생각으로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90년대엔 종단이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판단해 종단개혁운동을 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다. 평가를 해본다면?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대통령이 국민의 여망을 담아내는 국정운영이 아니라,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실망이 크다.


대선 과정과 대선 직후 이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와 ‘실용’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1년을 돌아볼 때 ‘실용’보다는 ‘이념’을 과도하게 앞세우는 게 아닌가 싶다.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다른 상황 전개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런 면이 선거가 지닌 맹점이다. 선거에서 대통령이 되면 국민을 위해 뭘 할지, 대통령으로서 바람직한 통치철학을 지녔는지 국민들이 파악하기 어렵다. 피상적 평가로 흐르기 쉽다. CEO 출신이니 경제문제에서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대통령만 원망할 일은 아니다. 국민들도 뭘 잘못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 대통령이 하룻밤 쿠데타로 집권한 게 아니다. 합법적 선거로 5년 임기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국민들이 뭘 잘못했는지 되돌아볼 수 있어야,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재벌 부자 중심 정책이 특히 문제


지난 1년을 돌아볼 때, 뭐가 특별히 심각하다고 생각하는지?

인물 기용이 특히 문제다. ‘고소영’, ‘강부자’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출범 초부터 인물기용으로 서민들의 비난을 샀다. 경제난국 타개에 도움이 된다고 채택한 정책은 재벌과 부유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민 비율로 보면 재벌 부유층은 소수다. 소수를 위해 다수 서민을 희생시키는 정책이다. 그런 정책의 귀착점이 무엇이 될지 우려된다.


용산 참사의 뒷수습 과정이 참으로 어수선하다. 상식에 반하는 일도 많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경찰이 농성자들을 진압한 사건 하나로만 보면 안 된다. 그 전에 ‘불’이 있었다. 이른바 뉴타운 사업이 최초의 불이다. 철거민한테 충분한 보상을 하지 않은 것도 불이고, 약자의 목소리를 외면한 것도 불이다. 또 농성 3시간 만에 경찰이 진압에 나선 것도 불이다. 이런 불들이 다 모여서 용산 화재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것을 다 봐야 원망의 해소가 가능하다. 정부는 거두절미하고 현상만 규명하겠다고 하고, 검찰은 한 눈을 감고 수사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단히 유감이다.








어려을 땐 ‘눈’이 아니라 ‘발’을 좇아


어려운 때일수록 희망이 필요하다. 희망은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최근에 시를 한 편 썼다. ‘서 있을 때 보지 못한 보석/쓰러진 눈으로 발견하고 주워서 일어선 그날은/온 세상이 보석빛이었다/그리고 거기서 깨달았다/때로는 쓰러지는 것도 새로운 힘이 된다고’. 요즘 상황에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다. 우리 앞에 주어진 많은 어려움들은 우리로 하여금 피를 흘리게 한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 때문이다. 하지만 마땅히 그 고통 위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어려움 속에서 더 나은 삶으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돼야 한다. 경제적 어려움은 우리를 넘어지고 추락시키는 게 아니라 더 향상시키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어려움을 흡수할 수 있는 아량과 인내, 철학을 갖고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경제위기가 심각하고, 사람들의 삶도 참으로 어렵다. 한 말씀 부탁한다.
우리 몸의 눈과 귀는 다른 점이 있다. 눈은 발이 가는 곳을 다 갈 수 있다. 하지만 발은 눈이 닿는 곳 모두에 가지는 못한다. 눈은 먼 산, 먼 하늘을 볼 수 있지만, 눈이 가는 곳이라도 발이 가지 못하는 곳이 있다.
발은 현실이고, 눈은 이상이다. 어려울 때에는 눈이 아니라 발을 좇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 그게 어려움 속에서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혜일 것이다.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부 종교지도자의 패권주의

현대사회에서 종교란 무엇인가?

믿음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으나, 종교적 가르침을 통해 일상의 삶을 각성하며 살게 하는 게 종교다. 종교적 가르침을 통해 부단히 각성돼갈 때 자아가 향상되고 사람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사회에도 기여하는 사람으로 변모할 수 있다. 사랑과 자비가, 그 누구의 권유가 아니라, 샘처럼 솟구쳐서 향기처럼 퍼져나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마땅히 그런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다. 한데 요즘은 종교가 너무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른바 종교지도자들이 복, 출세 등 너무 이기적인 것만 주입하며 사람들 눈을 어둡게 하고 있는 것 같아 유감이다.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나?

요즘 일부 종교지도자의 잘못된 신념과 사상 탓에 ‘종교패권주의’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독교가 아니면 사회에 발붙이고 살기 어렵게 하려는 거다. 서양에서는 중세에 삶을 억압하는 ‘신의 독재’ 시대가 있었다. 르네상스에 이르러 신의 독재에서 벗어나 사람의 권리와 능력을 인정하는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권력독재가 등장했고, 나중에 민주화가 됐다. 그러다 다시 자본독재가 이뤄졌다.
이런 역사가 있는데, 과거 인류사회에서 폐기처분한 것을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다시 끄집어내려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다. 일부 종교인들의 정치화가 문제다. 이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계급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치와 종교는 상호 우호적이어야 한다. 정치는 국민의 삶을 보호해야 하고, 종교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품어야 한다.



욕심 버리고 할 수 있는 일 착실히

참여연대와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됐나?

타의에 의한 것이다. 일찌감치 재야를 졸업하려고 했다. 덧없다는 생각에 내 자리로 돌아가 수행하고 글이나 쓸 생각이었다.
한데 돌아가신 법장 스님(전 조계종 총무원장)이 교육원장 소임을 보라 해서 하고 있는데, 어느 날 김기식 사무처장이 찾아와 간곡히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맡아달라고 부탁하기에 극구 사양했으나, 내가 마음이 약해서 졌다.


어려운 시절이다. 참여연대 회원들한테 하고 싶은 말씀은?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 문제도 심각하고 민주주의도 후퇴하며 사회적으로 걱정이 많아 참여연대에 기대가 큰 것 같다. 하지만 참여연대라고 무한한 능력이 있는 게 아니다. 나름의 한계가 있다.
밖의 기대를 수용하되,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욕심을 부리고 무리하다보면, 자칫 참여연대의 존재가 위협받고 공중분해될 수도 있다. 할 수 있는 일, 가능한 일을 충실하게 하는 게 존재가치를 발현하는 길일 것이다.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



산이 높아도 구름을 막지 못한다


청화 스님은 지난해 9월 참여연대 창립 14돌 행사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작은 것은 시련을 겪고 나서 큰 것이 되고, 낮은 것은 고통을 당하고서 높은 것이 됩니다. 어디에고 강한 적은 없습니다. 어느 때나 내가 약해질 때 바로 상대방이 강해지는 법입니다.” 그에 앞서 2007년 2월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인터뷰 자리에선 ‘민심은 천심’이라며 어느 선사의 말씀을 들려주셨다. “대나무 밭에 대나무가 아무리 빽빽이 있어도 흐르는 물을 막을 수 없고, 아무리 산이 높다 해도 흘러가는 구름을 막을 수 없다.”

하긴 그렇다. 산이 아무리 높다고, 구름을 막을 수야 있겠나?





청화스님은, 1962년 출가했다. 화계사에서 혜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해인사에서 고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누가 ‘중’이 되라고 코를 꿰거나 등을 떠밀지 않았다. 산사 생활을 담은 춘원 이광수의 산문집을 읽고 산사생활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하나, 그게 출가의 이유는 아니다. 스님은 ‘업’(보통 사람 말로 풀면 ‘팔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이라고 했고, 자신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곤 “적성에 맞는 선택이었다. 지금껏 출가를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장편소설을 써보고 싶었으나 수행자로서 글쓰기에 그렇게 긴 시간을 낼 수 없는 사정 등이 작용해 시 쓰기로 돌아섰다. 1977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시조 「미소」가, 197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채석장 풍경」이 당선된 ‘등단 시인’이다. ‘6월항쟁’을 이끌었던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공동의장을 맡은 적이 있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의 전신이랄 수 있는 정토구현승가회를 1986년 지선 스님과 함께 창립해 초대 의장을 맡았다. 조계종 교육원장 임기를 마치는 3월 24일 첫 시집 『혼자 보는 노을』 출판기념회를 열 계획이다. 그리곤 토굴로 들어가 수행하며 글을 쓸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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