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3월 2009-03-01   1077

헌법새로읽기_학교 서열 인정하라 을러대는 평준화 위헌론




학교 서열 인정하라 을러대는
평준화 위헌론



김진 변호사

내가 헌법 이야기를 쓴다고 하면, 아마 이 동네 선배들은 웃으실 게다. 헌법 연구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고, 헌법재판 경험도 많지 않으면서 무슨 헌법 이야기냐고. 또 한편에서는 이럴지도 모른다. 이 엄혹한 시기에 한가롭게 무슨 헌법 이야기냐고. 그래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선뜻 나서는 것은 헌법이 도대체 뭐기에 사람들(물론 한가한 사람들)이 말끝마다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말을 달고 사는지, 한 번 공부 좀 해보겠다는 맹랑한 생각 때문이다. 애초부터 로스쿨 제도가 불만이었던 법제처장은 변호사자격시험 제도가 위헌이라 하고, 공공 건강보험 제도가 싫은 의협 회장 후보는 위헌결정을 통해 건강보험의 새판을 짜야 한다고 하며, 부동산에 매기는 세금이 싫은 사람은 양성평등을 핑계로 종부세가 위헌이라고 한다(천박한 내 이해 수준을 이해하시라. 그러니 ‘무식하다’고 미리 고백하지 않았는가!). 조문이라고는 달랑 130개밖에 없는 이 법이 도대체 뭐기에 법을 아는 사람이고 모르는 사람이고 모두 들먹이니 성질 나쁜 사람은 조금 짜증까지 나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 들은 ‘위헌론’ 중에서 가장 짜증나는 건 아마  ‘고교평준화 위헌론’이 아닐까 싶다. 요즈음 밖에서는 교과서 수정, 일제고사 파동 등으로 일찍이 없었던 ‘교육권 담론의 르네상스’가 피어나는 참이니, 이번에는 이 문제를 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잠깐! 이미 넘치는 특목고(2008년 기준으로 외국어고가 29개, 과학고가 21개, 국제고 4개)와 곳곳의 비평준화 지역으로 고교평준화는 실질적으로 무너졌다는 현실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니, 이런 태클은 사양한다. 또한 당연히, 고등학교 보낼 자녀가 없어서 속 편하게 그런다는 식의 딴죽걸기도 정중히 거부하겠다.

‘고교평준화’의 법률적 실체는 ‘고등학교 무시험진학제’ 또는 ‘교육청별 입학전형’이다. ‘전국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원래 이름 대신 ‘일제고사’라는 용어(우리나라 사람들이 ‘美製’라면 몰라도 ‘日帝’는 얼마나 싫어하는가!)를 통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선점하였다면, 고등학교 무시험 진학제(교육청별 고교 입학전형제) 역시 ‘평준화’를 통해 부정적 이미지를 획득하였다(이 낱말은 고교평준화 외에는 ‘하향’이라는 말과만 짝을 이룬다). 고등학교 입학전형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4조 제2항에 “학교군 별로 추첨에 의하여 교육감이 각 고등학교에 배정한다”고 표현되어 있는데, 소위 ‘뺑뺑이’라고 부르는 평준화의 근거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조항이 ‘위헌’이라는 사람들의 주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학생의 학교선택권, 학교의 학생선발권, 사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것인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학교선택권’이 바로 오늘의 기본권 되시겠다.

학교선택권이라는 말이 헌법에 나오지는 않지만,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이 권리를 인정해왔다. 주로 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교육시킬 교육권의 내용으로 언급했는데, 이 ‘부모가 자녀를 교육시킬 권리’의 근거로는 교육권(제31조 제1항), 혼인과 가족생활 보장(제36조 제1항), 행복추구권(제10조)을 들고 있다. 쉽게 말하면 부모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초·중·고등학교 자녀를 교육시킬 권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교육권의 내용으로 교육받을 권리를 실효성 있게 보장하기 위해 학교를 선택할 권리 역시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헌법상 권리가 있기는 한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원래 권리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잘 보장되는 국면이 아니라 제한되는 국면인지라, 이 기본권 역시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고 제한이 허용된다. 고교평준화는 바로 이러한 제한의 하나에 해당한다. 따라서 ‘고교평준화가 위헌’이라고 이야기하려면 제한의 목적이 잘못되었다거나, 수단이 안 맞거나 과도하다거나, 그도 아니면 기본권의 핵심까지 건드리고 있다는 것 중에 하나를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고교평준화는 과연 위헌일까?

헌법재판소는 고교평준화를 정면으로 다룬 적이 한 번도 없지만(2002년에는 청구인들이 취하했고, 2005년에는 기간도과로 각하된 사례가 있으며, 2005년에 제기된 2005헌마514호 사건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이전에 1995년 지역별 학군제 헌법소원 사건에서는 “과열된 입시경쟁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입법수단으로서는 여러 가지 방안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방안의 선택은 수학능력에 따른 교육을 받을 권리, 학부모와 학생의 학교선택권 보장을 중시하느냐 아니면 학교교육의 정상화, 입시경쟁의 과열화 방지, 학생의 건전한 육체적·정신적 성장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로 결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각 제도에 장단점이 있으므로 그 개선책이 용이하게 확정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고등학교의 입시제도는 입법권자에게 광범위한 재량권이 요구되는 분야”라고 한 바 있다. ‘입법권자가 어느 정도는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식의 결론은 읽다보면 좀 허탈할 수 있겠지만, 헌법재판에서는 매우 흔히 있는 일이다. 헌법재판소는 정책이 헌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지만 볼 뿐(이를 좀 어려운 말로 하면 「과소보호 금지원칙」정도가 된다), 정책의 성패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으며 상관할 수도 없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고교평준화 역시 이러한 재량권의 범위에 들어간다고 보아야 하고, 그 입법목적에 비추어 과도한 기본권 제한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니 고교평준화를 없애고 싶다면 솔직하게 그 이유(그러니까 ‘교육의 수월성’같은 거)를 말하지 애먼 헌법을 물고 늘어지지 마시라.

오늘의 산만한 이야기를 밑줄 쫙, 별표 하나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고교평준화 이야기에서 나올 헌법 이야기는, 평준화가 학교선택권을 제한한다는 부분이 아니다. ‘학교선택권’은 부모가 ‘학벌’이나 ‘높은 진학률’을 선택할 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선택권’의 하위개념일 뿐이므로 절대화되어서는 안 되고, 다른 방법으로 교육선택권이 보장된다면 학교선택권이 다소 제한되더라도 별 문제가 없다. 헌법이 정작 교육에 관하여 가장 중요하다고 정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거다. 그러니 헌법이 등장해야 할 장면은 형식적인 ‘학교’ 선택의 ‘자유’ 보장이 가져올 학교 서열화(지금도 으스대는 보기 싫은 K고 출신들과 점점 가관인 ‘특목고’ 현상을 보라)가 균등 교육권을 실질적으로 훼손하는, 바로 그 때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평소 ‘평준화 폐지론자’도 별로 안 좋아하지만, 훨씬 더 얄미운 건 엉뚱하게 헌법을 들이대는 ‘평준화 위헌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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