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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9년 12월
  • 2009.12.01
  • 895



“시민의 소리를  파이프 오르간에 싣고”


이경휴 수필가,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하여/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중략)/ 화안히 밝아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12월’ 오세영 1942

한해가 가고 있다.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걷는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어깨를 움츠린 채 어디론가 모두들 열심히 가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12월이 되면 사람들은 사라져간다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아쉬움으로 마음이 분분해진다. 본디 시작도 끝도 없는 원융圓融한 세상인데 이때가 오면 유독 끝의 의미에 방점을 찍는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기도일까.

세모가 되면 가장 많이 회자되는 용어가 다사다난多事多難이다. 아마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없지 싶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 말은 날개를 달고 여기저기를 날아다닐 것이다. 신년 벽두에 시작된 용산참사로부터 전직 대통령 두 분의 서거,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4대강 사업, 서울광장 조례개정운동…. ‘희망’을 ‘경제’의 동의어로 생각하는 정권이라 서울 시내 곳곳은 땅 파고 억지로 물길 끌어들인다고 연중 내내 공사 중이다.

‘시각 우선’인 정책으로 오른 권좌이기에 광화문 광장 역시 화려하기 그지없다. 역사의 복원, 조망권의 확보, 문화 공간 창조에 주안점을 두었다면서 사용 판단은 시장 마음대로인 광장이다. 광장은 항시 열려 있어야 광장이 아닌가. 당연한 일에 진을 빼게 하는 정책이 오늘의 정치이다. 이 현실에 킬힐Kill heel을 벗어던지고 나선 이가 있다. 올겔공주- 박지영(28세) 회원이다.

갑자기 불어 닥친 한파로 겨울 한가운데 선 듯싶은 늦가을날. 햇살 한 줌을 배경삼아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긴 머리에 짧은 퀼로트Culotte 차림이 생의 계절 중에서 한여름이다. 활짝 웃는 웃음소리 또한 시원스러웠다.


“예수님 말씀 파는 대통령, 인정할 수 없어”

활기차(회원 게시판)에 올라 있는 올겔공주라는 아이디의 뜻이 궁금했다.

“파이프 오르간을 전공했지요. 오르간을 독일어로 올겔이라고 하지요.”

순간, ‘럭셔리’(사치·사치품)하다는 유행어가 떠오르며 고개가 갸우뚱했다. 어떻게 회원가입을 했을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전통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보수적으로 자랐어요. 교회음악을 전공하며 대학 다닐 땐 사회적인 문제가 생겨도 가족들과 기도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지냈죠. 그런데 작년 촛불집회 때 친구와 함께 나갔는데 ‘청년예수’라는 깃발을 보고 가슴이 한없이 설레었어요”

제국의 신을 버리고 민중의 신을 찾았다 할까. 그 후 그는 ‘이명박 장로님’의 진정성 없는 말씀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국민을 위하는 마음은 없고 정치를 단지 권력으로 생각하며 예수님의 말씀만 팔고 다니는 장로님이기 때문에 그를 따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그를 보고 어머니는 ‘하나님이 뽑은 사람이다. 네가 하는 짓은 반역이다. 사도 바울도 국가 권력에 순종하라 하지 않았던가’ 하며 꾸짖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이제 침묵으로 그를 지켜볼 뿐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가입 동기를 여쭸다.

“감수성이 예민한 편이죠. 음악을 전공했기 때문이라 더욱 그런지,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땐 가만히 있지는 않았어요. 작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뿐 아니라 미선·효순이 사건,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모두 참여했어요. 올해 초 용산참사를 보고는 답답한 현실 때문에 인터넷을 뒤적이다 참여연대를 알게 되었어요.”

회상하는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상기된 표정은 이제 사랑을 시작한 소녀 같았다. 4월 신입회원 한마당에 참석하고 그때부터 회원들과 게시판을 통해 들끓는 심사를 토로하고, 그래도 성에 차지 않으면 만나서 눈빛과 표정을 보며 서로 위로하고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사랑을 고백하듯 수줍게 그러나 당당하게 한 마디 했다.

“참여연대를 알게 되어 좋았던 점은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연대할 수 있다는 믿음이 든든하게 느껴졌어요,”

그 믿음으로 참여연대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자원활동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서울광장조례개정운동’에 앞장을 서고, 매주 수요일 시민참여팀에 나와서 활동하고 있다.


“조례개정은 의사표현의 자유”

‘서울광장 사용권리 되찾기 주민조례개정 운동’으로 이야기의 물꼬가 터졌다. 물 만난 고기가 된 그는 흥분과 탄식, 열정과 비탄으로 수위 조절을 하면서 서명 현장의 소리를 전했다.

“서명을 받으려 나가면 빵과 음료수를 사주면서 격려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는가 하면, 역사의식이 없다고 야단을 치는 할아버지도 만납니다. 순간 불쾌하고 화가 나기도 하지요. 도대체 무엇이 역사의식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니 한편으로 내 삶의 자양분이 되는 기회인 것 같기도 했고요.”

나름대로 삶을 터득해 나가는 기술을 익혔다면 너무나 관찰자적인 표현일까.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서명을 받기 위해 맨발로 이리저리 뛰는 모습은 전사의 모습 같았다. 감동의 물결이었다는 주변의 극찬에 손사래를 치며 멋쩍게 웃었다.

“발이 편하지 않아서 그랬을 뿐인데….”

지난 6월 10일, 참여연대가 중심이 되어 ‘서울광장 조례개정 운동’이 시작되었다.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을 청구인 대표로 하여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대한 조례개정청구서를 서울시에 접수했다. 조례개정을 위해서는 서울시 유권자의 1%인 81,000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첫날 수임인 600명을 모집하고, 서울시민캠페인단을 구성하고, 홈페이지(www.openseoul.org)개설, 6월24일부터 서명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12월 19일로 막을 내리게 된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서명을 했지만 아직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때문에 참여연대에서는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라도 달려가서 서명을 받고 있다. 광장, 고속버스터미널, 대학 캠퍼스…. 참여연대 모든 상근자, 혁명전사와 같은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그중 올겔공주인 그는 ‘공주 신발’까지 벗어 던지고 나섰다.

서명받기의 가장 어려웠던 점과 조례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소회를 여쭸다.

“대학 캠퍼스에서 좌절감을 느꼈어요. 학생들에게 서명을 부탁하니 대부분이 거부했어요. 무관심을 넘어 거부의사를 표현하며 마치 우리를 잡상인 취급을 하는 거예요. 오로지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가 대학생활의 전부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학이 취업 학원으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더군요. 조례개정을 해야 하는 이유?”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눈을 내리감았다. 이어 부드럽지만 강한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한마디로 의사표현의 자유랄까? 광장을 교묘하게 공원처럼 꾸며놓고 사람들 모두에게 개방하는 것같이 해놓았잖아요. 현행 조례에 따르면 사용 신청은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입니다. 서울시장이 광장의 주인입니까? 4대강 사업을 생떼 쓰며 강행하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환경과 생태를 위하여 중단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다양한 소리에 귀를 여는 게 성숙한 민주주의인데 ‘데모’한다고 겁만 잔뜩 먹고 광장을 ‘보호’만 하려 하니 조례개정을 해야죠.”


공익보다는 ‘시장형 인간’ 세상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라는 속담처럼 이명박 정부는 지난 해 광우병 촛불집회를 막아내면서 광장공포증에 걸렸다. 주체적으로 광장을 사용하고 이끌어야 할 시민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막고, 시민을 단순히 정부나 시가 마련해 주는 행사의 구경꾼으로 전락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사용 목적도 시민의 여가 선용 및 문화생활로 제한했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다양한 공익적 행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며 기자회견까지 막아버렸다.

시민들은 광장이 아닌 공원에서 사진 찍고 분수를 올려다보고 꽃구경하고, 시민의 권리는 ‘은따’시켜버린 줄도 모른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뿐이다. 한층 정교해지고 대중화된 현대사회의 포섭기제인 미디어나 이미지를 집권 세력은 이미 장악해버렸기에, 젊은이들의 정치적 각성 또한 요원하기만 하다. 서울시민 유권자의 1% 서명이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또 다른 이유를 그는 적절한 예를 들어 말했다.

“공익적인 일하고는 달리 자신과 직접 관련되는 일에는 민감하지요. 인천의 한 지역에서 마을버스 요금 인상 반대 운동을 민주노동당에서 벌였는데 하루 만에 서명을 다 받았다고 해요. 내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이렇듯 생활과 직접적인 문제에 더 관심 갖는게 당연하지만, 돈과 관련된 일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시대인 것 같아 씁쓸해요.”

그렇다. 공익을 추구하는 시민적 인간형은 숨을 죽이고, 사적 이익만을 좇는 시장형 인간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 도래했다. ‘돈·화폐·자본’은 종교의 삼위일체다, ‘돈은 자유이다’ ‘부자 되세요’라는 천박한 인사가 공공연하게 공중파 방송을 타고 새해 덕담으로 날아다닌 적도 있지 않는가. 세태를 탓하기엔 너무 무력하다는 생각에 잠시 서로 찻잔만 만지작거렸다.


자원활동- 연대하는 힘을 기르다

인터뷰가 말미로 접어들면서 개인적인 이야기에 궁금증이 더해졌다. 전공한 파이프 오르간이라는 장엄한 악기가 실생활에 접목되고 있는지, 신정론神政論 집안에서 이단(?)으로 살아가기의 어려움은 어떤지, 수입원은 무엇인지, 사생활 침해 수준의 아슬아슬한 질문을 들이댔지만, 돌아온 대답은 담담하고 솔직했다.

“교회 반주를 주로 하고 수입원은 어린친구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받는 레슨비입니다. 어린 친구들을 가르치다보니 그들에게 행복한 세상을 살게 해야 하는데…. 경쟁부터 가르치게 되니 안타까워요. 어머니도 더 이상 말씀은 않지만 그 마음 제가 더 잘 알기에 열심히 공부합니다. 요즘 ‘기독교 청년 아카데미’(기청아)에서 ‘자본주의와 한국기독교’에 대한 강의를 듣는데 공감하고 반성할 부분이 많아 열심히 듣고 있어요. 배운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요.”

한때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교회는 서비스 사업을 하는 곳이다’라는 발언을 해서 기독교단으로부터 몰매를 맞은 적이 있다. 정곡을 찌르는 말을 에둘러 말하지 않았기에 일파만파를 일으켰지만 되새겨봄직한 발언이 아닌가. 그가 고해성사하듯 어렵게 말을 꺼냈다.

“수십 억짜리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원전(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설교를 했는데 사람들은 참 아름다운 설교였다고 찬탄했지만, 그날 교회 밖에서는 용산참사로 사람들이 숯덩이가 되었지요. 그때 저는 내 전공에 대하여 심하게 회의를 느끼며 내 삶이 남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영혼을 위한 기도, 일종의 서비스 차원 아닌가요?”

묵묵히 눈빛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경지로 나아갔다. 마지막 질문인 참여연대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주문했다.

“비판까지는 아니지만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설득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조례개정 수임인 모집을 할 때 그런 걸 많이 느꼈어요. 그리고 자원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인데 회비만 내는 회원 하지 말고 적극 참여하는 회원이 되었으면 해요. 온라인상으로 만나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니 연대할 힘이 절로 생기더라고요.”

처음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소녀가 되었다. 열정이 충만한 얼굴은 눈부시다. 불꽃처럼 사라져가는 것만 아름다운 건 아닌 듯하다. 시작을 알리는 눈부신 불꽃- 올겔공주, 박지영 회원을 보며 활기찬 새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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