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7월 2009-07-01   1477

아주 특별한 만남_이은주 오경준 회원




희망업, 사랑업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이경휴 수필가,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자기중심주의가 끝날 때 젊음은 끝난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살 때 성숙은 시작되는 것이다.
– 헤르만 헷세 ‘겔트루트’ 중에서


한 해의 절반이 가버렸다. 지루한 녹음으로 이어지는 계절 속에 마른장마는 상갓집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안개인지 연무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우산을 펼까말까 망설이게 하는 는개(안개처럼 보이면서 이슬비보다 가늘게 내리는 비)는 우울한 심사를 더욱 돋운다. 모든 게 돌아앉아 있는 듯하다. 담을 타고 넘는 덩굴장미도 주먹 불끈 쥐고 피어나는 수국 꽃송이도, 하나 둘 나팔을 불기 시작하는 능소화마저도 돌아앉아있다.

참으로 감당키 어려웠던 지난날이었다. 전직 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는 사람들을 공황상태로 몰고 갔다. 정치적 타살, 신기축(己丑)사화, 자결, 존엄사…. 의분에 찬 말들만 분분할 뿐 책임지고 사과 하는 사람은 없다. 한 때는 결사적으로 물고 뜯었던 신문·방송도 한마음으로 애도의 물결을 연출하며, 국민들을 위무하려고 애썼다.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를 외치는 소리는 자자하지만 ‘껍데기’들은 꿈쩍 않는다. 소나기만 피하면 되고 필경 사람들이 건널 레테의 강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기 때문일까.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보기 드물고 찾기 어려운 알맹이-고갱이들을 만났다. 9월 결혼을 앞둔 이은주(25세), 오경준(30세) 회원. 아름답다, 따뜻하다, 착하다, 갸륵하다, 훌륭하다. 기특하다… 이 보다 더 많은 수식어가 필요한 커플. 이들의 만남은 참여연대에서 시작되었다.


희망UP 캠페인, 사랑과 운명을 UP

20004년 참여연대와 아름다운 재단이 공동으로 기획한 ‘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 희망UP’ 캠페인은 그들의 운명을 점지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이들은 한 달(7월1일-7월31일)간 체험단의 자원활동가로 발을 디뎠고, 캠페인이 끝난 바로 그 다음날부터 사귀었다고 한다. 당시 이 캠페인은 시민들에게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체험단들의 가계부와 수기는 매일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었고, 언론은 개념도 생소한 최저생계비의 현실을 고발했다. 국회의원이나 복지부장관 등 정책결정자들도 캠페인에 참여해 최저생계비의 현실화, 사회안전망 확충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로 인해 기대에는 못 미쳤으나 예년보다 큰 폭의 최저생계비 인상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개정도 이루어졌다.

캠페인에 참가한 동기부터 궁금했다. 서로 눈빛으로 차례를 양보하다 이은주 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대학 3학년 여름방학 때였어요. 사회복지가 전공인데 남기철 교수(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님이 프로젝트를 소개하셨죠. 사회복지에 관한 꿈은 중학교 때부터 키워왔으니 당연히 참여했죠.”

이어 오경준 님이 말했다.

“저는 제대하고 복학을 기다리던 중이었죠. 인터넷으로 시민단체를 검색하던 중 참여연대가 제일 마음에 닿더라고요. 직접 한 번 가보자 싶어 사무실로 갔더니 한창 희망업 캠페인 준비에 분주했어요. 참여연대 간사님들이 이것저것 도움을 청하기에 함께 하다 보니, 은주 씨도 만나게 됐죠. 희망을 업 시켜야 하는데 우리는 사랑을 업 시켰어요.(웃음)”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는 달콤한 기억이 두 사람을 달뜨게 하는 분위기였다. 사회복지 전공자와 경영·경제학 전공자가 선택한 직장은 같은 금융업계. 이 또한 의아했지만 사랑은 한 곳을 함께 바라보는 마음의 발로일까. 때문에 ‘사내 커플’로 오해를 받는다며 둘 다 활짝 웃는다. 선남선녀가 따로 없다. 이들은 ‘아주 특별한 만남’의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다.



“소개비 내야죠” 월하노인 참여연대에 최저생계비 기부

결혼을 약속하고 주례선생님으로 남기철 교수님을 모시기로 했다. 그와 동시에 참여연대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들에게 참여연대는 평생지고 가야하는 달콤한 부채와 같았다. 어떻게 그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까 궁리를 하다 희망업 캠페인의 최저생계비로 접점이 모아졌다.

“참여연대에서 소개를 한 셈이니 소개비를 내야지요. 올해 2인 가구 최저생계비(83만 6천 원) 정도는 내자고 뜻을 모았죠.”

의미 있는 기부에 찬사를 아끼지 않자 두 사람은 쑥스럽다며 손사래를 쳤고, 오경준 님은 천연덕스럽게 한 수 더 뜬다.

“결혼해서 아이를 몇 명 낳을 지 아직은 결정은 안 했지만 아이를 한 명 낳을 때마다 그에 준한 최저생계비를 기부할 생각입니다.”

어쩜 이렇게 옹골지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했을까. 요즘처럼 출산율 저하가 심각한 사회 문제인데 국가정책에도 이바지(?) 하고, 참여연대 재정에도 보탬을 주겠다니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격이 아닌가. 한바탕 유쾌한 웃음이 흩어졌다.

첫 만남의 설렘이 확대재생산 되는 자리로 물길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5년 전의 이야기가 재연되는 분위기라 덩달아 즐거웠다. 희망업에 대한 소회를 묻자 순간 두 사람 얼굴에 그늘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월곡동이면 학교 바로 뒷동네였는데 서울에 이런 동네가 있나, 할 정도로 깜짝 놀랐어요. 골목이 얼마나 좁으면 한 사람이 지나가면 한 사람은 기다려야 하더라고요. 늘 학교 앞의 휘황한 불빛만 바라보았지…. 사회복지를 전공한다는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그러기에 아직도 복지에 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어요.”

이은주 님의 은행 창구에선 반복되는 숫자만 보이지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이웃과 복지와 대한 관심이다.

우리가 선 자리는 사람을 잊고, 잃고 살아가는 세상이다. 하늘로 치솟은 아파트에는 집값만 주인이고, 그 땅에 몸을 부대끼고 살았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들의 흔적은 철저하게 부셔졌고 또한 구조적으로 토건업자들은 대중을 잊게 현혹시키며 달려간다. 한 조각 땅만 보며 쓸어버리고 물길만 있으면 파고 뒤집는다. 이게 다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참여연대 없는 세상 꿈꾸며

그래도 이 커플을 보면 금새 입이 귓가에 걸린다. 비록 직장에 매여 예전처럼 활발한 활동은 못하지만 안테나는 늘 참여연대로 향하고 있다. 촛불집회나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나 중심에 서지는 못했지만 주변부에서 참여하며 여론의 흐름을 읽는다. 직접 참여해보니 생각이 바뀌더라며 대한문 앞 분향소의 분위기를 오경준님은 전했다. 자책과 함께.

“제가 투표권이 생긴 이후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자신 있게 투표한 대통령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참 좋아했습니다. 물론 작은 사건들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큰 틀과 나아가려는 방향은 이명박 정권과 확실히 달랐죠. 탈권위적인 위엄이 후련했는데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버린 셈이죠. 사람들은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가슴에 담고 그 분의 진정성을 깨닫는 조문이었습니다.”

잃고 나서 비로소 깨닫는 어리석음. 개인의 감정이 역사의 도도한 물결을 이루리라.

당시 학생으로 희망업 캠페인에 참가했을 때와 지금 직장인으로서 바라보는 사회의 문제점과 그 해결책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이은주 님은 잠시 숨을 고르다 또박 또박 자신의 뜻을 밝혔다.

“정부의 정책과 관심이 중요합니다. 날이 갈수록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부자들의 힘은 강해지는 것 같아요. 희망업 캠페인에서 체험했듯이 최저생계비로는 제대로 치료받고, 교육받고 지낼 수 없습니다. 최저생계비는 최저생존비에 지나지 않는 거죠. 종부세에 대한 저항이나 온갖 편법을 동원하여 세금을 회피하려는 부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보다는 생존과 인간다운 삶에 국가의 역할이 더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늘 하는 마지막 질문- 참여연대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부탁하자 오경준 님의 명쾌한 즉답이다.

“참여연대가 없어져야 좋은 세상이 오는 거죠.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필요 없고 더 이상 보살필 약자가 없는 세상이 올 때까지 참여연대는 건재해야겠죠. 비록 지금은 어렵고 욕을 먹더라도 쓴 소리 하고 사회의 아픈 곳을 긁어주고…. 창립선언 정신을 잊지 않고 나아가길 바랍니다.”



자원활동, 즐거운 ‘자기권력’의 행사

9월12일 토요일 오전 11시 한국컨벤션웨딩홀(개봉동).

한사코 날짜, 장소 밝히는 걸 쑥스러워했지만 참여연대로서는 이 보다 더 좋은 경사가 없다. 시민운동의 시작은 이렇게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것부터 시작된다. 정치성을 띄며 과격한 시위를 한다는 왜곡된 인식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활동하는 사람 중심의 따뜻한 모임이 시민단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원활동 또한 부담없이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는 과정이다. 누구의 간섭이나 종용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에 즐거운 ‘자기 권력’의 행사이다. 이를 통해 민주시민으로 성숙해 가며 민주국가의 주권자가 된다.

자기중심주의를 끝내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기를 결심한 두 사람의 성숙한 언약에 아낌없는 축하를 보낸다.



발문
“정부의 정책과 관심이 중요합니다. 날이 갈수록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부자들의 힘은 강해지는 것 같아요.
희망업 캠페인에서 체험했듯이 최저생계비로는 제대로 치료받고, 교육받고 지낼 수 없습니다.
최저생계비는 최저생존비에 지나지 않는 거죠. 종부세에 대한 저항이나 온갖 편법을 동원하여
세금을 회피하려는 부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보다는 생존과 인간다운 삶에 국가의 역할이 더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업 캠페인’이란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은 2004년 7월, 성북구 하월곡동에서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UP 캠페인’을 진행했다.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인 최저생계비. 그 적정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실증적 검증 없이 ‘높다 낮다’는 식의 공방만 있는 상황에서 최저생계비가 보장해주는 생활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직접 경험해 보기로 한 것이다. 한 달 체험(5가구 11명), 릴레이체험(1-2일 체험), 온라인체험(집에서 최저식품비로 생활 체험) 방식으로 진행한 희망업 캠페인은 일반시민에게는 생소한 최저생계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국회의원, 보건복지부장관 등 정책결정자들이 캠페인에 직접 참여하여 한국사회의 빈곤현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가 실질적인 제도개선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최저생계비는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으로, 기초생활수급자 등 각종 복지대상자 선정 및 급여의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저생계비는 매3년마다 국민 생활수준 조사(계측조사)를 실시하여 결정하고 있으며, 계측조사를 실시하지 않는 해에는 국민의 생활실태 및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여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공익대표, 민간전문가, 관계부처 공무원 등 12인으로 구성된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심의·의결이 필요하며,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은 매년 9월 1일까지 다음연도 최저생계비를 공표해야 한다. 2009년도 최저생계비는 1인가구 월 491,000원, 2인 가구 836,000원, 4인 가구 1,327,000원이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