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1월 2009-01-01   820

칼럼_’삼시 세 끼 따신 밥 먹기 힘든 세상’에서의 다짐




‘삼시 세 끼 따신 밥

먹기 힘든 세상’에서의 다짐



박영선『참여사회』 편집위원장


한 해 막바지에 이르렀는데도 숨이 가쁘기만 한 어느 날, 박노해 시인이 보내 준 한 편의 시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인생에서 큰 욕심도 없는’ 시인은 ‘삼시 세 끼 따신 밥 먹고 산다는 게 왜 이리 갈수록 힘든 세상인지’ 탄식하더군요. 마침 송년회 자리에서 만난 한 친구의 얘기가 계속 뇌리에 머물고 있었던 터라, 시인의 한숨은 바로 제 것이 되었습니다. 친구는 앞으로 무료급식소의 줄이 더 늘어날 전망이고, 넥타이 맨 사람들이 그 줄에 합류하게 될 거라고 경고하더군요. 어쩜 친구의 비관적인 경제 전망은 술자리에서의 안주거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얘기에 귀가 솔깃했던 이유는 주변 사람들의 형편이 말이 아니란 걸 실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생활 십수 년 만에 어렵사리 집을 마련한 한 친구는 결국 집을 내놓았습니다. 바쁜 생업에도 불구하고 참여연대 일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한 회원은 회비를 낼 형편이 못 된다며 연락을 끊었습니다. 김 선생도 택시 이용이나 외식 일체를 금한다는 결의(?)를 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였지요. 가스비 부담 때문에 난방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데 그나마 겨울 한파가 심하지 않아 다행입니다.  모두들 사는 형편이 이러하다보니, 삼시 세 끼 따신 밥에 대한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아이고, 김 선생. 세상살이 한탄을 하다보니 새해 인사가 늦었군요. 부디 2009년은 평화롭게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새해맞이는 알차게 하셨는지요? 해가 바뀌었다고 새로울 건 별로 없지요? ㅎㅎ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매듭지어지는 것에 무감해지는 듯합니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에 대한 족쇄가 어떤 건지 잘 아는데도 흐르는 시간을 그저 지켜볼 뿐입니다. 하지만 특별한 회포 없이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할 때 드는 아쉬움이 있긴 합니다. 솔직히 시간의 의미가 마냥 같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마다 생의 무늬가 제각각인 것은 사실 사람마다 촌음을 달리 보내기 때문일 테니까요.

촌각을 어찌 보냈는지 헤아리는 일은 어리석다 치고, 굵직하게라도 한 해를 정리해보는 일은 나름 필요할 거 같습니다. 정리 방법은 가지가지. 저는 이번에는 참여연대 활동가 교육 때 강의를 해주셨던 코칭 전문가에게 배운 방법을 이용해봤습니다. Yes list와 No list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매우 간단하지요. 저의 Yes list는 매우 초라합니다. 자부심을 느끼며 쓱쓱 써 내려간 내용은 이 세상이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제 맘에 각인한 것입니다. 아마도 저 말고도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며 저와 같은 깨달음을 얻었겠지요. No list는 적어도 적어도 끝이 없더군요. 무에 그리 적을 게 많냐구요? 김 선생도 직접 한번 해보세요. 미련과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 무궁무진할 겝니다. 교수신문에서 2008년의 사자성어로 ‘호질기의(護疾忌醫)’를 꼽았다잖아요. 과실이 있으면서도 남에게 충고받기를 싫어하는 경우를 비유할 때 사용되는 말이라 하는데, 부끄럽지만 저의 No list에도 담겨져 있는 내용입니다.  (물론 ‘호질기의’에 제일 합당한 경우는 이명박 대통령과 그 일당(?)이겠지요. 그 일당들은 충고를 하는 사람들을 외려 되술래잡고 있지요. 환부는 이미 곪아터질 대로 곪아터졌건만,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고서야 귀를 열고, 마음의 문을 열고 국민의 소리를 들을 생각인지 답답하기만 하네요. ) 

새해 다짐은 No list를 Yes list로 그래도 다시 한 번 옮겨 적으면 됩니다. 옮겨 적을 내용이 너무 많아 귀찮다면 목록 제목의 2008 No를 북북 지워버리고 2009 Yes라고 바꿔도 된답니다. 어때요? 한 순간에 꽤 그럴듯한 새해 다짐 목록이 완성되지 않았나요? 통찰력이 뛰어난 김 선생은 제가 지키지도 못할 다짐, 아니 기억조차 하지 못할 다짐을 되풀이하는 까닭을 아실 거에요. 격려해주세요.

어느 송년회 자리에서 일본인 친구가 서툰 한국말로 낭독해주었던 미야자와 겐지의 시 한편을 소개하며 신년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작가의 불교적인 세계관 때문에 다소 초월적인 느낌이 드는 몇 구절이 걸리긴 합니다만, 저에게도 이런 바람이 있답니다.

참, 지난 호에 『참여사회』의 어려운 형편이 소개된 후에 김 선생처럼 많은 분들이 자기 일인 양 큰 관심을 가지고 성원해주었어요.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몰라요. 고마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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