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11월 2009-11-01   1277

칼럼_내 안의 욕망으로 얼어버린 땅



내 안의 욕망으로 얼어버린 땅



김성희 <참여사회> 편집위원, <살림이야기> 편집장




박 선생님께


®Ben Heine, Flickers편집위원장께서 보내주는 편지에 대해 「참여사회」 독자 한사람으로서 한 번쯤은 답장을 드리고 싶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11월입니다.

써 놓고 보니 묘하게 글자의 형상조차도 남은 잎을 다 털어낸 이즈음의 나목들을 닮아 있습니다.

지난 주말 지리산에 다녀왔습니다. 이즈음의 그 산은 깊고 고적했습니다.
등산화 발자국소리에도 화들짝 놀라 나무들이 잎을 우수수 털어내던 능선 위에는 이미 겨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털어낸 나무들은 이제 죽은 듯이 침묵한 채 눈과 얼음을 뒤집어쓰고 겨울을 날 것입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기적처럼 새순을 밀어 올리겠지요.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거의 육십 리에 달하는 능선 길을 끝까지 걸었습니다.
대피소들을 제외하고는 자동차나 도로, 높은 건물 같은 문명의 흔적들을 마주치지 않고도 이삼일 줄곧 걸을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 아마도 그 곳 말고는 없지 싶습니다.


노고단에서 저는 이명박 대통령을 떠올렸습니다.
그가 대통령 선거를 앞둔 때 그곳에 올라 ‘아직 개발이 덜 됐다’고 했다던 그 말 때문에 말입니다.
산 아래 마을들이 가물가물 비현실적으로 멀게 내려다보이는 그 곳에 서면
거대한 자연 앞에 어쩐지 왜소한 인간을 실감하게 되고
이 때문에 겸허한 마음이 들 텐데 그 이는 그런 생각을 했었구나.
그런 마음으로 바라보면 지리산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정권이 명운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4대강 정비 사업’이라는 것도 수억 년 산을 에돌아 뒤척이며 흘러가던 그 강물들을 그냥 그대로 두고 보지 못하겠다는 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사람이든 자연이든 그 자체로 존중하고 이해하기보다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는 그 마음 말입니다.
어찌되었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겠지요.
돈을 많이 벌면 삶이 윤택해지고 행복감도 커질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대통령의 그 마음은 우리들 대다수의 욕망을 반영한 것이지 난데없이 생겨난 그 무엇은 아닐 것입니다.


장터목산장에서의 잠자리는 불편했습니다.
난방기가 뿜어내는 열기와 빼곡하게 들어찬 등산객들의 체온과 호흡 때문에 실내가 너무 더웠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새벽에 몇 번이나 산장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강물처럼 수놓은 은하수를 바라보며 산바람을 맞아야 했습니다. 장터목산장에서 남쪽하늘을 바라보면 도시 사람들에게는 기괴하게 느껴질 만큼 수많은 뭇별들이 쏟아질 것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하늘에 맞닿은 섬진강 굴곡을 따라 늘어선 사람들의 마을에서 시작된 전깃불 역시 별빛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어차피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원소들도 빅뱅의 순간에 흩어진 별들의 부스러기들이고, 그들이 밝히고 있는 전기 역시 석유처럼 지구의 땅속에 잠들어 있던 그 옛날의 태양에너지를 태워 만든 것임을 떠올리면 구태여 마을에서 흘러나오는 전깃불과 하늘의 별빛을 구분하는 일이 무의미하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 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바람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일출을 보기 위해 천왕봉에 오르던 길에서 저는 이 시가 적힌 홍보전단을 받았습니다. 정부에서 자연공원법을 바꿔 설악산과 지리산에 건설하겠다는 7개의 케이블카를 건설하려고 나서자 환경단체들이 천왕봉에서 농성을 시작하였습니다. 산과 강을 보면서 그것을 어떻게든 변형시켜 당장의 돈벌이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마음과 그것을 그대로 두고 더 겸손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마음. 서로 다른 두 마음이 우리 안에도, 아니 내 안에도 뒤섞여 있습니다. 돈이 앞에 보이는 사람에게는 사람이든 자연이든 그 대상이 돈벌이에 보탬이 되는 존재와 방해가 되는 존재로밖에는 인식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용산에서 사람들을 죽여 가면서까지 추진했던 그 난폭한 일방주의 역시 마찬가지였겠지요.


산에서 돌아오니 문규현 신부가 용산참사를 해결하라며 11일째 단식을 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는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그 분은 작년 가을부터 올 여름까지 노고단에서 출발해 임진각까지 오체투지를 했습니다. 한반도의 남단에서 가장 높은 산 지리산에서 거의 지면에 이마를 부딪칠 듯이 온 몸을 땅에 내던지며 ‘자벌레처럼 기어서’ 남녘땅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북단까지 북상한 것입니다.

저는 그 무렵 그분들이 이 순간 국토의 어딘가를 기어서 가고 있을 생각을 하면서 차마 마음 편하게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분들은 오체투지를 하면서 우리시대의 욕망과 폭력을 참회하고 생명과 평화를 기원하면서 가장 낮은 지면에 이마를 조아립니다.
정작 성찰이 필요한 이들은 저토록 안하무인으로 난폭한데 왜 신부님과 스님이 벌레처럼 온 몸으로 기면서 참회하며 국토를 종단했어야 했는지 저는 지금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써 생각해보면 예수께서 죽음을 자처한 것처럼
내 안에도 들끓고 있는 더 많은 소유, 더 빠른 속도, 더 넓은 집, 남 보다 잘나야 한다는 욕망이 이토록 난폭한 정부를 빚어냈고, 폭력적인 일방주의를 용인했으며 용산의 비극을 초래한 것이 아닐까. 신부님과 스님은 그것을 안타까워하며 대속의 고행을 자처하신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박 선생님.

이제 겨울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맵고 시린 일들이 더욱 많아지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겨울이 호되다 해도 단 한 번도 봄이 오지 않은 해는 없었던 것을 떠올리면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긴 겨울 몸과 마음을 잘 여미고 봄을 기다리겠습니다. 산록의 나무들이 얼어붙은 채로도 언 땅 속에서 수액을 끌어올려 새봄을 준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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