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10월 2009-10-01   1093

참여사회가 눈여겨본 일_일본 총선, 55년만의 정권 교체



“당사자 참여 없이 결정 없다”는
민주당의 개혁 행보



강내영 일본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

이번 일본 총선거의 정권교체는 55년 동안 장기집권한 자민당을 반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일본 사람들은 “일본의 장래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시민들이 가져온 느낌이다. 이렇듯 기존의 정책과 제도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진 것이 고이즈미 정권이었다. 그러나 그 후 자민당은 침몰해 가는 배위에서도 배를 고칠 생각보다는 선장만 바꾸면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오산이 결국 국민들에게 배를 갈아타게끔 만들었다. 다시 말해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고,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국민들의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정책으로 돌파하기 보다는 총리 간판을 교체하는 것으로 버텨온 것이다.

한국 역시 정책상 난맥이 발생하면 임시방편으로 정책 몇 가지를 내놓거나 관계부처 장관 몇 명을 교체하는 것으로 혼란스런 정국을 돌파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일시적인 처방에 불과하며 결국 문제가 발생하는 연쇄작용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국민의 인식이 널리 공감대를 얻게 된 것이다. 

‘변화’를 열망하는 분위기 속에서 민주당은 143명의 새로운 의원을 탄생시키며 사민당과 국민신당 등과 함께 거대연립여당을 탄생시켰다. 이와는 반대로 지난 선거에서 고이즈미 전 총리가 우정국 개혁을 내세우며 대거 당선된 84명의 고이즈미 칠드런 중에 10명만 살아남았다. 오히려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당의 오자와 간사장(당시 선대위원장)이 고이즈미와 같은 방식으로 여당 거물들의 지역구에 46명의 여성후보를 내세워서 40명을 당선시켰다. 물론 이것이 압승의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오자와의 구체적인 선거 전술을 살펴보겠다.



한집 한집 방문하는 도부이타 선거운동

민주당은 ‘생활 정치, 서민의 정치’ 이슈를 내세워 싸웠다. 선거전술은 매우 기본적인 이야기지만 한 집 한 집 방문하는 도부이타(집 문턱 드나들기)선거를 바탕으로 사진 작전, 강 상류 작전, 포스터 작전 등의 선거운동이 동원되었다. 도부이타 선거는 오자와가 정치에 처음 입문할 때 다나카 전 총리에게 배운 전술이었고, 이 방법으로 당시 오자와는 최다득표를 얻어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 외에도 오자와는 자신이 직접 키운 비서 군단을 전국에 파견해 후보자들을 음지에서 지원했다. 이 비서 군단의 교통비와 숙박료, 급료는 오자와 사무소에서 전부 지급했다. 또한 오자와도 불시에 각 선거구를 방문하여 실무를 하나하나 체크하며 후보자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독려의 글을 보내기도 했다. 당선된 직후에도 바로 메일을 보내어서 “선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역주민들에게 인사를 다닐 것”이라고 지시했다.

여기에 정권교체라는 명분으로 야당과의 연대를 이끌어 내면서 직간접적으로 시민사회의 지원 역시도 끌어낼 수 있었으며,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여권을 전방위에 걸쳐 고립화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민주당의 철저한 선거 전략이 합쳐져서 정권교체라는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자민당의 자기 붕괴, 민주당의 어부지리

일본의 시민사회에서 정치적 의사를 확실하게 표시하는 조직은 거의 없다. 물론 개별적인 문제, 예를 들어 고령자 복지, 장애인 복지, 보육문제, 환경보호, 마을만들기, 비정규직 문제, 반전, 반핵 등에 관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는 무수하게 많으나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거나 특히 정당과 연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게다가 사민당의 전신인 일본사회당이 어느 정도 혁신정치 역할을 담당했지만, 현재의 사민당은 사멸직전이다. 일본 공산당은 특정 분야에서는 공산당계열의 시민단체가 조직되어 있지만, 전체에서 본다면 영향력이 큰 편은 아니다.

시민단체는 오히려 정당이나 기업과 거리를 두는 것이 시민활동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제 2차 세계대전 후 장기집권 해온 자민당 정권에서 기본적으로 시민활동은 ‘패배의 연속’이라고 규정해온 것과 관계가 있다. 물론 시민활동 그룹은 꾸준히 자민당 정권의 교체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경제적인 성장과 안정적인 일본사회 속에서 두터운 보호정책의 은혜를 받아온 농가와 건설업, 대기업 등에 의해 지지를 받아온 자민당의 지위를 위협할 정도는 안 되었다. 그래서 이번 선거결과는 일본의 경제적인 쇠퇴와 자민당 정책에 지금까지 중요한 지지층이었던 농촌과 도시의 영세업자에게 재배분 장치가 최종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이 정권교체 선거와 관련해서 시민단체와 시민운동 그룹이 크게 흥분하거나 동요하지 않은 것은 시민활동이 성숙해져서 시민의 의식이 높아지고, 제도의 변혁이나 정치에 기대하기 보다는 자발적인 활동을 통한 변화를 중시하면서 어떻게든 자민당 정권을 밀어내겠다는 절박성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또 민주당 스스로 노력하고 분발해서 이룬 정권교체라기 보다는 아베 정권 이후 3대에 걸친 세습총리 등 자민당의 자기붕괴에 의한 민주당의 어부지리적 인상이 강한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한편 민주당은 시민운동을 끌어안고 함께 사회를 변화시킬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물론 도청법이나 공모죄 등의 악법이 만들어질 때, 또는 최근의 반빈곤 활동과 관련해서 시민단체 측의 힘이 되어준 민주당측 의원들도 있다. 하지만 시민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반응해 온 것은 역시 공산당과 사민당이었다. 민주당은 워낙에 사상이나 신념이 다른 의원들이 동거하고 있는 탓에, 특히 시민운동 최대의 이슈 중 하나인 헌법문제와 관련해서, 헌법 9조(전력보유 금지 및 교전권 금지 등) 개정을 원하는 의원이 많은 민주당에 경계감을 가지고 있는 시민활동 그룹이 상당수다. 또한, 경제정책에서도 신자유주의적인 경향이 보이는데다 하토야마 총리나 오자와 간사장 역시도 원래 자민당 출신이라는 것도 염려되는 지점이다. 또, 작은 정부를 목표로 하고 있고, 쓸데없는 관료 기구를 폐지해 시민들에게 직접 지원을 실시하는 방향성이 최종적으로 산업화·시장화를 꾀할 것이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올 1월에 ‘파견촌-히비야 공원에 설치한 비정규직의 임시 주거촌’의 운동은 자민당이 경제단체와 함께 진행해온 노동의 규제완화 문제로 논란이 됐고, 이것은 선거에서도 자민당에게 큰 손실을 가져왔다. 파견촌의 실행 주체는 반빈곤 운동 그룹이지만 그 중심에는 비정규 노동조합이 있다. 현재 과제는 생활보호의 재확충과 일용직과 제조업 파견의 금지 등을 담은 노동자파견법의 개정이지만 그 부분은 민주당·사민당·국민신당의 연립정권에서는 상당 부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민주당 내 파견업 규제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합의가 어렵다. 마지막으로, 자민당이 만든 추경예산에서 한국의 제도와 비슷하게 접근한 비정규직 노동자층을 위한 직업훈련제도 등이 대규모로 시작되었으나, 민주당이 추경예산을 동결시켜 이후 어떻게 진행될 지 알 수 없다. 적어도 민주당이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같은 수준 높은 복지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민당보다 민주당에 기대하는 이유는 적어도 일본 시민사회의 발언이 국정에 반영될 기회가 전보다 커져서 일본을 지배했던 정·관·언의 유착으로 인한 고질적인 부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이 자칫 잘못하면 자민당의 55년 체제와 다를 바 없는 신체제 정권이 되지는 않을지, 아니면 획기적인 2009년 체제가 될 지 아직은 판단을 유보하고 지켜보고 있는 것이 시민사회의 속내인 듯 하다.



선거전에는 예상못한 지지율 75%

내 주변에는 기본적으로 자민당이나 민주당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사민당이나 공산당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도 없다. 

선거 전에는 정권교체 이후 민주당이 어떤 정권을 만들어 갈 지 사실 국민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다. 하토야마 총리가 유명한 정치가지만 실제 총리 자질 측면은 확인된 것도 없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민주당 정권의 준비와 성립 과정을 본 후에는 의외로 잘하고 있다는 평이다. 하토야마 총리의 입에서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 이전 정권의 또 하나의 상징인 관료 문제에 대해서도 일관된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각료 인사를 발표했고, 그 각료들이 주장하는 바를 국민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는 자세 등이 신뢰감을 주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총무성(한국의 행정안전부)의 수장이 된 하라구치 대신은 취임식에서 교부금을 일괄교부금으로 나눠주고 지방자치에 맡긴 것은 아주 획기적이다. 지역에 재원과 권한을 최대한 이전하여 지역이 스스로 지혜를 내어서 과제를 해결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각 부처의 출장소를 폐지해 낙하산 인사 폐지 및 지방분권 활성화를 꾀하겠다고 했다. 우정국의 민영화 정책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천명했는데 여기에서의 원칙은 도서 지역 등의 소외지역 등을 배려하는 공공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으로 민영화를 주도해온 고이즈미 정권이래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의미하는 것이다. 국토교통성의 마에바라 대신은 취임식에서 민주당이 선거에서 내건 매니페스토를 바탕으로 현재 진행하고 있는 댐 건설 사업을 중지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여기서부터 시작”이라고 강조하며 지금까지 자민당이 중점적으로 해 왔던 건설·토목 공사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통해 예산낭비를 막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특히 하토야마 총리가 취임하자마자 온실가스 90년 대비 25% 삭감이라는 중요한 정책적 카드를 내밀었다. 경제계가 이전부터 반대해온 정책을 아무도 이렇게까지 대담하게 내놓은 적은 없었다.

이러한 영향인지 주변에서는 민주당 정권에 별로 기대 하지 않았었지만 내각이 결정되고 각료들의 입장이나 의견을 듣고 나서는 어느 정도 기대감과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를 비롯한 내각의 획기적인 행보로 경제계 중진들과 관료들의 당황한 얼굴을 본 국민들이 이것이 바로 ‘정권교체’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지지율 75%(일본경제신문 조사)가 그 반증이다. 이는 확실히 선거전에는 예상하지 못한 숫자였다. 사실 정권교체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 국민들은 선거 전이나 선거 직후에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 정권이 교체된 지금에서 국민들은 느끼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일본의 변화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 공감대 없는 개혁은 공허한 메아리

일본의 정권교체는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까? 우선 외교부문에서 자민당의 친미외교 정책에서 하토야마 내각의 친아시아 외교정책으로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외교의 기치로 내걸었다. 우선 이러한 자세는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당장 풀어야 할 현실적인 문제가 한 둘이 아니다. 영토문제가 그것이다. 또한, 내년은 한국과 일본이 강제적인 합방을 맺은지 백 년이 된다. 이와 같이 해묵은 영토문제와 역사문제를 깔끔히 털어버리기는 국가적 차원에서는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동아시아의 시민사회가 뚜렷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상호간의 신뢰를 구축하면서 어려운 숙제의 답을 제시하고 국가가 따라가는 형태가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토야마 내각은 출범과 동시에 ‘예산낭비’라는 이슈를 내밀었다. 특히 각종 공공사업분야로, 가장 먼저 자민당이 진행해오던 댐 건설 취소를 필두로 각종 국책공사를 중단했다. 경기 부양과 지역균형 발전을 이유로 4대 강을 정비하겠다는 한국의 국책사업과, 일본 역시도 경기부양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서로의 정책이 대비된다. 또한, 한국사회도 관심이 많은 사회 격차문제, 특히 ‘워킹푸어’(근로빈곤) 문제를 줄이기 위해 전국 평균 최저시급을 현재 713엔에서 1,000엔으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그 밖에도 지방자치와 복지, 교육 등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지금까지 문제로 지적 받은 과제들에 대해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 과제들을 실행하는 원칙도 “모든 정보를 공개해서 국민들에게 협력을 구하겠다. 여기에는 숨기고 싶은 것도 있지만 전부 공개해서 자기 변혁부터 실시하겠다.”, “당사자의 참여 없이 결정 없다는 원칙을 지켜나가겠다.” 라고 입장을 밝히면서 언론과 국민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시민사회가 현 정부와 소통이 안 된다고 느끼는, 정책에 대한 정보 비공개와 불투명한 진행과 처리방식, 당사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통로의 봉쇄 등을 이유로 들고 있는 것과도 대비되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행보들은 결국 국민이 요구하거나 공감대를 얻은 이슈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국민의 동의 과정 없이 무리하게 진행한다면 공허한 메아리거나 미완의 결과로 남겨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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