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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08월
  • 200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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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죽이려는전문가와  
사과밭을 살린 늙은 농부


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이시카와 다쿠지, <기적의 사과>, 이영미 옮김, 김영사, 2009년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이 나라에 심란한 뉴스가 단 하루도 멈추었던 적이 있었던가? 골똘히 생각해보건대, 단연코 없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방금 전 뉴스도 그랬다.


‘4대강 삽질’하는 범죄적 발상

칼국수에 공업용 알코올을 넣었단다. 제조업자 왈, “알코올은 다 마찬가지 아닌감?” 그러고 있다. 3백여 군데 식당에 공업용 알코올로 제조한 먹을거리가 유통되었다는데, 식품업체 대표 딱 한 명이 구속되었단다. “저런 나쁜 놈들!”, 하고 혀를 차다가도 소액의 벌금이나 불구속 입건으로 곧 나오겠지 싶어 곧 허탈해진다.

쌍용자동차의 ‘사社’측에서는 경찰과 같이 공조해 헬기를 띄워 농성자들의 수면을 방해하려는 시나리오를 주고받은 모양이다. 늙으신 부모가 위독하다고 전화를 걸어 바깥으로 나오면 그때 잡자, 그런 아이디어도 나눈 모양이다. 경찰과 ‘사’측은 자주 공조하곤 하지만, 경찰과 ‘노勞’측이 공조한 적은 단연코 없다. 공조는커녕 얻어맞고, 불타 죽어 냉동실에 갇혀 장례도 못 치르기 일쑤다.

아하, 하나 더 있었구나. 최근 매우 저질스럽고 부도덕한 검찰총장 후보자가 자녀의 위장전입과 수입보다 많은 지출을 하던 생활, 말하자면 골프외유와 명품 쇼핑을 일삼던 사치스러운 생활이 드러나 보기 좋게 낙마해 조기에 눈치 빠르게 퇴임한 사건이 있었다. 자녀 위장전입이라는 명백한 탈법과 탈세, 위증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옥으로 직행하지는 않았다. 얼마 후, 그 보복으로 검찰은 청문회장에서 골프외유 때 구입한 명품 내역서를 공개했던 한 국회의원이 어떻게 자료를 입수했는지 조사 중이라고 했다. 국가기관의 정보를 국회의원이 보거나 입수해 청문회 때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인데, 국가기관의 자료는 오직 검찰만 볼 권한이 있는 모양이다. 검찰은 최근의 사건에서 당혹감, 낙담, 황당한 충격에 빠진 모양이다. 그러면서 “검찰조직의 힘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멋지고 당연한 말도 더러 한다. 그렇다면 청문회 때 활약한 국회의원을 보복하려고 할 게 아니라 혹독한 자기반성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 그나저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시건방진 조사를 한 검찰을 ‘검찰’에 고발할 수는 없을까.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무대 뒤의 전문가들

우리나라에는 사람을 슬프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드는 이런 종류의 뉴스가 거의 매일같이 터진다. 하지만 뉴스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정말 하려는 이야기는 어젯밤(7월16일)에 시청한 MBC <100분토론> 이야기다. 근래 <100분토론>의 주제가 “사장 퇴진하라”는 청와대 비서관의 안하무인의 협박 때문인지는 몰라도 토론이 하나 마나한 것으로 흐르는 듯해 안타깝기 그지없었는데, 어젯밤 주제는 다행히 ‘4대강’이었다.

<100분토론>이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4대강 살리기’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한쪽에, 건너편에는 ‘4대강 죽이기’라는 표현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앉았다.

모두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학교수면 일단 전문가로 간주된다. 그런데도 전문가라 서로 추켜올리는 이들이 모여서도 “이 문제는 전문가들이 할 일이고요”, 어쩌구 한다. <100분토론>이라면 국민들이 다 지켜본다. 그런데, 이 전문가들은 겁이 없다. 국민들이 전문가들 위에 있다는 것을 이들만 모르고 있다. 무슨 심포지엄이나 하계 세미나에 참석한 줄로 알고 있다. 이 나라의 고질적인 망국병 중에 ‘전문가주의병’이 있는데, 이들이 갖고 있는 전문가의식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4대강’에 삽질을 하려는 작금의 작태를 가히 ‘범죄적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어차피 내 신념에 바탕해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 듣고 공감하고, 내 의견과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열심히 경청이야 하지만, 때로는 저항감을, 때로는 분노를, 때로는 욕설이 나온다. 나는 공감하는 의견을 내는 사람이라도 그 말에 절박함이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으면 불쾌해진다. 어쩔 수 없는 편견과 선입견을 스스로 어느 정도는 통제하려고 애쓴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4대강’ 같은 주제는 그 견해가 너무나 명백하게 대비되어서 내 이성적 통제를 요긴하게 작동시킬 필요가 없었다.

심명필 추진본부장은 홍수 가뭄 피해와 일자리 때문에도 서둘러야 한다고 했고, 반대 측 사람들은 그 사업이 이 경제대란의 시기에 그토록 급한 일이냐며 거기 투입되는 천문학적인 돈을 다른 데 선용하라고 권유했다. 토론은 결단코 상대방 의견에 의해 자기생각이 수정되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는 것도 아니다. 모두 자기주장만 되풀이할 뿐이다. TV토론이 아니라도 사람 사이에 정말 멋진 토론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문제는 인간의 한계에 속하는 일일 것이다.


부드러운 목소리에 감추어진 비정과 오만

나는 그렇지만 특히 한 사람에만 주목하고자 한다. 박재광 미 위스콘신대학 건설환경공학과 교수가 그이다. 이마가 훤하고, 목소리는 부드럽고, 눈빛도 선량하게 생긴 이였다. 좋은 환경에서 잘 자란 사람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4대강과 관계없는 폐수처리 전공자였다. ‘위스콘신대학 교수’라는 위광(?)이 먹혀들 것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그는 목소리에 굴곡이 없었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나직나직 말하는 우아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4대강 개발을 역설하면서 사용한 고속도로 비유는 좀 이상했다. 본류를 (운하를 파기 위해 애당초 설계했던 대로) 깊게 파면 지류의 물들이 대량으로 유입되어 강물의 유속이 빨라진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고속도로에 들어오는 차들이 고속도로 자체가 넓으면 잘 빠진다는 이치와 같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폐수처리 같은 전공을 안 해 봐 잘 모르긴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유체역학流體力學, fluid mechanics은 다르다. 단면적이 작아야 유속이 빨라진다. 그것은 내가 시골 마당에 개울물을 파이프로 끌어들여 여름철에 놀고 있는데, 그 수로를 넓히면 물의 흐름은 느려지고, 수로를 좁게 만들면 파이프에서 흘러나온 물이 명랑해지면서 빨라진다. 한갓 글쟁이일 뿐인 나도 아는 것을 그는 고속도로를 예로 들어 대중을 설득하려 했으니 물의 성질에 대해 도대체 잘못 알고 있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통 사람들이 체험에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유동학流動學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박 교수는 전화 연결된 부산가톨릭대학의 김좌관 교수에게도 씨알이 안 먹히는 가당찮은 권위를 행사했다. 김좌관 교수는 정부발표에 의하면 ‘4대강 살리기’를 마치면 안동댐에서 하구까지의 유속(체류시간)이 18일 걸린다고 했는데, 실제 8개 보를 가정해 시뮬레이션해보니 물의 체류시간이 186일 걸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서둘러 그런 공포스러운 연구결과를 발표해 시민들에게 불안감만 준 이 학자는 학자로서의 양식(자격)이 의심스럽다”고 독설을 내뱉었다. 그토록 비전투적으로 생긴 사람이 그토록 온화한 목소리로 오불관언의 권위의식을 드러내며 이 나라의 한 성실하고 용기 있는 한 학자의 학자적 소양까지 폄하하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망신당한 듯한 교수가 곧바로 대응한 말, “이런 대규모 국책사업의 결과에 대해서는 평균치를 드러낼 게 아니라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는 게 옳다고 본다”라는 말에 의해 결국 누가 망신당했는지 곧 판명되기도 했다. 김좌관 교수의 말처럼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는 태도가 나는 학자적 양심이라 생각한다.

거기까지는 좋다. 내가 정말 경악한 것은 다른 대목이었다. 민주당의원이고 전 정권에서 건설부장관까지 했던 이용섭 의원이 “4대강 죽이기로 이 지역의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죽어나갈 것입니까?”라고 탄식했다. 그러자 박재광 교수는 생태계 파괴와 관련된 비판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의자 옆에서 잽싸게 자료를 끄집어 펼쳤다. 자료 출처는 놓쳤으나, 내용인즉 댐이나 보를 설치한 후 어종(魚種)의 수가 늘었다는 자료였다. 댐이나 보에 의해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어종수 증가’라는 도표 하나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했다. 그는 줄곧 환경단체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어조를 유지했다. 반론자의 말에 박 교수는 “여기 자료가 있는데도 무슨 헛소리냐?”는 태도였다. 아주 세련되고 부드럽고 우아한 태도였지만, 나는 경악했다. 허튼소리를 밥 먹듯이 일삼고 임기웅변의 대가들인 정치가들보다 나는 위슨콘신대학의 박재광 교수 같은 이에게 더 경악했다. 아아,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무대 뒤의 전문가들 얼굴이 바로 저렇게 생겼구나. 저렇게 온순하고 우아하게 생긴 얼굴에서 저토록 비정하고 오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토해내는구나, 새삼 깨달았다.

그 순간 문득 무슨 섬광처럼 최근에 발간된 한 권의 책(이시카와 다쿠지, 『기적의 사과』, 이영미 옮김, 김영사, 2009년)이 떠올랐다. 어쩌다 그 책의 표4에 들어갈 추천문을 부탁받았기에 나는 그 책을 발간 전에 읽을 수 있었다.


신비로운 맛을 내는 특별한 사과가 열리기까지

일본에 기무라 아키노리라는 사람이 있다. 노인이다. 사과농장 주인이다. 이 노인네, 어느 날 문득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고 사과를 키워내고 싶었다. 그래서 작심한 대로 농약과 비료를 주지 않고 사과농사를 지었다. 사과가 안 열렸다. 농약 치고 화학비료 퍼붓는 이웃 과수원들은 여전히 가을이면 시장에 상품을 내놓고 잘들 살았다. 일본은 마침 전후 한국전쟁의 덕택으로 다시 부흥하기 시작할 때였다. ‘이코노믹 애니멀즈’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패전국 일본이 이번에는 경제대국으로 욱일승천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기무라 씨 집은 그러나 단지 사과밭에 농약과 비료를 안 쓰기로 작정한 결심 때문에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집안 꼬락서니는 바닥까지 내려갔다. 남들은 여전하게 살거나 더 잘 살기 시작하는데, 잘 살던 기무라 씨 집안은 몰락했다. 가족들은 극빈자 수준이 되고 말았다. 농약만 치면 다시 회복될 것을 기무라 씨는 그 간단한 일을 사절했다. 가족의 고통이 극에 달하자 기무라 씨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고집 때문이라는 것을 자책하면서 “나 하나 사라지면 끝장이다”라고 생각하고 밧줄 하나 들고 과수원에서 2시간 걸리는 깊은 산으로 들어가 목을 매려고 했다. 죽자면 목을 걸 밧줄을 튼튼한 나무에 걸쳐야 했다. 밧줄을 휙, 던졌는데 잘못 던졌다. 밧줄이 떨어진 곳에 웬 야생사과 나무가 달빛에 번쩍거렸다. 사과에 미친 기무라 씨는 죽으러 산에 올라온 사실을 잠시 잊고 밧줄이 떨어진 곳의 야생사과를 향해 달려갔다. 가보니 사과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야생과일이었다. 이 아름다운 과일은 누가 키웠을까? 사람이 농약도 안 치고, 비료도 안 주었는데, 이 깊은 산중에서 이 과일은 누가 키웠을까? 죽는 일을 뒷전으로 밀어놓은 기무라 씨는 이튿날 비닐봉지를 들고 야생과일의 흙을 담아 자신의 사과밭의 흙과 비교하면서 연구하기 시작한다. 과일만 얻어내려고 공을 들였지 나무의 뿌리가 박혀 있는 땅속 흙에 대해서는 그동안 무신경했던 기무라 씨는 크게 반성한다. 그리고 더 이상 잡초를 뽑지 않고, 사과밭을 방치하면서 가족들과 벌레만 잡아준다. 사과잎을 먹는 벌레(해충)는 초식이라 현미경으로 얼굴을 보니 온순하게 생겼지만, 사람들이 익충(益蟲)이라 여기는 무당벌레는 해충을 먹는 육식이라 표독스럽고 독하게 생겼다는 것도 알게 된다. 사람의 사람중심에서 비롯된 명명법과 자연이 그 하는 짓에 따라 허락한 생김새와의 큰 차이였다.

흙에 관심을 가진 지 수년, 마침내 9년 만에 기무라 씨 사과밭에서도 사과가 열리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건강하고 신비로운 맛을 내는 특별한 사과를 생산하는 데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흔해 빠진 성공담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의 성공이 아니라 그의 자세였다. 그는 9년여 세월 동안, 자살 직전까지 가면서 고집을 피우면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의 철학자, 문명비평가가 되어 있었다.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깨닫게 된 것이다. 사회주의자였던 스콧 니어링처럼 심각하고 어려운 말은 못하지만 시골농부 기무라 씨는 이미 이 과정을 통해 한 사람의 현자가 되어 있었다.


정말 살리려는게 국토인가, 한탕 돈벌이인가

성공하기 한 해 전, 기무라씨는 밤에 홀로 사과밭에 나가 사과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게 미안하다고 사죄의 인사를 한다. “니들이 주인을 잘못 만나 이렇게 잎이 말라 떨어지고 죽을 고생만 한다, 정말 미안하구나”라고 사죄한다. 그런데 다른 과수원의 경계에 있던 사과나무 한 이랑에는 혹 누군가 사과나무에게 말을 거는 자신을 보고 미친놈이라 비웃을까봐 사죄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안 했다. 이듬해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사죄를 한 나무들은 모두 열매를 맺어주었다. 그러나 한 줄, 사죄를 하지 않은 나무들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모조리 죽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이었다.

나무들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요령부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신비주의자는 내가 귀신만큼 멀리 하는 존재들이다.

4대강 죽이기라는 어불성설의 운하 전초작업으로 인해 이 땅에서 누천년 살아오다가 죽어갈 무수한 생명체들에 대한 우려에 대해 박재광 교수는 어떤 특별한 보 아래의 어종수가 늘어난 적이 있으므로 그 문제는 전혀 괜찮다고 일축했다. ‘박재광’이라는 공학자의 메마른 학문적 태도와 나무를 살리기 위해 여러 해 동안 고통을 준 데 대해 일일이 깊은 밤, 나무를 어루만지며 진심으로 사죄하는 기무라 씨는 어떻게 같은 사람인데도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이것은 가히 불가사의한 노릇이다.

멀쩡하게 잘 흐르고 있는데다 정비도 90% 이상 진척되어 특별히 더 살릴 이유가 없는 4대강을 돈 들여 굳이 다시 ‘살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기극이기 때문이다. 치산치수는 요순시절부터 쉽지 않은 일, 이명박 정부가 2년 안에 서둘러 꼭 수행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 더 음흉한 독선은 따로 없다. 정말 그대들이 살리려고 하는 게 국토인가, 그대들의 한탕 돈벌이인가, 국민들은 이미 모두 알고 느끼고 있다. 간곡하게 드리는 말씀인데, 그 느낌을 힘으로 묵살해 얻을 이득이 결코 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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