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6월 2009-06-01   1058

그 때 그 노래-신자유주의에 고함




신자유주의에 고함


최양현진

팝음악에 있어서 80년대는 보수화의 길로 들어서는 입구였다.

70년대 반전과 자유를 갈망하던 목소리는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거노믹스로 인해 점차 보수화의 길을 걸어갔다. 79년 5월 대처의 영국이 들어서면서 그녀가 말했던 ‘영국병’을 치유하려는 대처를 향해 분명한 시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젊은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바로 ‘Clash’였다.

“철의 여인”이란 닉네임으로 유명한 대처는 바다 건너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 표현을 빌리면 “카리굴라의 눈, 마릴린 먼로의 입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79년 5월 3일 노동당 집권의 영국에서 보수당 출신의 여성이 영국 총리로 입성했다. 만성적인 노조파업과 높은 물가, 저성장 등의 영국 사회 국민들은 ‘경제’라는 코드 앞에서 보수당의 ‘비지니스 프랜들리’에 표를 주었다.

이에 대처는 규제완화, 노조 탄압, 사회복지 예산 축소 등으로 분배보다 성장의 경제학에 몰두하고, 감세정책과 외자 유치, 금융시장 활성화, 교육의 경쟁체제 도입 등으로 표면적으로 무역수지 흑자전환이라는 성과를 올리게 된다.

또한 미국에서는 레이건이 등장하며 이러한 대처의 정책에 더욱 힘을 실어 세계경제가 무한경쟁으로 가는 신자유주의의 싹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경쟁과 성장에 몰두한 대처리즘은 부작용을 강요하게 된다.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되고 실업자는 급등하며, 그로 인한 각종 집회에 대한 경찰의 폭력은 집회 결사의 자유마저 위축시킨다.

이런 대처에 대해 Clash는 “이제 전쟁은 시작되었고 투쟁이 벌어진다. 런던은 부른다. 지하세계를. 모든 소년 소녀여 교실로부터 나와라”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the guns of Brixton’이란 곡에서는 경찰의 자메이카 흑인 집회에 대한 과잉진압에 항의하는 표시로 “법이 유린당했을 때 너흰 어찌할 것인가, 도로에서 총 맞아 죽을 건가 아니면 사형수로 대기할 것인가”라며 경찰의 폭력을 비판했다.

무한 경쟁 속에서 버려진 서민들을 향해서 그들은 “부자가 매일 매일 철야한 삶을 영위한다는 게 사실이라면 가난한 자들의 삶은 무엇인가. 난 할말이 없다. 난 깨지고 내동댕이쳐졌다. 하지만 난 쓰러지지 않는다.”라고 양극화된 삶에 대해 처절하게 외쳤다.

하지만 이들의 이러한 외침에도 대처의 영국은 11년이라는 장기 집권을 하게 되고 사회는 점차 보수화되어 갔다. 그리고 팝음악도 영미의 신자유주의 닻과 함께 점차 사회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게 됐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다.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이 남겨놓은 신자유주의의 유산이 지금 이 시대의 경제위기와 사회문제의 온상이 되었다는 것을.

2009년 오늘 이 사회는 영국의 대처가 만들어 놓은 허상을 좇아 가는 무리들에 의해 법은 사라지고 법을 빙자한 폭력만이 난무하고 있다.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미래에 대처의 잘못을 온 몸으로 노래한 Clash의 ‘London Calling’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할 때이다. 이제 런던이 아닌 서울에서 서울을 외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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