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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08월
  • 2009.08.01
  • 823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신냉전의 찬바람



글 사진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겸임교수(정치학박사)

여름철 많은 이들이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다. 『참여사회』 독자들과 함께 우리도 여행을 떠나보자. 그 여행은 타임머신을 타고 지난날로 돌아가는 상상 속의 시간여행이다. 꼭 64년 전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8월15일 민족해방의 감격이 한반도를 휩쓸었던 그 날과 마주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제국주의자들이 패하는 바람에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해방이라 하여도 이 땅의 사람들에게 8·15 그 날만큼은 감격스러운 것이었다. 우리 여행자들은 “한민족에게는 새로운 희망의 날이 기다리고 있다”고 모두들 기뻐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8·15해방’ 짧았던 감격과 기나긴 분단  암울했던 일제 식민지 억압통치의 먹구름이 걷히자, 나름대로 정치적 꿈을 지닌 이들이 저마다 무리를 지어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때를 ‘해방정국(1945-1948년)’이라 일컫는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기의 한반도를 여행한다면, 곳곳에서 좌파와 우파가 부딪쳐 피 흘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중도파(통합파)는 좌우로부터 모두 손가락질 당하고…그런 혼란의 틈새에서 살길을 찾아 약삭빠르게 움직인 무리들도 있었다. 식민지시대 내내 민족을 배반하며 자기 한 몸의 편안함을 구하던 친일파 무리들은 외국 점령군에 빌붙어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이를테면, 지난날 독립운동자들을 잡아 고문하던 악질 친일파 경찰들이 해방정국에서도 그대로 서울 치안을 맡았다.

해방정국은 안타깝게도 민족분단의 시대를 여는 서막이기도 했다. 해방 3년 뒤인 1948년 남과 북에 따로따로 정권이 들어섰고, 그 새로운 권력자들은 각기 남북의 외국 점령군에 줄을 댄 자들이었다. 백범 김구, 우사 김규식처럼, 1948년 남한만의 단독선거(5·10선거)를 반대하고 이른바 ‘남북협상’을 통한 민족통일에 온 힘을 기울였던 지사들의 정치적 입지는 매우 옹색해졌다. 이미 동서냉전의 첨예한 첫 실험장이 된 한반도는 평화적 민족통일세력이 설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리고 2년 뒤 엄청난 전쟁을 3년 동안 겪었다. 20세기 한국현대사는 따라서 갈등과 유혈의 역사라 말할 수밖에 없다. 20세기 전반기엔 일본제국주의 군홧발 아래 35년 동안 눌려 살다가 8·15 해방을 맞았으나, 20세기 후반부엔 곧 좌와 우로 나뉘어져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지내왔으니 참 서글픈 일이다.
 
훈훈함도 잠시, 다시 얼어붙는 남북관계  그래도 21세기 초 한반도엔 한때 훈훈한 바람이 불었다. 한국전쟁이 터진지 50년만인 지난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 이어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과 10·4 공동선언이 잇달아 나온 것은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숙제인 평화적 통일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었다. 이는 한반도가 냉전의 대결구도에서 벗어나 하나로 나아가는 것을 뜻했다.

그런데 이즈음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 지난날 냉전구도로 다시 후퇴하는 모습이다. 이름하여 ‘신냉전 구도’다. 이명박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김정일 정권을 자극하는 발언을 해대고, 북은 북대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써 남북한 긴장국면을 더해가는 상황이다. ‘백 투 더 퓨처’란 할리우드 영화 제목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8·15 해방정국에서 현재로 돌아온 우리 여행자들은 썰렁한 한반도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상황이 이리도 답답하게 바뀐 데는 남북 모두에 책임이 있지만, 우리가 사는 남쪽 책임도 작지 않다. 지난 7월 한국과 미국의 주요기관 컴퓨터 체계를 어지럽힌 이른바 ‘분산서비스거부’(DDoS) 사건이 벌어졌다. 하필이면 미국과 한국을 상대로 ‘사이버 테러’를 일으킨 범인이 누구냐에 커다란 관심이 모아졌다. 2001년 9·11 테러를 당한 뒤 테러라는 말만 들어도 신경이 날카롭게 반응하는 미국의 국토안전국(DHS)이나 미 중앙정보국(CIA)의 사이버 테러 전문가들조차 “범인이 누군지 아직 모른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사이버 테러의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 뒤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있는 마스터 서버가 사이버 테러공격의 진원지이고 영국 인터넷주소(IP)를 경유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 들어 신중함을 버림으로써 남북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인택 통일부장관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과 후계구도에 대해 언급한 것도 한 보기다. 현 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악화된 건강(뇌졸증) 문제 때문에 아들로의 권력 승계 절차에 박차를 가할 필요를 느꼈을 수 있다. 흥미롭게도 김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 뒤 북한이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화를 안 하겠다고 마음먹은 게 아니라면, 북한 정권 내부의 가뜩이나 예민한 사안을 건드려선 안 될 일이다. 통일부장관이 맡은 바 직분은 북한과의 대화이지 자극이나 도발이 아니다.

또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7월 폴란드에서 가졌던 한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북한에 막대한 돈을 지원했으나, 그 돈이 북한 사회의 개방을 돕는 데 사용되지 않고 핵무장하는 데 이용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근거를 내놓지는 않고 ‘의혹제기’에 머물렀다. 북한 김정일 정권은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남북화해정책을 싸잡아 공개 비판하는 그런 발언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남북관계가 악화된 책임을 다른 곳에 떠넘기려는 정치적 공세인가, 아니면 여름 장마와 불더위로 가뜩이나 불쾌지수가 높은 터에 신냉전의 찬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식혀보려는 뜻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남북관계를 더 냉각시키는 것이 이 땅의 보수기득권층을 즐겁게 하고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이로울 것이라 판단했을까. 그런 답답한 판에 북한은 북한대로 핵실험에 미사일 발사실험을 거듭해 긴장을 더하는 상황이다. 해방정국에서 민족분단을 막고자 온 힘을 기울였던 백범 김구와 우사 김규식, 그리고 바로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난 ‘바보 노무현’이 더욱 그리워
지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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