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3월 2009-03-01   2402

김재명의 평화이야기_호메이니 혁명 30년, 이란에 평화 올 것인가

테헤란 아자드 광장에서 열린 이슬람 혁명 30주년 기념식. 1989년 사망한 혁명 지도자 호메이니의 초상화가 눈길을 끈다.




호메이니 혁명 30년,
이란에 평화 올 것인가




글 사진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겸임교수


세계 석유 매장량 2위의 석유대국이자 7,200만 인구를 지닌 중동의 군사강국 이란이 지난 2월 10일로 혁명 30주년을 맞았다. 테헤란 거리로 나서보니, 혁명을 기념하는 깃발과 대형 입간판으로 가득하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란은 1979년 2월 이란 시아파 성직자 아야톨라 호메이니(1902∼1989년)를 지도자로 한 이슬람 혁명을 성공시킴으로써, 이란 샤 왕조의 마지막 왕인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1919∼1980년)가 권좌에서 물러났고 공화국이 됐다. 1979년의 혁명은 인류 혁명사에서 프랑스혁명(1789년), 볼세비키혁명(1918년)과 더불어 커다란 비중을 지닌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다수 민중의 이익보다는 외국세력에 빌붙어 자신들의 배만 불리던 친미 독재정권을 무너뜨려 중동의 정치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이란의 미국으로의 석유수출 중단에서 비롯된 제2차 석유파동이란 거센 파도를 일으켰다. (그 불똥에 한국도 1980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몸살을 앓아야 했다. 초강대국 미국의 대외정책이 올곧아야 지구촌 평화와 안정이 온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다).


이란의 반미-바이스라엘 정서는 매우 높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침공을 비난하는 포스터.


이란 반미감정의 뿌리


일반적으로 30년이 흐르는 기간을 “한 세대가 지났다”고 일컫는다. 이란 시아파 종교지도자의 이름을 딴 이른바 ‘호메이니 혁명’을 온몸으로 기억하는 이란 사람들은 이제 절반도 되지 못한다. 이란 신세대들은 교과서와 기록필름을 통해서 혁명을 이해할 뿐이다. 그럼에도 테헤란 거리의 젊은이들은 혁명이 지닌 정치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수십 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몰려든 가운데 테헤란 ‘아자디(자유) 광장’에서 열린 혁명 기념식은 젊은이들의 열기로 그득했다. 테헤란 대학 공학부에 다니는 여대생 사바르 가르비는 이렇게 말했다. “이란의 자원인 석유를 훔쳐 가던 외세(미국과 영국)와 비밀경찰(사바크)의 힘을 빌려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팔레비 왕의 독재로 말미암아 우리의 부모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민주 독립국가의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지니게 되었다.”


2년 전 테헤란에 갔을 때 그곳의 반미 감정이 생각보다 높은 데 놀랐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란의 반미감정에는 역사적 앙금이 깔려 있다. 1953년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은 이란의 진보적 민족주의자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는 그때껏 이란 석유를 약탈해가던 영국으로부터 석유이권을 되찾아 국유화하려 했다. 이란 국민들은 모사데크 총리를 열렬히 지지했다. 다수 민중의 이익은 소수 특권 지배층의 이익과는 늘 충돌하게 마련인가. 석유 국유화에 반대하던 국왕 팔레비가 모사데크 총리와의 정치적 갈등 끝에 이탈리아 로마로 망명을 떠나자마자, 미 중앙정보부(CIA)가 은밀하게 움직인 끝에 이란 군부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팔레비 왕은 다시 테헤란으로 돌아왔고 그 뒤로 무려 26년 동안 이란의 석유이권은 미국 40%, 영국 40%, 팔레비 왕조 20%로 나누어졌다.


1979년 혁명으로 석유이권을 빼앗긴 미국은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끊고 30년 동안 경제제재를 가하는 등 적대적 관계를 이어왔다. 미국은 북한-이라크와 더불어 이란을 ‘악의 축’이라 손가락질해왔다. 미국뿐 아니다. 이란은 중동의 친미국가인 이스라엘, 이집트와도 아직껏 외교관계를 맺지 않은 상태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이 앞으로 핵무기를 개발함으로써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테헤란 베헤시트-에 자흐라 묘소에는 1979년 이슬람혁명 때 죽은 이들이 이란-이라크전쟁(1980-88년) 당시 전사자들과 함께 묻혀 있다.

“미국이 먼저 사과해야”


테헤란 현지에서 들은 젊은이들의 얘기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우리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할 이유가 뭐냐. 우리도 핵 강국이 돼 미국에 맞섰으면 좋겠다”는 얘기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을 봐라. 핵무기를 갖고 있지만 써먹지도 못하고 욕만 먹지 않느냐. 이란은 핵무기를 가져선 안 된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 사실을 좋게 보는 젊은이는 만나지 못했다. 테헤란대 학생 하비브 파즐리(정치학과 박사과정)는 “이란은 오래 전부터 중동비핵화, 다시 말해서 중동지역에서 핵무기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걱정일랑은 하지 말고 자기들이 갖고 있는 엄청난 양의 핵무기나 하루 빨리 폐기해야 한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핵개발 의혹과 관련해 이란이 내놓는 대답은 ‘평화적 핵에너지 개발론’이다. 국제문제를 다루는 테헤란 전략조사센터(CSR)의 아미르 자미니니아 부소장의 설명은 이렇다. “우리 이란 땅에 석유가 많이 묻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석유는 유한한 자원이라서 21세기 안에 바닥이 난다. 그렇다면 다른 대체 에너지를 개발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원자력 에너지 말고는 마땅한 대안이 없어 원자력발전소를 세우려는 것뿐이다”라며 이란이 핵무기를 가지려 한다는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흑색선전이라는 주장을 한다.


미국과의 갈등 속에서도 이란은 미국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바라고 있다. 그럼으로써 지난 30년 동안 미국이 이란에 가해온 경제제재를 비롯해 여러 불이익을 떨쳐내려는 희망을 품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란은 북한과 닮았다. 이란은 버락 오바마 미 새 대통령의 등장으로 미국과의 대화길이 트이길 바라고 있다.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도 혁명 30주년 기념식장에서 “우리 이란은 미국의 새로운 정부와 대화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적지않은 이란 사람들은 “미국이 지난날 이란에 대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먼저 사과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뿌리는 앞서 살펴보았듯 1953년 미국 정보기관원들의 쿠데타 개입과 석유자원 착취 그리고 혁명 뒤의 경제제재다. 문제는 일본이 지난날 한국에 대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진정성 담긴 사과를 요리조리 피해왔듯이, 미국도 이란과 얽힌 과거사에 대해 이렇다 할 사과가 없는 상태다. 세계 제2의 석유대국 이란의 평화는 중동평화, 나아가 우리 한국이 절실하게 바라는 유가안정과 맞물린다. 이란에 평화와 안정이 깃들길 바라며 테헤란 공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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