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7월 2009-07-01   2185

[인터뷰]“기본권 침해하는건 법도 법치도 아니다” 김형태 변호사

참여사회 7월호 <이제훈이 만난 사람>



“기본권 침해하는건 법도 법치도 아니다


김형태 변호사



글    이제훈 <한겨레신문> 통일외교팀장
사진 김영광 사진가


김형태(53). 그의 직업은 변호사다. 그것도 아주 유명한 인권 변호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창립 멤버다. 1980~90년대 주요 시국사건의 변론을 맡았다. 리영희, 송두율 등 당대의 지성이 국가보안법의 칼날 위에 섰을 때, 그는 법률대리인 자격으로 그들과 함께 했다. 울산보도연맹 유가족의 권리 회복을 위한 법정 투쟁 때도 변호사로 함께 했다. 숱한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 때 그는 변호사로서 인권과 양심, 민주주의를 지키려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가 이번엔 이른바 ‘피디수첩 사건’으로 다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최전선에 섰다. 공영방송 시사프로그램의 정부 정책 비판에 대해, 대한민국 농림식품부 장관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소송을 건 어처구니없는 사건의 피고인 피디수첩 쪽의 법률 대리인을 맡고 나섰기 때문이다.
‘변호사 김형태’가 법정에서 얼마나 잘 싸우느냐에 따라 한국 민주주의의 폭과 깊이가 달라질 수 있다. 그의 건투를 빌겸 해서, 6월 25일 낮 서울 강남구 역삼동 법무법인 덕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따라서 이번 인터뷰는 ‘피디수첩 문제’로 시작한다.



과거 판결 반성한다면서 똑같은 잘못 되풀이 해


피디수첩 관련 소송의 구체적 쟁점에 대해선 따로 묻지 않겠다. 다만 이 사건의 법적 의미, 사회적 의미, 역사적 의미는 한번 짚어주시면 고맙겠다.

법적 측면에서 보면, 명예훼손죄라는 게 반의사 불벌죄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가벌성이 약한 범죄다. 보통 범죄는 피해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국가가 처벌한다. 명예훼손죄는 세계적으로 정치적 영역에서는 거의 사문화됐다. 피디수첩은 정부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지극히 사적인 법익을 보호하는 조항으로 피디수첩을 걸었다. 이런 일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심지어 박정희 정권 때도 명예훼손으로 걸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번 사건은 국가, 구체적으로는 정부가 공적 언론의 자유, 국민의 알권리,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회적으로 보면, 민주주의가 많이 진전됐다고 생각했지만,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보도까지 통제하려 드니…. 민주주의의 토대가 알권리다. 국민들이 많은 정보를 잘 아는 게 중요하다. 국민들이 정보 부족으로 정부 정책을 판단할 수 없으면 민주주의가 잘 될 수 없다. 이건 민주주의의 토대를 뒤흔들고 있는 사건이다. 단순히 방송사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 측면에서 보면, 법원이 과거사를 정리한다면서 1970, 80년대 잘못된 판결에 대해 반성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과거 판결이 잘못됐다고 반성한다면서, 지금 똑같은 일을 법원과 검찰이 저지르고 있다. 검찰은 말할 것도 없고 법원도 미네르바에 영장을 발부했고, 피디수첩에 대해서도 영장 발부하고 체포 압수할 수 있게 했다. 그러고 나서 또 앞으로 10~20년 지나고 나면 그때 가서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할 것인지…….



특정계급 이익 대변하는 법으로 전락


대한민국 검찰이 만인의 공적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판사들은 내부 문제제기도 하고 그러던데, 검찰은 왜 내부 문제제기나 이견이 밖으로 표출되지 않나?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법관 독립은 헌법에 보장돼 있다. 개개 법관이 독립된 국가기관이다. 그런데 검찰은 군대 비슷하게 하나의 조직으로 묶여 있어, 독립된 개인이라는 생각이 없는 듯하다. 검찰은 군대식으로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 같다. 검사동일체도 폐지했는데 부활시킨다고 하더라.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좬참여사회좭 인터뷰에서 자주 던지게 되는 질문인데, ‘법치’란 무엇인가? 법조인이 구현하려고 애써야 하는 정의란 또 어떤 것이어야 하나?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법치란 형식적 의미의 법률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질서’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법치의 실질적 의미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법치는 민주주의 민주공화국 등과 함께 우리 헌법의 몇 안 되는 중요한 원리다. 법의 지배란 개인이 자의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이든 검찰총장이든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집회를 막으려는 게 아니다. 그런데 요즘은 경찰청장 마음대로 집회를 불허한다. 사실상 허가제다. 이게 법치를 깨는 것이다. 현행 집시법은 야간 집회를 금지하고 있지만, 이는 헌법이 보장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은 법도 아니고 법치도 아니다. 법치가 아닌 법의 남용일 뿐이다. 동양적 의미로 말하자면, 법치는 준법질서가 아니라 국민을 받드는 덕치(德治)다. 법치는 질서와 상관이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세워야 할 정의란 국민 대다수 서민 대중과 약자, 차별받는 이들의 이익이다.


법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한다.

옛날 같으면 국가가 못사는 사람 도와주는 건 시혜지만, 지금은 국민의 권리다. 권리와 법이라는 게 추상적이지만, 모순이 발전해가면서 귀족의 도구, 자본가의 도구, 서민 대중의 도구로까지 발전해온 게 현재의 법이다. 처음엔 귀족들이 왕에, 그다음엔 시민계급이 귀족에, 그리고 노동자들이 자본가계급에 대항하려는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민주주의란 서민 대중에 의한 지배이고, 그걸 보장해주는 게 법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선 법이 자본과 권력에 봉사하는 법으로 흐르고 있다. 미디어 관련법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몇 년간 유예하겠다는 것 등 민주주의와 상관없는 특정계급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법으로 전락하고 있다. 법이 민주주의의 도구가 아니라 민주주의 억압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답답한 현실이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튼튼하지 못해 바람을 탄다


이명박 정부 출범 전엔 많은 이들이 적어도 형식적 측면의 민주주의는 정착단계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적잖은 시민들도 최근 상황을 보며 당혹해하고 황당해 하는 것 같다. 왜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보나?

개인적으로는 역사나 정권이라는 게 진보와 보수를 왔다 갔다 하며 발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한번쯤은 보수가 잡아서 보수의 장점을 살릴 계기가 있으면 나름 의미가 있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과연 그런가? 지금 상황은 보수의 본래적 의미를 잃었다. 보수는 형식적 민주주의 절차는 지킨다. 그 다음에 진보 보수 얘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형식적 민주주의 자체를 무너뜨리니. 우리나라가 아직은 포스트모던이나 진보 보수를 얘기하기엔 이른 듯하다. 근대가 쟁취되지 않았다. 아직도 합리와 비합리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몰상식과 비이성에 맞서야 하는 과제가 있다.

왜 그런가? 우리의 민주주의가 평범한 사람들의 풀뿌리 민주주의에 밑받침 돼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바람을 탄다는 옛말도 있지만, 운동도 바람을 타는 것 같다. 뉴타운 반대로 갔다가, 4대강 대운하 반대로 갔다가…. 뿌리가 튼튼하지 못해 바람을 타는 것이다. 북유럽은 마을 단위부터 민주주의가 철저하게 훈련돼 있다. 그래서 누가 집권해도 돌이길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입으로는 뭐라고 하는데, 자기한테 이익이 되는 게 뭔지 잘 모르고, 투표도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강북 지역은 투표율이 10%를 조금 넘었고, 강남은 나머지 지역의 차이를 뒤엎을 정도로 투표를 많이 했다. 자립형사립고가 많아지면 공립학교는, 심하게 말하면 거지 학교가 된다. 가난이 대물림 되는 것이다. 공립학교 교사들의 걱정이 엄청 크다. 선거 때 자립형사립고 반대하는 사람을 찍어야 하는데 그걸 모른다. 투표하지 않는다. 밑바탕부터 성숙되지 않았다. 정말로 밑에서,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게 될 것이다.



양극화 심해졌는데 자식 공부 잘 시키면 신분상승하나


언젠가 칼럼에서 “고양이 걱정하는 쥐”라는 표현을 쓰셨다. 자기 집이 없는데 종합부동산세 폐지를 주장하고, 자식한테 물려줄 재산도 없는 사람들이 상속세, 증여세를 줄이는데 찬성하는 이들이 많다.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반하는 이런 행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나?

크게 둘로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유교적 전통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둘째,  풀뿌리 민주주의의 경험이 부족하고, 이해관계를 따지는 훈련이 돼 있지 않다. 유교 문화에선 가난한 선비도 글을 읽어서 과거급제하면 대대손손 먹고 사는 게 해결된다. 이런 유교 문화의 작용 탓인지 경제력의 기본 토대에 기반을 둔 사고가 나오지 않고, 노동자나 하층계급이라도 상층계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양극화가 심해졌는데, 아직도 자식 공부 열심히 시키면 가족이 다 신분상승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상류계급이라고 여긴다. 한마디로 계급의식이 없다.
 


수없이 따졌는데도 말 안되는 판결 나오면 허탈


변호사라는 직업이 좋을 때와 싫을 때는 언제인가?

괜히 변호사가 됐다 싶을 때는 이를테면 ‘피디수첩 사건’ 같은 경우다. <문화방송> 피디수첩의 광우병 관련 보도에 대해 법원에서 정정보도를 하라는 판결이 나왔는데, 말이 되지 않는다. 내가 판사라면 당연히 피디수첩이 이겨야 한다. 워낙 법 이외의 논리, 정치적 판단이 강하게 작용하니….
그런데 변호사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게 아니라, 법을 수없이 들이대고 잘못됐다고 따져도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런 판결을 받으면 허탈하고, 괜히 변호사 했다 싶을 때가 있다. 피디수첩 보도 관련해 형사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는데, 벌써부터 답답하다. 물론 변호사 노릇하는 게 보람이 있을 때도 있다. ‘울산보도연맹 사건’ 같은 경우다(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9부는 2009년 2월 10일 ‘울산 보도연맹사건 유족회’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가족 508명에게 모두 200억여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국가와 유족회 모두 항소해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김 변호사는 이 재판에서 ‘유족회 쪽의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다).

요즘은 울산 말고 다른 지역도 다니며 보도연맹 관련자 유가족들을 만나는데, 아직도 무서워한다. 60년이나 억눌려 지낸 분들인데, 아직도 빨갱이 가족이라고 핍박받을까봐 겁을 내신다. 그분들한테 ‘무서워하실 것 없습니다. 국가에 배상을 요구하는 건 여러분들의 권리입니다’라고 말씀드리면 굉장히 좋아하신다. 그럴 때 참 뿌듯하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죽은 분들이 돌아오시진 못하지만, 만약 살아계신다면 나한테 굉장히 고마워할 것이다(김 변호사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 유족회’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내는 데 법률 대리인으로 활동했고, 유족들이 배상금을 출연해 만든 4·9통일평화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다). 물론 재판에서 국가배상판결을 이끌어낸 근본적 힘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장이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매개 역할은 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이도행 씨도 1997년 사형이 무더기로 집행됐을 때 함께 죽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살아서 의사 노릇 잘하고 있는데, 나 스스로한테 칭찬해주고 싶다(김 변호사는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기소된 뒤 1·2·3심을 오가며 사형과 무죄 선고를 번갈아 받았던 이도행 씨 사건을 맡아 사건 발생 8년 만인 2003년 2월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아냈다).


대부분 초심 잃고 약자 짓밟는 게 안타까워


끝으로 법을 공부하는 젊은이들한테 한마디 해주시면 고맙겠다.

법은 지금까지 빵, 명예, 권력을 다 줬다. 앞으로도 로스쿨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빵, 명예, 권력을 다 손에 쥘 수도 있다.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런 것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다수다. 나도 그런 성향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고. 입으로는 정의, 약자를 이야기 하지만, 조금 지나면 법치주의의 진정한 법이 아니라 기득권을 보장하는 법질서만 쫓아가게 된다. 대부분이 초심을 잃고 약자를 짓밟게 된다. 내 동창 중에도 전설적으로 공부 잘하고 똑똑한 친구들이 많다. 그런데 돈 많은 사람과 권력자의 부속품, 하수인 노릇을 하는 이들이 많다. 안타깝지만, 대개는 그렇게 간다.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스스로 자기 위치를 만들어가야 한다. 


김형태는,
1956년 12월 서울에서 났다. 그 시절 동대문 이대부속병원에서 세상을 처음 구경했으니, 가난하진 않았을 게다.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남대문중학교와 경동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법학과를 나왔다. 1981년 사시 23회로 합격해 육군 법무관을 거쳐 1986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1988년 5월28일 창립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창립 멤버로 첫 홍보간사 노릇을 했다. 한국사회의 인권 보호 및 인권 신장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직함을 얻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인권위원장을 오래도록 맡았다. 사형제 폐지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도 천주교사형제도폐지운영위원장(정식 명칭은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산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종교간 평화와 통합을 추구하는 격월간 <공동선>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술 마시기 좋아하고 사람 만나기 좋아한다. 돈 많고 권력 있고 명예를 거머쥔 사람보다는 누구나 거리에서 일상에서 만날 법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 산으로 절로 바다로, 산천을 싸돌아다니는 걸 즐긴다. 관직엔 관심 없다. 변호사 노릇 그만두면 풀뿌리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싶고, 역사와 철학과 종교의 근본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고픈 꿈이 있다. 속세의 삶과 도가 어떻게 다르고 같은 지를 탐구하는 게 평생의 화두다. 불교식으로 하자면,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다. 당연히 ‘도’와 ‘속세의 삶’에 경계선을 치고 분리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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