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2월 2009-02-01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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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눈, 함께 소통하다



김현정
자원활동가

우리는 세 개의 눈을 갖고 있다. 자신의 바로 앞에 놓인 공간에 속하는 것들을 바라보는 눈, 나와 연결되어 있는 이들의 마음을 보는 눈 그리고 모두가 속한 세상과의 진실한 소통을 위한 눈. 잠시 잊고 있었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그건 정말 잠시 잊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본디 그 3개의 눈은 나이, 성별, 국가, 인종 따윈 안중에도 없다. 보고 보며 보다가 그저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나와 다르다는 것. 그건 내가 보는 수많은 것 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더 낮은 세상을 함께 상상하는 3명과의 만남은 그 세 개의 눈을 완성하기 위해 시작된 듯하다. 자신을 보고, 타인을 보고, 세상을 봄으로써 다름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 우린 그렇게 성장한다.


자신 바라보기

왠지 야무져 보이는 인상의 김진혁 피디. 자신이 담당했던 프로그램 <지식채널 e>와 함께 말문을 연다. 그가 말하는 상상은 ‘이야기하기’이다.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열려 있어야 한다. 그 자신에게 열려 있지 않으며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어떠한 이야기도 할 수 없다.

“어떤 주제를 갖고 무작정 써라.” 설령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그 자신은 분명 존재한다. ‘우리는 쓸 것이 없어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표현할 능력이 안 되서’와 같이 ‘쓸 수 없는’ 이유를 백 가지쯤은 갖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최소한 자신의 이야기 정도에는 귀 기울여 볼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강연이 끝난 후의 그의 뒷모습을 더욱 뚜렷하게 기억한다. 누군가에겐 귀가시간일 무렵, 그는 또 다른 작업을 하기 위해 다시 근무지로 돌아가야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길에 잊지 않고 강연 도중 했던 약속을 위해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건다. 그의 사인을 받기 위해 책을 건네는 이에게 다정한 한마디를 남겨준다. 질문 하나에도 정성스레 답을 건넨다. 그리고 사람들은 감사를 전하고 감동을 느끼며 조금씩 자신을 내비치려 한다. 그렇게 그의 ‘이야기하기’는 쉬지 않고 계속 된다.



타인 바라보기


까칠했다. 솔직히 독특한 머리스타일과 넘쳐흐르는 김강 예술가의 포스는 참으로 강했다. 하지만 난 그에게 완전 반할 수밖에 없었다. 어눌한 말투로 어찌 그리 보석 같은 말들을 내뱉는지 말이다.

“세상의 일에 대한 관심을 갖기 전에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것에 저항하라.”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같이 낮기 때문에 함께 연대하는 것뿐이다.”

그는 어쩌면 ‘다름’이라는 주제에 관한 한 ‘정석’ 그대로 일지도 모르겠다. 전혀 그 성격을 달리하는 집단 사이에서, 회피나 전쟁, 비꼼이 아닌 소통을 택한다.

문래동은 가난한 예술인들을 위한 보금자리로 시작했다. 전혀 ‘예술적’ 공간과는 거리가 먼 차가운 도시 사이에서 조심스레 둥지를 틀었다. 자신들을 몰아세운 단단한 벽과 냉정한 시선의 현실에 대해서 미워할 법도 한데 그런 것 따윈 안중에도 없다. 자신들의 행위와 소유물을 그들만의 전유물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예술을 할 뿐이다. 그 순수한 추구는 사람들을 멈춰 서게 만들었다.

타인을 보는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 단지 ‘정답’같은 방법론만이 도처에 깔려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중 ‘문래동 예술가’들의 방식을 한 번쯤은 택해봐도 좋지 않을까? 억지스럽게 관계 맺지 않고 숨기거나 감추지 않으며 다름에 대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예술적’ 소통의 방식으로.



세상 바라보기


이제껏 강연을 다니면서 강연자의 이름에 ‘학생’이라고 쓰인 것을 본 건 처음이었다. 그러고보면 나도 어느새 꽉 막혀버린 어른들처럼 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학생’이라는 단어에 왠지 모를 선입견이 생기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의 강연을 듣고 난 뒤에 난 감히 말할 수 있다. “나이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건 아니다.”

‘비정규직’이라는 고질병을 가진 대한민국에 이렇게 모두가 함께 살고 있음에도 우리는 간혹 다른 풍경처럼 느끼고 있다. 그에 속한 사람들마저도. 김세현은 그런 우리네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거창하고 화려한 수식어구들을 섞지 않아도 그 이야기는 너무나도 가슴을 아련하게 만든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가 살고 있는 사회, 그가 속한 학교, 사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의 세상이며 우리의 세상인 이 곳은 언제나 약자가 존재했고 그들은 끊임없이 고통 받았다. 다만 그런 삶들은 자신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믿고 싶었던 것뿐이다. 혹은 무관심하거나.

당신의 새벽은 어떠한가? 아침형 인간을 외치며 부스스한 모습으로 도서관을 향할 수도, 여전히 따뜻한 이불 속에서 헤맬 수도, 여태 잠을 자지 않은 채 왕성한 활동 중일 수도. 그리고 꿈도 목적도 잃은 채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북적대는 새벽버스에 몸을 맡길 수도 있다. 새벽은 언제나 아무 말을 하지 않지만 사회적 약자에겐 더욱 침묵한다.

그런 그들이 이젠 꿈을 꾼다. 목적의 방향을 찾기도 한다. 언제나 변함없이 새벽버스에 몸을 싣지만 웃을 수 있다. 그 이유는 김세현 학생이 모두가 듣지 않으려고 했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 마리의 나비가 되었다. 그리고 날갯짓을 했다. 처음의 파닥거림은 한 마리 나비의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나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날갯짓이 곧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되리라는 것을. 난 그 날 이후 학교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께 초코파이를 살며시 건네주었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웃어주셨고, 나는 항상 감사하다고 전했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 주위에 모든 것들은 전부 얼어버릴 듯이 차가웠고 사람과 지하철, 건물, 나무들은 각자가 그 추위를 덮어버리려고 했다. 그리고 이후 10시가 훌쩍 넘어버린 시간, 밖은 어둠과 함께 더 거센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춥진 않았다. 나는 비로소 세 개의 눈과 함께 소통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지하철, 건물, 나무 그 어느 것 하나 혼자인 것이 없었다. 자신을 보고, 타인을 보고, 그렇게 세상을 바라본다. 아직은 서툴고 낯설지만  ‘세 개의 눈’을 통한 ‘더 낮은 세상을 위한 상상’은 혼자가 아닌 모두와 함께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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