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10월 2009-10-01   1090

최성각의 독서잡설_우리는 70년 전보다 더 행복한가



우리는 70년 전보다 더 행복한가


이태준의 단편소설 「밤길」


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내가 이태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내 나이 20대, 연도로는 대충 70년대 중반이었다. 그의 이름은 대명천지에 소리 내 크게 발음하면 안 되는 것으로 다가왔다. 내게 그 작가를 알려준 친구의 표정 속에는 “넌 소설지망생이라는 녀석이 아직 이태준을 모르고 있었단 말이냐?”라는 부드러운 우월감도 담겨 있었지만, 그만큼이나 그의 이름을 발화하는 일의 짜릿한 당대적 불안도 배어 있었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태준은 월북 작가였고, 때는 바야흐로 ‘70년대’였던 것이다.


바야흐로 70년대, 이름조차 꺼내기 불안했던 월북 작가

이태준은 누구인가? 30년대 이 나라 문학판에 혜성처럼 나타난 뛰어난 소설가다. 장편도 적잖이 썼지만, 무엇보다도 단편미학의 절정을 보여준 작가였다. 지금은 중고등학생도 그의 작품을 학교에서 배우고 있어 아무렇지도 않은 작가가 되어버렸지만, 당시만 해도 문학을 가르치는 대학에서조차 ‘월북 작가’라 분류되는 고약한 무리들이 있다는 것쯤은 풀면 안 되는 암호처럼 넌지시 알려주었으나, 그 면면에 대해 자세히 말하려고 하지 않는 눈치였다.

“이태준이 누군데?”

내가 물었다.

“그를 빼고 한국의 근현대소설을 이야기하면 안 돼. 지금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국문학사는 다 엉터리야. 중요한 반쪽이 다 빠졌어.”

친구가 말했다. 안암동에서 대학을 다니던 친구 역시 문학도였다.

“무슨 소리야?”

내가 모르고 있는 작가를 알고 있는 그로 인해 ‘존심’이 상당히 상했지만,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므로,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월북 작가야.”

“끄음!”

나 역시 70년대의 한 청년으로서 시대의 어둡고 고약한 공기에서 자유로울 재간이 없었기에 ‘월북 작가’라는 한마디에 벌에 쏘인 듯, 얌전히 입을 다물 도리밖에 없었다. 그 순간, 작품이라도 한 편 읽을 수는 없을까, 하는 세찬 욕망이 일었다.

“작품은 볼 수 있는가?”

“당연히 못 보지. 출판하면 잡혀가 얻어맞거나 간첩이 되는 수도 있는데, 누가 출판하겠어.”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70년대에는 무슨 이야기든 그것이 당대를 지배하던 독재자와 상관없는 이야기일지라도, 말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아야 했다. 하물며 문학청년들이 ‘월북 작가’ 중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말하면서 주변을 살피는 그런 몸짓은 당시 청년들, 지식인들, 누구에게나 몸에 밴 지나친 자기검열, 혹은 과잉된 방어의 몸짓이었다. 그것은 우울한 노릇이면서 한편 그럼에도 우리는 끝없이 떠들 것이라는 반권력적 쾌감도 수반되는 일이기도 했다. 70년대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엄연했던 쓰라린 기억을 아무리 소상하게 말해도 이해하고 납득할 재간이 없을 것이다. 젊은이 대여섯 명이 모여도 그것을 코에 걸고, 귀에 걸어 긴급조치 위반법으로 걸라치면, 걸릴 수도 있었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도 지상에서 없애치우고 싶을 만큼 불편해했지만, 연설 잘 하는 김대중도 눈엣가시였지만, 가장 두려워했던 대상이 ‘공부하는 젊은이들’이었다. 조국근대화의 벅찬 사명을 혼자만 떠맡기 버거워 다음 세대들에게 강제로 ‘국민교육헌장’을 외게 했던 일국의 지도자는 미래의 동량인 일국의 젊은이들을 내심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이다. 참으로 자가당착적이고, 희극적이면서, 그래서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으음, 그런데, 이태준의 단편을 딱 한 편은 볼 수 있지.”
 
한참 있다가 친구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말했다. 선심의 낯빛이었다.

당시만 해도 불타는 지식욕에 온몸이 부서지는 줄 몰랐던 20대의 문학청년은 갑자기 벼랑에서 밧줄을 잡게 된 환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 어떻게?”

“우리 대학에 정한숙 교수가 계시는데, 그분도 소설가다. 그런데 그 양반이 최근 고대출판부에서 펴낸 『소설기술론』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에 이태준의 단편이 한 편, 실려 있지.”

“퍼시라보크의 『소설기술론』 말고 우리나라 사람이 쓴 그런 책도 있어?”

“그렇다니까.”

“그래, 제목이 뭔데?”

“「밤길」이야.”

“밤길?” 

“응. 밤길! 그런데 이태준은 ‘이빵준(이○준)’으로 표기되어 있어. 본명을 밝히면 책을 못 냈을 거야. 문학사에도 30년대 문학란에 보면 다 그렇게 적혀 있어. 그러니 이빵준을 이태준으로 알고, 책 끝자락에서 「밤길」을 찾아보면 돼.”

“고맙다. 오늘 답례로 자네가 혹시 모르는 작가들을 나도 나중에 알려줄게. 이를테면 아라발이라든가, 페터 한트케라든가, 장 쥬네라든가, 카아슨 메컬리즈라든가, 우베 욘손이라든가, 나보코보라든가 등등, 말이네.”

이태준 때문에 꾸겨진 ‘존심’을 단지 대충 훑어봤을 뿐 깊은 이해에 다다르지도 못한 외국작가들의 이름을 열렬하게 나열하는 것으로 메꾸자니 더욱 존심이 상했던 기억이 난다.
빨리 지나가고 싶었던 내 20대여, 다시는 오지 말아라.


30년대 서민 무지랭이들의 절망적 삶


「밤길」을 나는 친구가 가르쳐준 정한숙의 『소설기술론』(고대출판부, 1975년도판)을 통해 보았다. 역시 친구의 말대로 ‘이태준’은 ‘이○준’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이빵준, 이영준, 혹은 이공준!
알려하지 말고, 읽지 말라는 것을 애써 찾아 읽을 때 왜 그리도 감미롭던지.

곰곰 생각해보니 이태준의 「밤길」보다 더 감미롭게 읽었던 단편소설이 또 어떤 게 있었던가 싶다. 공공연한 출판물이었건만, 길지도 않은 그 작품을 나는 마치 금기를 어기는 설레임과 긴장감 속에서 탐독했다.

숨죽여 단숨에 읽고 나서 나는 고개를 쳐들면서 허공에 대고, “슬프고, 아름답구나”,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

1940년 <문장>지에 발표된 단편소설 「밤길」은 달을 다룬 그의 또 다른 수작, 「달밤」과 달리 비극적이고, 1930년대 이 땅의 엄혹한 현실을 견뎌내야 했던 서민 무지랭이들의 절망적 상황을 다룬 소설이었다.

작가 특유의 현실에 대한 깊은 비판정신을 견지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다르지 않지만, 그 분위기에서 「달밤」이 애수와 짙은 서정성을 담고 있다면, 「밤길」은 부정적인 현실이 비유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단돈 몇 푼이라도 벌기 위해 주인공 황서방은 월미도의 집 짓는 공사장에서 ‘모군募軍’으로 나가 있다. 모군이란 목수도 아니고, 미장이도 아닌, 그 아래의 품팔이 막일꾼이다. 수표다리께 남의 집 행랑살이하는 황서방에게는 아내와 두 딸, 그리고 백일이 조금 지난 아들이 있다. 늦게 얻은 아들 때문에 황서방은 돈 십 원이라도 만들어 가을부터는 군밤장수라도 해보려는 게 애오라지 삶의 목적이다. 인천 월미도의 집공사에 모군꾼으로 온 것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비가 그치지를 않는다. 같은 막일꾼 홀애비 권서방과 깊은 밤, 사는 얘기들을 하고 있는데 문득 방 밖에서 지우산 소리가 난다. 누군가 문을 열었더니 서울 행랑살이하는 집주인이다. 주인은 ‘파나마에 금테 안경을 쓴, 시뿌옇게 살진 양복쟁이’인데, 황서방을 보자마자 귀쌈을 올려붙인다. 황서방의 마누라가 아홉 살짜리, 여섯 살짜리 두 딸과 백일 된 젖먹이 아들을 버리고 도망을 쳤단다. ‘개돼지만도 못한 것들’에 대한 치솟는 불만도 불만이지만, 어린애 송장까지 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주인은 마침 집에 온 황서방의 편지를 통해 주소를 알아내 비오는 날, 월미도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지랄을 뻗던 금테안경은 떠나가고, 딸자식 둘과 어린애를 받아 안았더니 젖도 못 먹고 방치되어 있던 어린애는 거의 죽어가고 있다. 권서방 역시 “거, 살긴 틀렸나 부!”, 하면서도 “그래두, 거 의원을 좀 봬야지 않어?”라고 권한다. 권서방의 권유에 못이겨 황서방은 죽어가는 애를 안고 병원을 찾는다. ‘월미도 쪽이 더 새까매지더니 바람까지 치며 빗발이 굵어진다’. 그러나 어떤 병원은 의사가 왕진갔다고 받지 않고, 어떤 병원은 소아과가 아니라고 받지 않고, 네 번째 찾아간 병원에서야 간신히 진찰을 받는다. 간호부는 안 되겠다고 ‘그냥 안고 나가라’고 한다. 약이라도 달라고 부탁해봤건만, 간호부는 “왜 진작 안 데리구 오냐 말요?”, 하면서 약도 소용없다고 한다.


슬프고 아름답구나

그 다음부터 소설은 친구 권서방과 같이 비오는 밤길을 헤쳐 죽어가는 어린애를 파묻으러 가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이 가히 처절의 극이다. 빗속에서 가마니에 눕혀져 있던 어린 것은 무능하고 한심한 애비와 애비 친구가 자신을 파묻을 구덩이를 파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기척을 낸다. 권서방이 자꾸만 물이 고여 간신히 파놓은 구덩이에 친구의 애를 파묻으려고 시체를 안으러 갔더니 애 입에서 소리가 난 것이다. ‘꼴깍꼴깍 아이의 입은 무엇을 토하는 것이다. 비리치근한 냄새가 홱 끼친다’. 권서방은 머리칼이 곤두선다. 그 소리를 끝으로 결국 애는 죽고, 죽은 애를 진흙구덩이에 파묻고 난 황서방은 땅에 주저앉아 애 에미를 찾으면 ‘젖퉁일 싹뚝 짤러다 묻어 줄 테다’라고 본성에 반하는 저주를 한다.

소설은 ‘하늘은 그저 먹장이오. 빗소리 속에 개구리와 맹꽁이 소리뿐이다’로 끝난다. 먹장같은 하늘, 빗소리, 개구리 소리, 맹꽁이 소리는 황서방이 처한 비극에 무심하다.

이태준은 유독 ‘달’이나 ‘밤’에 애착을 가진다. 그것은 그가 그려내고 있는 비극적 서정미의 도구들이다. ‘한국근대소설의 완성자’라 일컬어지는 이태준의 말을 직접 들어본다.

“하나님께선 무엇 때문에 밤을 마련하섯나? 우리를 재우시기 위해 우리를 아모 생각 업시 쉬이게 하시기 위해 마련하섯다면 밤은 무엇 하러 저다지 아름다워야 할 것인가?”(이태준 전집5, 「사상의 월야」, 작자의 말 중에서).

1946년에 월북, 1956년에 ‘부르주아 반동사상의 전재를 지닌 작가’로 분류되어 숙청, 이후 남녘에서는 ‘이○준’의 시절을 거쳐 온전하게 그 작품들이 되살아난 이태준을 오늘 나는 왜 갑자기 끄집어냈을까?

‘황서방’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인데, 황서방을 위로하는 것은 ‘권서방’이지 ‘금테안경’이거나 ‘병원’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일까?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이 나라의 빈부 차는 미국 다음이라 한다. 높은 생계형 자살율은 오래 전부터 세계 최고다.

우리는 이 소설이 쓰여 졌던 70년 전보다 더 행복해졌는가? 누구도 “그렇다”고 섣불리 답할 수 없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소설은 비록 아름답지만, 좋은 문학이 대개 그렇듯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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