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수 전 최재천 의원 보좌관
“편견을 깨고 더 넓은 세상을 보라”
말이 있다. 한국사람의 특징인 냄비근성을 보더라도
시작과 끝이 차이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그 열정이 식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최저선을 높여가는데 시민사회의 역할이 있고,
사람들도 지성적인,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게 필요하다.
앞으로 미네르바 같은, 학벌이나 전공과 관련없이 자신의 관심사에
연구하고 생각하는 전문적인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2008년 12월 19일, 한미FTA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정창수 전 최재천 의원 보좌관이 지난 9월 15일 출소했다. 정 전 보좌관의 구속은 관련 정보가 이미 토론회나 공청회 등을 통해 알려진 내용이었음에도 ‘비공개 문건 유출’이라는 과도한 법해석으로 무리한 판결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이는 2007년 3월 국회의 진상조사 결과,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졌음에도 법정구속을 한 것으로, 국민의 알 권리가 권력에 의해 무시됐고, 국민의 뜻을 외면한 채 협상을 강행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법원이 반영한 과도한 법집행이라는 논란도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최악의 경우 집행유예 정도로 예상하고 갔다가 법정구속 판결을 받았다. 판사가 ‘비밀성이 있다’ 외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던 것도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것 같다.”
정창수 전 보좌관은 표정과 말투는 황당한 판결을 받고 9개월 여 수감생활을 한 사람치곤 밝았다. 오랜만에 ‘휴식과 공부‘를 겸한 교도소 안의 생활이 생각보다 좋았다고 하는 정창수 씨는 예산감시 전문가답게 현재 예산과 관련한 책과 논문을 준비 중이다.
감옥, 나를 담금질하고 종합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
뜻밖의 감옥생활로 감옥 밖 세상이 궁금했을 거 같다. 9개월 동안의 감옥 생활을 정리해본다면?
감옥에서 특별하게 할 일이 없어 매일 신문 8개, 400여 권의 책을 두고 읽으며 예산과 시민사회에 대한 스크랩을 했더니 노트 50권이 됐다. 그동안 나의 활동에 대해 종합적으로 정리하면서 공부를 많이 했다. 감옥에서 미네르바와 이야기를 많이 나눈 탓인지, 특히 관심 가진 주제가 ‘집단지성’이다. ‘열정의 제도화’라는 말이 있다. 한국사람의 특징인 냄비근성을 보더라도 시작과 끝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그 열정이 식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최저선을 높여가는데 시민사회가 역할을 해야하고, 사람들도 지성적인,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게 필요하다. 앞으로 미네르바 같은, 학벌이나 전공과 관련없이 자신의 관심사에 연구하고 생각하는 전문적인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스크랩이 책의 기초작업이 된 셈인데, 어떤 논문과 책을 준비 중인가?
예산과 관련해서 ‘예산심의과정이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논문과, 나라가 어떻게 흥하고 망했는지에 대해 역사와 당시 사회 분위기를 알고, 재정운영 중심으로 풀어 이해를 돕는 ‘국가흥망사’(가제)를 준비하고 있다.
또 ‘감옥’(가제)이라는 책인데, 교도소 전반의 생활, 실제 있었던 일과 경험과 느낌 등을 토대로 감옥의 역사와 현황, 교정 행정의 올바른 방향 등을 논픽션으로 엮을 생각이다. 감옥도 가장 소수자들이 모여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감옥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사회가 그만큼 나아질 것이다. 교도소에 4범 이상이 20%, 초범이 1%라는 것은, 한 번 들어오면 계속 들어온다는 말이다. 지금처럼 수용이 아닌, 더 개방된 형태로 그들을 올바르게 사회에 적응시킬 수 있는 교정행정이 필요하다. 교도소가 죄값을 치르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게 국민정서지만, 사형제 폐지 운동 의식이 생겨난 것처럼 ‘공존’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산감시운동, 선택과 집중 치밀한 준비 속에서 효율적
2010년 예산안이 현안이다.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야당과 시민사회, 싱크탱크와 각계각층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할 계획이다. 그러나 그동안 예산의 중요성은 잘 알지만, 생각처럼 이슈화 되거나 성과가 없었던 것 같다.
예산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동안 시민운동이 치밀한 준비 없이 이슈를 쫓다 보니, 또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고 눈앞에 닥친 모든 문제를 신경쓰다보니 예산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된 것이다. 작은 문제라도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단순하게 누구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를 살리고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 예산감시 운동이다. 혼자 할 수는 없다. 개별 싸움이 돼버리면 예산쟁취 운동밖에 안 된다. 각 분야에 있는 사람이 예산전문가가 되어 미래 사회를 구상하고 합의하며 네트워크를 해야 한다. 시민단체도 무작정 복지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현실 가능한 예산을 책정하는 안목도 기르고 장기적으로 전망을 가지고 준비해야 한다. 해서 우리만의 ‘시민예산서’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아무도 모르는 예산낭비는 없다는 것이다. 회의록이나 신문기사, 보고서에서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노출되어 있는 것들을 정리해서 사람들한테 문제점을 확연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정리 하는 게 문제다. 철광석은 산속에 무수하게 많이 묻혀있는데 담금질을 해야 칼이 된다. 그런데 대부분 철이 없어서 싸움을 못하는 거라 생각하는데, 문제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지.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잠시 잠깐이 아닌 오랫동안 준비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즐거운 직업인으로서의 활동가를 꿈꾸며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길지도 짧지도 않은 9개월 동안 책을 읽고 감옥에 들어온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인생관이 조금 변했다. 처음으로 생태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스투파의 지혜의 눈처럼 편견 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밝게 바라보며, 발전된 미래사회에 맞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저는 지식을 창조하기 보다 지식 매개자의 역할을 하고 싶다. 블로그를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알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예를 들어 딱딱하고 어려운 예산 관련 소식을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서 ‘예산뉴스’ 같은 걸 만들 생각이다. 소설, 자기계발서 역사 등등 책을 많이 읽다보니 대중 정서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보지 않으니까 운동하는 사람들 외엔 잘 몰랐던 거 같다.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원화 되어 있다. 또 촛불시민들이 무얼 말하는 것인지를 발견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시민운동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중과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대중이 보는 언어를 통해 그들을 만나고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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