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10월 2009-10-01   984

참여사회가 눈여겨본 일_경제위기는 진정 끝나가는가:




폭탄 안고 달리는 한국경제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2009년 2월까지만 해도 1929년 대공황보다 어쩌면 더 큰 경제공황이 터지고 있다며 전 세계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러나 1년도 되지 않아 세계 경제가 침체가 아닌 회복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전망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이 지난 9월 15일, “적어도 기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시점에서 경기침체가 끝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선언함으로써 “위기 가속화냐, 회복 시작이냐”는 논쟁은 사실상 종결된 것처럼 되었다.

이제는 “얼마나 빠른 속도로 회복될 것이냐, 회복 효과가 일반 국민들에게도 전달될 것이냐”로
쟁점이 옮겨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 정점에 한국 경제가 서 있다. 2009년 2분기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2.6%를 기록한 한국은 다른 OECD 국가들이 여전히 마이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미국 -1.0%, 영국 -0.8%) 1%에 채 못 미치는 미미한 수준의 반등(일본 0.9%)에 그친 가운데 가히 경이로운 회복 속도를 보이고 있다. 코스피지수도 1700선을 돌파했고, 삼성전자 주가는 사상 최초로 80만 원 선을 넘어섰다.



대반전 선두에 선 한국 경제

물론 세계경제가 회복으로 반전되었다고 해도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순탄한 성장세로 돌아갔다는 뜻은 아니다. 첫째는 경기가 추락을 멈추고 회복세로 가고 있지만 회복은 대단히 느린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는 것이다. 경기회복을 주도해온 정부역할을 앞으로 민간이 떠안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글로벌 민간소비위축이 장기화될 것이며 동시에 세계적인 과잉생산 규모 축소 조정도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경기회복과정에서 또 다시 경기가 추락하는 ‘더블딥’ 가능성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루비니 교수가 주장하는 ‘출구전략 딜레마’가 대표적인데, “재정적자 해소와 시중의 유동성 회수를 위해 증세를 하고 재정지출을 줄이자니 다시 경기회복이 느려지면서 스태그디플레이션stag-deflation이 올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지금처럼) 재정확대를 계속하자니 재정적자가 누적되면서 인플레이션 압박으로 국채수익률과 대출 금리가 상승해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셋째는 각 국가마다 양상은 다르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요소들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채 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연체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5300억 달러에 이르는 상업용 부동산 부실이 잠재된 뇌관이고, 유럽은 2009년 2월에 폭발 직전까지 갔던 동유럽 국가에 물려있는 서유럽 은행부실 위험이 아직 살아있다. 아시아에서는 미국을 대신해 세계경기 회복 주도국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중국에서 자산시장 거품을 우려하고 있다.1)

그러나 우려했던 세계경제의 자유낙하가 멈추고 회복을 향해 전환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무엇이 이처럼 세계 경제의 추락을 대반전으로 이끌었는가? 대반전의 선두에 한국경제가 서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민들에게 피부로 실감되지 않는 것은 또한 어째서일까?



2분기 성장률 2.6% 중 1.9% 이상이 정부재정 효과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과 자기 치유력을 굳게 믿고 “시장은 선善이고 국가는 악惡”이라고 주장하면서 신자유주의가 창조해낸 첨단 금융시스템이 붕괴하고 연이어 실물경제가 추락하자, 막상 이를 구원하기 시작한 것은 시장이 아니라 국가였다. 월가의 금융자본과 각 국가의 대자본들은 앞 다퉈 국가의 품으로 뛰어들었고 각국 정부는 파격적인 금리인하를 필두로 대규모 유동성을 금융회사에 공급하고 부실자산을 매입해 주는 한편, 국가 재정을 풀어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나선다.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응급처방용 국가자본주의’로 전환된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는 OECD국가 가운데 가장 과감하게(?) 재정을 풀어 경기부양책을 실시했다. 2009년 상반기에 이미 전체 예산의 60%가 넘는 161조 원의 재정지출을 했다. 미국이 2009년 2월 7820억 달러 경기부양책을 발표했지만 실제로 2009년 지출이 1849억 달러인(상반기에는 고작 35% 지출)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그 결과 한국경제는 OECD국가 가운데 정부재정투입 효과가 가장 확실한 국가가 되었다. 2009년 2분기 경제성장률 2.6% 가운데 1.9% 이상이 정부재정효과일 것이라는 추정은 이를 입증해준다.

정부의 경제개입은 소비, 투자, 고용 등 전 방위적으로 실시되었다. 정부가 어떻게 소비에 개입했는지 먼저 확인해보자.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2008년 9월부터 마이너스로 빠지기 시작한 소비재 판매는 2009년 2월만 해도 -6.1%로 추락했다. 그런데 5월부터는 갑자기 플러스로 반전되더니 6월에는 무려 +7.5%까지 증가했다.2) 민간소비가 살아난 것이다.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 바로 -20% 이상 감소를 보이던  자동차 판매가 2009년 5월에 +20%, 6월에는 +60%까지 폭증하면서 소비재 판매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자동차 내수 폭발은 2분기 성장률을 무려 0.5~0.8% 상승시켜주게 된다.3) 어째서 우리 국민이 승용차 구매를 갑자기 늘린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2008년 12월부터 2009년 6월까지 정부가 자동차에 대한 개별 소비세를 30% 감면해준데 이어서, 2009년 5월부터는 노후차를 팔거나 폐차하고 신차를 살 경우 개별 소비세와 취득세, 등록세를 70% 인하해 주는 정부 지원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힘이었던 셈이다.

투자는 어떤가. 정부가 특히 애정을 가지고 재정투입을 집중했던 토목 건설부문을 살펴보자. 예상대로 실물경기가 급격히 나빠지던 2008년 11월부터 건설 기성액 실적 증가율이 잠깐 마이너스로 추락했지만 2009년 접어들면서 반전되더니 계속 성장세를 이어왔다. 공공부문 건설이 평균 +20% 이상의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민간 부분 건설은 2009년 7월 -9.2%에 이르기까지 거의 내내 마이너스 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공공부문의 활황에 힘입은 건설업은 경기침체를 반전시키는데 일정한 기여를 하게 되었고, 올해 2분기 기준으로 제조업이 작년에 비해 -7.9%로 성장이 감소하는 동안 건설업은 +1.3% 상승하여 전체 성장률 회복에 도움을 주게 된다.4)

정부가 경기회복에 미친 영향은 고용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다. 사실 경기에 후행하는 고용의 특성상 경기가 회복조짐을 보여도 상당기간 고용사정은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실제 2008년 12월부터 마이너스로 빠지기 시작한 취업자 증가 수자는 2009년 5월 -22만 명 수준까지 떨어진다. 그러던 것이 2009년 6월부터 플러스로 돌아섰고 8월에도 +3천 명을 유지했다. 2009년 1월 3천 명 증가에 불과했던 공공부문의 취업자가 올해 6월부터 무려 100배나 증가해서 32만 명 수준까지 커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단기 임시 일자리로 만들어낸 ‘청년 인턴제’와 25만 명의 ‘희망근로’ 위력이 나타난 것이다. 반면 경제위기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제조업, 건설업, 도소매업에서의 일자리 감소행진은 여전히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제조업은 -15만 명 전후(7월 – 17만 3000명), 건설업은 -12만 명 전후(7월 -12만 7000명), 도소매 음식 숙박업은 -15만 명 전후(7월 -16만 5000명)로 감소 폭이 전혀 줄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5)



도산 위기의 30만 개 중소기업, 잘 나가는 10대 그룹

그렇다면 한국경제를 침체의 나락에서 회복으로 역전시켜낸 주역이 오로지 국가뿐일까. 이미 글로벌 기업 수준으로 커져버린 한국의 핵심 대기업들이 경제위기 속에서 환율 호조건을 등에 업고 쟁쟁한 글로벌 경쟁상대를 따돌리면서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이며 산업생산과 수출 추락을 방어하는 역할을 맡는다.

한국의 핵심 대기업들은, 주요 경쟁상대인 일본과 대만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환율 여건을 활용하여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60%, 휴대폰 시장의 30%를 장악하는 등 반도체, LCD, 자동차, 가전, 휴대폰 등 첨단 제품과 고가 소비재 시장을 누비게 된다. 그 결과 경제위기 한파의 정점기였던 2009년 상반기에도 한국의 10대 그룹은 무려 11조 4천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특히 삼성전자는 상반기 순이익이 이미 3조에 육박했고 현대 자동차도 1조 원을 넘어서 증권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약 30만 개 중소기업이 도산 위협에 시달리고, 700여 개의 상장기업들도 적자에 허덕이며 위기의 2009년 상반기를 견뎌왔다. 그러나 삼성, 현대, LG, SK 등 핵심 4대 그룹은 지난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수익행진을 이어왔고, 한국 기업 실적지표를 호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6)
한국 대기업과 함께 주식시장 활황세를 이끌었던 숨은 주역이 바로 외국인이다. 정부의 저금리 기조와 거시경제지표 회복이 뒷받침된 가운데 주요 초 대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방하며 실적을 올려가자, 불황속에서 수익처를 찾던 월가의 금융자본이 한국의 초 대기업들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수하면서 주가가 폭등한다.

금융 불안이 바닥을 찍었던 2009년 3월부터 한국 주식시장에 되돌아온 외국인은 놀라운 속도로 한국 주식을 사들여 지난 8월까지 상장주식을 20조원 이상, 채권을 29조원 이상 순 매수했는데, 이 규모는 우리나라가 올해 ‘수퍼 추경’이라는 용어까지 붙일 정도의 추가경정예산 규모 28조 7천억 원의 1.5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7)

종합해 볼 때, 한국경제의 급격한 회복은 국가의 강력한 경제 개입과 경기 부양,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한 한국의 유력 초超 대기업들의 선방 그리고 파산의 위기에서 한숨 돌린 월가 금융자본의 한국 주식시장 귀환이라는 3대 요인이 있었다.



실적 우선의 경기 회복, 약일까? 독일까?

정부와 대기업, 월가 자본들이 스스로 우리 국민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고 다시 우리 경제지표를 끌어올리는 곡예로 ‘그들만의 극적인 스릴’을 느끼는 동안 국민 다수의 생활은 호전이 아니라 한 단계 한 단계 악화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고 한번 악화된 상황은 성장률 지표처럼 쉽게 반전되거나 회복되지 않고 있다.

희망근로를 뺀 고용지표는 여전히 마이너스 추락행진을 계속하고 있고, 가계소득도 줄어들고 있으며, 지금과 같은 초 저금리 상황에서조차 대출 증가로 인한 이자부담은 늘어만 가고 있었다. 300만이 사실상 실업상태에 빠지면서 매달 40만 명이 실업급여를 타야 할 처지에 놓였고 실질소득은 1년 동안 1.5% 이상 줄었으며 실질 이자부담은 작년에 비해 무려 15%나 늘어났던 것이다.8) 여기에 사교육비와 전세 값이 뛰면서 생활고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기만 하고 있다.

그런데 경제위기와 남북관계 경색에 이어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 서거로 ‘정권위기’까지 몰렸던 이명박 정부는 속 내용이야 어떻든 외형적인 경제지표들이 급격히 호전되자 이를 발판으로 국면전환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경제성장률이 OECD 국가 가운데에서 가장 빠르게 회복되고, 주가도 OECD 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수준의 상승률을 보이는 가운데, 삼성, 현대와 같은 초 대기업들이 국제무대에서 선방하고 있다는 소식들이 끊이지 않고 날아들자, 일부 전통 보수 이데올로기 세력의 반대를 무시하고 공개적으로 ‘중도실용, 친서민’ 행보에 착수한 것이다.

그러나 악화되어가는 국민들의 생활지표를 ‘립서비스’로 대체할 수는 없었다. 4대강 사업을 밀어붙여 토목 건설업자들을 만족시켰고 부동산 규제완화를 통해 강남 부유층의 자산 가치 실현의 기회를 주었으며, 미디어법 강행으로 보수언론자본의 요구를, 주가 반등으로 일부 금융 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존해 주었지만 서민의 손에 돌아온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민감한 국민적 의제들인 ‘사교육대책과 심야 학원교습 금지’, ‘취업 후 등록금 대출 상환제’에 이어, 실속은 없지만 ‘서민 감세와 고소득층/대(大)법인 세금감면 축소’와 ‘서민금융 대책’을 발표하며 민심 수습책을 이어나갔고 정운찬 총리지명으로 그 정점을 찍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성장률 OECD 1위라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적 지탱점은 탄탄한가? 정부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이명박 정부가 ‘단기 신속대응’을 하기위해 국가 예산과 공기업 예산까지 끌어당기기 식으로 대거 동원해서 외형적 경제실적을 올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번 경제위기는 향후 상당한 기간 동안 조정을 거쳐야 할 구조적 위기였다. 단기 신속대응의 놀라운 실적(?)은 ‘장기 지속대응’ 능력을 희생시킨 대가일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각종 경제 지표들은 위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한국 경제 구조와 국민 생활은 결코 위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마치 10년 전 외환위기가 외형적으로는 극복됐지만 우리 국민의 생활은 엄청난 변화를 거치며 외환위기 이전과는 결코 같아질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 경제 위기로 소득양극화와 자산 양극화는 더욱 구조화 되고 있으며 상시적 고용 불안은 아예 상시적 고실업 국면이라는 초유의 고용상황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서고 있다. 내수기반 강화 대신 일부 대기업들의 수출 실적에 우리 경제가 더 많은 명줄을 걸게 되었다. 가뜩이나 큰 건설 비중은 더 커지고 사회복지나 사회서비스 부문의 수준은 여전히 바닥이다. 주식시장은 어떻게 움직일지 더더욱 알 길 없는 외국자본의 동향만을 쳐다보며 가슴 졸이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1)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2009년 주식시장 재반등의 주역 외국자본”, 2009. 9. 11.
2) 통계청, “2009년 7월 산업활동 동향”, 2009. 8. 31.
3) 연합뉴스 2009. 7. 10.
4)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정부가 만들어낸 한국의 경제회복 지표들”, 2009. 9. 2.
5)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고용 없는 경기회복이 과연 가능한가?”,2009. 8. 13.
6)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한국 대기업의 힘과 한계”, 2009. 9. 4.
7)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2009년 주식시장 재반등의 주역 외국자본”, 2009. 9. 11.
8)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한국노동시장 2차 구조변동의 4대 징후”, 2009.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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