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11월 2008-11-11   1046

북리뷰_금융위기와 ‘사악한 자본주의’



금융위기와 ‘사악한 자본주의’


경제이론으로 포장한 이데올로기를 경계하라


이승선<프레시안>기자 editor2@naver.com






경제현상은 수요-공급 등 경제학적인 기본 원리에 입각해 결정되고, 이런 경제적 현실에 의해 한 사회의 정치나 이념의 현실이 형성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경제현상은 수많은 사람들이 경제행위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결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념적 주장일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는 금융위기는 바로 이런 ‘이념적 주장’에 의해 경제정책이 결정된 대가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경제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미국의 경제 불평등

폴 크루그먼 Paul Krugman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작 미래를 말하다』에서 이 점을 강조했다. 순수 경제학적인 시각만으로 연구하던 크루그먼 교수는 이 책에서 미국의 엄청난 경제적 불평등이 아주 급격하게 진행된 것을 경제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미 그는 2003년 『대폭로』라는 책에서도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비판하는 ‘논객’으로 변신하게 된 이유로 이런 점을 밝혔다. 어떤 이념을 가진 세력이 경제정책을 결정하고 이런 정책들로 인해 경제적 현실이 급변하고 있는데, 마치 자연현상을 연구하듯 경제학적 분석이나 하는 학자로서 한계와 분노를 느꼈다는 것이다.

일반인이 이 세상이 어떤 특정세력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주장을 하면 그것은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반박을 당할 것이다. 그런데 ‘음모론’은 전지전능한 소수의 세력을 전제로 하며, 이에 대해 증명할 수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크루그먼 교수가 말하는 특정 세력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그들은 실패할 수 있고 세력이 약화될 수 있다. 다만 어떤 환경에서 그들은 강한 힘을 갖고 자신들의 의도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크루그먼은 『대폭로』, 『미래를 말한다』를 비롯한 각종 글에서 실증적인 근거를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그는 어느 경제학자보다 가장 신속하고 치밀한 분석과 사태의 진전에 대한 정확한 예측 등을 쏟아냈다. 물론 그가 ‘케인즈 이후 가장 글을 잘 쓰는 경제학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경제학자로는 <뉴욕타임스> 최초로 고정칼럼니스트로 위촉되어 지난 2000년 1월부터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점도 그가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급 경제학자’로 부각되는 배경이 됐다.

게다가 미국발 금융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됨으로써 이제 그를 ‘음모론’을 펴는 경제학자로 일축하기는 더 어렵게 됐다.




공화당 집권기에 불평등 급격히 심화

크루그먼 교수에 따르면, 로널드 레이건 이후 미국의 공화당은 소수의 부자를 위한 ‘급진적 정치세력’이다. 이들이 집권할 때 미국의 소득 불평등은 급격히 악화됐다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미래를 말하다』를 쓰면서 이런 확신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그 자신도 “이 책을 시작할 당시에는 경제적 불균형으로 보수주의 운동이 생겼다고 생각했다”면서 “몇 안 되는 똑똑한 지식인들이 미국의 정계를 변화시켰다는 설명보다는, 1970년대 이후 급증한 소득 불균형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이 재력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사게 되고, 기술의 변화처럼 불평등을 조장하는 요소에 의해 극소수의 부유층에게 부가 더 집중되면서, 더 막강한 부유층을 형성하고 마침내 하나의 당을 살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는 설명이 더 그럴 듯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크루그먼의 연구에 따르면, 소득의 집중이 증가했기 때문에 경제적 엘리트 집단이 힘을 얻어서 공화당이 우경화되었다는 가설은 시간상으로 들어맞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공화당의 우경화는 소득의 불평등이 가시화되기 이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보수주의 운동세력이 공화당 장악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 후보가 된 1980년에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에 비해, 부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빈부 격차가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의회에서 이러한 변화는 1976년과 1978년의 선거를 통해 일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이에 앞서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 <내셔널 리뷰>를 중심으로 ‘새로운 보수주의’를 표방한 소수의 엘리트 그룹이 형성되었고, 이들이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온건파 중산층 중심의 사회가 된 것에 불만을 품은 다른 그룹들을 통합하면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운동으로 성장했다.

열렬한 반공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두려움에 공감하는 보수주의 운동에서 동류의식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들이 복지 혜택을 받는다는 사실에 분개한 사람들은 보수주의 운동에서 자신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느꼈다. 노조와 협상을 하는 데 진력이 난 사업가들은 보수주의 운동이 자신의 분노를 효과적인 정책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보수주의 운동 안에서 통합된 세력이 결국 공화당을 장악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크루그먼은 민주적인 투표에 의해 선출되는 미국의 시스템에서 어떻게 소수의 부자를 위한 정치세력이 집권할 수 있었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극우적 견해를 쓸모없는 불평이나 하면서 낭비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길 수 있는 전략으로 바꿀 수 있었던 능력이 보수주의 운동을 지원하는 조직들을 만들 막대한 자금을 끌어들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거대한 극우 보수주의의 음모’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소득의 불평등이 커져서 국민들에게 복지정책이 더 인기 있어야 할 마당에, 어떻게 복지정책을 줄이고 부자에게 유리한 세금제도로 회귀하려는 주장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크루그먼은 매우 곤혹스러워했다. 복지국가를 해체하고 세금을 줄이려는 움직임은 대중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보수주의 운동이 실현하고자 하는 감세는 소수 집단에게만 혜택을 가져다주는 반면, 약해진 사회안전망이 초래할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훨씬 많아지게 된다. 어느 정도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는 보수주의 정책을 조직과 돈이 보충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선거에서 이기려면 보통의 보수주의 운동은 논의의 주제를 바꿔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정책보다 인종 문제가 크게 작용한 미국 선거

크루그먼은 동료학자들의 힘을 빌려 미국에서 특별히 ‘보수주의적 음모’가 위력을 발휘하게 된 배경적 원인을 찾았으나, 결론은 허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인종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하버드 경제학자 알베르토 알레시나, 에드워드 글레이저, 브루스 새서도트가 진행한 최근 가장 체계적 연구에 의하면, 미국에서 여느 선진국과 달리 주목할 만한 사회운동이 없었던 현상에는 인종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인종 간의 불화는 빈곤에 대한 입장을 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빈곤층 중에서 소수 민족들이 가장 많이 부각되기 때문에, 소득에 기초하여 부를 재분배할 경우 특별히 소수 민족에게 돌아가는 몫이 많아지게 된다. 재분배를 계속해서 반대해온 이들은 인종문제가 깔린 문구를 사용하여 좌파적 정책과 맞서왔다. 미국 전역에서 인종 간의 분열은 부의 재분배를 예측하는 강력한 도구다. 또한 미국 내에서 인종 문제는 복지 정책을 지지하는 세력이 얼마나 많은지 예측하는 데 가장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불편한 인종 관계는 분명 미국이 복지국가가 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임에 틀림없다.”

크루그먼은 미국에서 국민의료보험이 없는 가장 큰 원인도 인종 문제에서 찾았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선진국들은 국민의료보험제도가 있다. 어떻게 미국에만 이러한 제도가 없을까?

크루그먼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역사적으로 국민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때는 1940년대 후반이었다.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추진한 국민의료보험에 대해 여론도 압도적으로 찬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학협회와 남부 백인들의 반대로 실패했다. 남부 백인들은 저소득층이었기 때문에 국민의료보험의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높았는데도, 병원에서 인종차별이 폐지될까봐 두려운 나머지 트루먼에 반대했다. 어떤 주가 복지제도를 더 많이 지지하는지 비교해보면 역시 인종이 얼마나 큰 변수로 작용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부시 대통령이 당선과 재집권에 성공한 배경에는 복음주의 기독교 등 또 다른 요인이 강력하게 작용했다. 또한 외교안보 문제에서 공화당이 더 강하다는 인식을 이용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지금도 조작설이 나도는 9·11테러 사건과 허위 정보에 의한 명분으로 밀어붙인 이라크 전쟁이 그것이다. 이처럼 보수주의 운동은 본질을 흐리는 방식으로 여론을 조작하는 방식을 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외교안보에 더 강하다는 인식은 실제적 근거가 없다. 크루그먼은 베트남전 패전 직후까지도 이런 인식은 거의 없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베트남 전 이후 패배의 원인을 찾던 여론에 의해 이른바 ‘비수 전설’이 주류로 등장하면서 공화당이 외교안보에 더 강점을 지닌 당이라는 인식이 퍼졌다는 것이다. ‘비수 전설’은 누군가 등에 비수를 꽂아서 패전을 하게 됐다는 주장을 말한다. 1982년 람보 영화의 첫 번째 시리즈 <퍼스트 블러드>가 성공한 이후부터 이런 인식이 퍼졌다.

이 영화에서 람보는 “나는 이기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우리가 이기지 못하도록 방해했다…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공항에서 시위하고 침을 뱉고 나를 갓난아기 살인자라고 불렀다”며 비난조로 말한다.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자료는 없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이 미군을 무시했다는 이야기는 대중의 기억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익은 사적 소유, 손해는 사회적 분담

보수주의 운동은 궁지에 몰릴 때는 자신들에게 향하는 비판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금융위기를 “월가의 탐욕 때문”이라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바로 ‘경제학’을 내세워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는 수법일 뿐이다. 금융위기는 근본적으로 경제정책이 거품을 형성하는 탐욕을 통제하는 방향이 아니라 방치하고 부추기는 방향으로 이뤄진 결과물이다.

보수주의 운동의 또 다른 이름인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는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점”이라면서 정부의 개입을 죄악시했다. 물론, 좋은 의도를 가지고 정부가 개입하더라도 오히려 일을 망칠 수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이 장악한 정부는 겉으로 내세우는 의도와 달리 ‘실제 의도’ 자체가 사악하다는 점이 다르다. 소수의 부자를 위한 정책을 구사하다가 시스템 자체가 위기를 맞는 상황이 오면 그들을 구제하자며 개입을 주장하는 식이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부시 행정부는 이른바 ‘월가의 사회주의’라는 비판을 받는 정책을 여실히 보여줬다. 미국 정부는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해 월가 금융업체들의 부실자산을 매입해주겠다고 나섰다. 한마디로 ‘이익은 사적 소유, 손해는 사회적 분담’이라는 새로운 ‘관치금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위기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불황을 몰고 올지 모른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은 몰락하고 미국에서는 민주당의 장기집권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또한 파리드 자카리아가 쓴 『흔들리는 세계의 축』등에서는 국제적으로 ‘제국’으로서의 미국이 쇠퇴하면서 다른 나라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다극화 시대가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오미 클라인은 쇼크 독트린에서 ‘재앙 자본주의’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그녀는 감세정책, 규제완화가 모두가 잘사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는 언제나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 이데올로기는 상황에 따라 진퇴를 거듭한다. 거품경제가 형성될 때는 자유방임을 설교하는 것이 이익이다. 그래야 투기적 거품이 팽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거품이 꺼질 때는 큰 정부가 구해주는 동안 이 이데올로기는 숨을 죽인다. 하지만 구제의 시기가 끝나면 이 이데올로기는 질풍처럼 되돌아온다. 아무리 큰 불황이든, 어떤 대통령이 집권하든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앞날

진보진영에서도 좀 더 좌파에 가깝다는 쪽에서는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본질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자체가 붕괴되길 바란다. 이 때문에 이번 금융위기가 자본주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주목받는 사람은 이매누얼 월러스틴이다. 그는 지난 2004년 『미국 패권의 몰락』, 또 최근에는 『유럽적 보편주의 : 권력의 레토릭』을 통해 미국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으며,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초래될 것을 예언자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패권의 몰락』에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반드시 말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는 평등에 관한 것이다…평등이 부재하는 곳에서는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데, 이유인즉 불평등한 체제에서는 항상 권력자들이 우세한 경향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레닌주의적 변종은 (경제적) 평등이 (정치적) 자유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반응했다. 이것은 완전히 틀린 대답이었다. 정답은 결코 자유와 평등을 분리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선택이 불평등한 지위에 의해 제약당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 누리는 만큼의 자유를 누리고 있지 못하다면, 즉 실제 결정에서 똑같은 정치적 권리와 똑같은 정도의 참여를 누리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평등’할 수 없다.”

월러스틴은 미국의 몰락과 자본주의 체제 붕괴는 필연적이지만, 자본주의 체제 이후의 세계 체제가 바람직한 체제가 되느냐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시기를 16세기에 형성되어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하나의 긴 시기가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시기로 진입하고 있는 ‘이행의 시기’로 보고 있다.

그는 “앞으로 다가올 20년에서 50년 동안 민주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체제를 위해서 근본적인 역사적 선택을 해야 한다”면서 자본주의 세계체제 이후를 대비할 것을 역설한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기존 세계제체보다 더 사악한 불평등의 세계가 될 수도 있다. 월러스틴은 아프리카 세네갈의 시인이자 정치가 생고르의 표현대로 ‘서로 주고받는 만남의 세계’를 새로운 세계체제로 가진다는 것은 유럽적 보편주의와 보편적 보편주의 사이의 이데올로기 투쟁을 통해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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