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11월 2008-11-11   827

참여마당_회원생각: 내겐 너무 불편한 종교




내겐 너무

불편한 종교


최원희 참여연대 회원 nado@nate.com 

언제부터인가 종교와 관련된 상징물들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옛 노래에서만 들을 수 있는 ‘예배당’ 대신 ‘성전’, 하나님의 성전이 교회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단순한 상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존한다.

그리 허름하지도 않았다. 보수가 필요하지도 않던 교회건물을 허물더니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고 한다. 몇 달 후 동네에서 젤 높은, 젤 번쩍번쩍한 빌딩으로 변했다. 교인이 더 늘지도 않았다. 다만 친숙했던 예배당이 없어지고 거대한 성전이 된 것이다.

한국 교회의 최대 과제는 성전건축인 듯, 웬만한 교회들이 탈바꿈을 하고 있다. 교회성전건축 전문회사에서 나온 카탈로그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엔 문화예술 공연하는 공연장인 줄 알았다. 300평에서 1,000평 사이의 땅에 1,000명에서 3,000명 규모의 성전을 새로 짓는다. 예술의 전당 공연장보다 더 큰 공간이다. 정말 그 교회 교인이 3,000명이나 될까? 주민수를 조사하더라도 택도 없다.

그렇게 큰 공간이 왜 필요한 것일까? 물론 예배당 증축과 신축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예배당 건축 모두가 잘못되었다는 말도 아니다. 꼭 필요하다면, 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성전을 짓는 의미에 지역사회의 발전이라는 게 부여되지만 실제로 많은 교회들이 그러하지 못하다. 지역민들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어 하나님의 교리를 전하는 활동을 한다면 이렇게 불편하진 않을 거 같다. 누구를 위한 교회인가…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대형교회 뿐 아니라 가끔 절에 가면 법당에 모신 불상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사람의 몇십 배 되는 불상 모습에 부처님에게 위압감마저 느끼게 된다. 또한 한국 땅에는 세계 최대, 초대형 불상이 많다. 거대한 몸과 다르게 부처님의 인자한 얼굴을 보며 꼭 묻는 말이 있다. “만족하세요?”

갈수록 대형화되어가는 종교 관련 상징물이 나를 매우 불편하게 한다. 대형화된 상징물과는 달리 정작 교인들과 불자들, 비종교인들의 마음은 작아져만 간다. 수용불가, 타협불가, 내 것, 우리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 정작 각각의 종교의 말씀과는 다르게 살아가지 않는가.

왜 교회는 점점 커질까? 왜 불상은 점점 거대화되어갈까? 하나님의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어내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어낼 뿐이다. 사람들의 욕심일 뿐이다.

이미 하나의 조직사회가 되어버린 듯한 일부 종교의 행태에 실망은 거듭되고 있다. 실제로 왕국을 만들 공간을 내주어 그들끼리만 생활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종교의 순수성을 해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종교의 순수성은 그곳에 속한 사람들이 해치는 것이다.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마지막 순수를 잃지 않으려면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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