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9월 2008-10-02   1084

‘PD수첩’의 카나리아들 살리기






위험 알린 죄로 끌려갈 위기에 처한



‘PD수첩’의 카나리아들 살리기





이제훈이 만난 사람 – 김보슬·이춘근 PD





글  이제훈<한겨레> 통일팀장 nomad@hani.co.kr

사진  김영광사진가 k-photo@hanmail.net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이제는 먹거리도 그저 ‘자연의 선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많은 먹거리에 과학기술이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먹거리의 씨앗이라 할 종자와 유전자를 둘러싼 세계 각국, 정확히 말하자면, 선진국 사이의 쟁투는 ‘전쟁’ 수준이다.



그런 ‘전쟁’의 산물 하나가 ‘유전자조작식품’(GMO)이다. 어떤 과학자들은 유전자조작작물이 병해충에 강하고 소출을 크게 높여 기아를 없애줄 것이라며 적극 찬성한다. 반면에 많은 생명과학자들은 자연과 생명의 법칙을 거슬러 재앙을 초래할 수 있으니 금지되거나 엄격 통제돼야 한다고 경고한다.  



이런 논란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단순화의 위험이 있긴 하지만 크게 ‘유럽식’과 ‘미국식’으로 갈린다. 유럽 사람들은 대체로 ‘안전하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위험에 대비해 엄격한 통제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 유럽사회의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법 제도적 규제는 매우 엄격한 편이다. 반면에 미국 사람들은 ‘위험하다는 게 입증되지 않았으므로, 지나친 규제는 경제력이 약한 이들의 생활에 불편과 부담을 줄 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미국의 사회적 규제는 유럽에 비해 훨씬 느슨하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태도는 어떨까? 올봄을 뜨겁게 달궜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에 비춰보면, 적어도 두 가지는 명확하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식에 가깝고, <MBC> ‘PD수첩’ 제작진은 유럽식에 가깝다는 것이다.





“사수, 피디수첩! 분쇄, 언론탄압!”



지난 9월 23일 낮, 한 달 가까이 농성중인 PD수첩의 김보슬, 이춘근 PD를 찾아갔다. 지난달엔 조계사에서 농성하고 있는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을 만났는데, 어쩌다보니 이번엔 <MBC> 사옥에서 농성하고 있는 두 PD를 만나게 됐다. 고백하건데, ‘농성자 연쇄 인터뷰’ 계획은 전혀 없었다. 정권의 방송장악 기도를 둘러싼 논란, 공영방송 중심 체제의 변화 가능성, 정권의 ‘촛불’에 대한 지속적 탄압 등 한국사회의 주요 현안들이 만나는 지점에 두 사람이 있다는 판단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우선 이와 관련된 경과를 간단히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08년 4월 18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둘러싼 한미 협상이 타결됐다. 4월 19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때문에 ‘선물’ 논란이 일었다. 4월 29일 <MBC>가 PD수첩 ‘긴급취재-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을 방송했다. 5월 2일 청계광장에서 첫 촛불집회가 열렸다. 그 뒤로 100일이 넘도록 촛불집회는 계속됐다. 1987년 6·10항쟁 이후 최대 인파가 서울 도심을 뒤덮었다. 단일 이슈론 ‘전무후무’할 연속 집회 최장 기록도 세웠다(보통 단일이슈를 다룬 집회는 3주 이상 이어지기 어렵다). 대통령은 두 차례 대국민 사과를 내놨다. 정부는 ‘촛불민심’에 밀려 미국과 추가협상을 벌였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조중동 중심의 보수언론은 PD수첩을 ‘광우병 괴담’과 촛불집회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하고 집요한 공세를 퍼붓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PD수첩에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검찰은 검사 5명으로 특별수사반을 꾸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을 따진 4월 29일, 5월 15일 방송분에 대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 제재를 의결했고, <MBC> 경영진은 PD수첩 제작진 등 현장의 의견을 무시하고 전격적으로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검찰은 김보슬, 이춘근 PD 등에 세 차례 소환장을 발부했고, 두 PD는 소환에 불응하며 8월 26일부터 <MBC> 사옥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PD수첩과 검찰, 같은 자료 다른 해석



PD수첩 PD들을 만났으니, 일단은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가보자.



“소송을 하는데, 우리가 낸 자료와 정부가 내놓은 자료가 내용상 거의 비슷하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러니까 위험하다’는 거고, 저쪽은 ‘그러니까 안전하다’는 겁니다.” 김보슬 PD는 이 얘기를 하며 웃었다.



묻고 싶지 않았지만, 물었다. “왜 검찰의 소환에 응하지 않냐”고.



김 PD. “농수산식품부는 피디수첩이 자기네 명예를 훼손했다는 건데, 보도에 문제가 있으면 언론중재위에서 다루면 되고, 더구나 재판도 진행 중인데(농수산식품부가 PD수첩의 보도와 관련해 정정·반론 보도 청구소송을 냈다.) 또 무슨 검찰수사인지…. 전 이 일이 (언론자유와 관련해)매우 상징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농성을)그만둘 수가 없어요. 근데 공격보다 수비가 더 어렵네요. 스트레스 조절이 잘 되지 않아요.”



이춘근 PD.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했어요. 1학년 때 사상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에 대해 배웠죠. 이건 검찰이 정답을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에요. 정치적 의도도 강하고.”





상황은 어렵다, 그러나 의지는 강하다



개인도 아닌 정부 부처가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이라 주장했다. 그것도 특정인이 아닌  정책 결정과 외교 협상에 대한 비판 보도를 두고. 이게 명예훼손이면, 단언컨대 언론이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정부와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이 왜 PD수첩을 문제 삼는 거 같냐”고 물었다.



이 PD. “정치권은 (장기집권하고 있는)일본의 자민당이나 이탈리아의 (언론을 장악한)베를루스코니가 되고 싶은 거 같아요. ‘방송’이 적대적이어서 지난 10년간 정권을 내줬다고 생각하나봐요. 보수우익족벌신문들은 계속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방송시장에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고…. 사실 그네들에 대해선 ‘언론’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아요. 시각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언론이라면 일관성이 있어야 하잖아요.”



김 PD. “정권이 바뀐 뒤 쉽게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었는데 ‘암초’를 만났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일종의 헤게모니싸움이죠.”





추가 질문. “정권의 방송 장악 기도가 성공할까?”



이 PD. “이명박 정부가 하려는 일 가운데 다른 건 잘 몰라도 방송장악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들 생각보다 잘 되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PD수첩을 지켜야 하고, 공영방송 MBC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엔 내부 구성원들도 공감이 있어요. 힘든 싸움이라 속단하기 어렵지만, 의지는 강해요. 4월29일 PD수첩 방송은 MBC가 공영방송이니까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국민들이 힘을 모아주면 좋겠어요.”



김 PD. “어떤 신문은 MBC 사람들이 돈 많이 받는다고 계속 써대던데, 국민들이 ‘밥그릇 싸움’으로 생각하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솔직히 걱정이에요. MBC 내부엔 공영방송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이 있지만, 중요한 건 ‘민심’이죠. MBC 민영화가 왜 문제인지….”





PD수첩의 힘은 어디서 나오나



문제의 4월 29일 방송분에 대해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두 PD의 합창. “4월 29일 방송 내용은 PD수첩의 특종이 아니에요. 다 알려진 것들을 모아놓은 것뿐이죠. 국민들 마음속에 쌓인 게 촛불로 나온 거라고 봐요.”



그들은 겸손했으나 ‘공영방송 MBC’와 ‘PD수첩’엔 넘치는 자부심을 지닌 것 같았다. 그래서 물었다. “몇 년 전 황우석 교수 건도 그렇고 이번 미국산 쇠고기 건도 그렇고, PD수첩의 힘은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나?”



김 PD(그는 PD수첩이 황우석 교수 건을 다룰 때 조연출을 했고, 이번엔 연출을 맡아 사내에서 ‘2관왕’으로 불린다). “PD수첩이 18년 됐어요. 그동안 쌓아놓은 성과도 있겠지만, 황우석 교수 건으로 급성장했다고 생각해요. 그때 방송 초기엔 국민들의 반대가 엄청났거든요. 그걸 견디며 축적된 힘이 작용했다고 봐요.”



이 PD. “PD수첩에서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현장을 돌아다니는 PD는 8명이에요. 길면 2년, 짧으면 6개월 정도 일하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가죠. PD수첩에 무슨 정치적 입장이 있는 건 아니에요. 한나라당이 우릴 싫어하지만, 우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도 친하지 않았어요. 비판과 감시엔 성역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예컨대 삼성에서 PD수첩에 전화가 오면 그걸 녹음했다가 방송에 써요. 그래서 삼성한테서는 전화도 오지 않아요.”



두 PD는 90년대 중반에 대학에 들어갔다. 선배들처럼 ‘운동’의 무게에 눌리지도, 후배들처럼 ‘취업 경쟁’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운동권 학생’은 아니었다, 집시법 위반으로 연행된 적도 없다. ‘농성’과 ‘사수대’가 뭔지 이번에 처음 경험했고, 격려 방문 온 이들과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다  ‘옛날 얘기’도 많이 듣고 있다. 그만큼 ‘생각’도 많아진 듯했다.  





붙잡혀간 카나리아의 운명은



김보슬, 이춘근 PD와 함께 4월 29일 방송된 ‘긴급취재-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 제작에 참여했던 김은희 작가는 <월간 방송문예> 8월호에 기고한 ‘제작후기’에 이렇게 썼다.



“2008년 봄, 광부들은 위험을 경고하는 카나리아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갱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들을 막은 건 탄광 주인이다. 그는 갱도 속 유독가스가 산소라 우겼고, 카나리아가 잘못 울었다며 광부들을 안심시켰다. 대신 끌려 나간 건 카나리아다. ‘음정 몇 개 틀린 죄’라 했다. 그 카나리아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리고, 과연 광부들은 무사히 갱도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이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나는 도통 모르겠다.”



그 카나리아들은 지금 <MBC> 사옥에서 장기농성 중이다. 한국사회는 이 카나리아들을 보호할 수 있을까?









이춘근은 1975년 서울에서 났다. 유치원 시절부터 오락부장과 사회를 도맡았다. 고등학생 땐 이과였는데, PD가 하고 싶어 대학에선 신문방송학을 공부했다. 2001년 PD가 됐다. 결혼한 지 7개월 된 신랑이다. 신부는 그의 농성이 장기화하자 “이제 빨래해주는 비용은 실비로 받아야겠다”는 농담으로 그를 격려했다. 놀러다니는 걸 좋아해 집에 여행안내책자인 <론리플래닛>이 30권 있다. 실제론 많이 다니지 못하고, 인터넷을 클릭하며 세계를 여행한다. 농성 중엔 유럽과 북아메리카 전도를 새로 사서 ‘지도여행’을 하기도 한다. PD로서 좌우명은 ‘돈을 받지 말자’였는데, 요즘은 ‘돈 받지 말고 (정치권력에)쫄지 말자’로 길어졌다. 농성을 무사히 마치고 제작현장으로 돌아가면, ‘야지 시사’, 곧 취지는 PD수첩과 같지만, ‘돌발영상’처럼 삐딱하고 웃음과 여유가 있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단다. 그 프로그램으로 ‘대한민국에서 정치를 하려면 거짓말을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문화를 정착

시키고 싶다고.









김보슬은 1978년 서울에서 났다. 대학에선 정치외교학을 공부했다. 졸업 뒤 <MBC>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PD직에 매력을 느껴 2003년 입사했다. 일찌감치 독립해 오피스텔에서 달세를 내며 혼자 살아왔으나 예상치 않은 농성 덕분에 옷가지와 먹을거리를 챙겨주시는 부모님을 한 주에 한 번 이상 꼭 만나는 ‘효도’를 하고 있다. 일하지 않을 땐 책이나 DVD를 즐겨 본다. PD는‘사람들의 대변자’라고 생각하고 약자 보호라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요즘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 말자’는 생각을 많이 한단다. 농성을 마치고 제작현장으로 돌아가면, 8월에 새로 발령받은 ‘불량제로’팀에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