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10월 2008-09-01   702

참여연대는 지금_기륭전자 문제 해법은 무엇인가

 

기륭전자 문제 해법은 무엇인가

이호근 전북대 법학과 교수,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실행위원 lhg618@chonbuk.ac.kr

지난 2005년 7월 이래 무려 3년 넘게 지속된 기륭전자 불법파견 문제가 극한 상황에 처해 있다. 지난 5월 구로역과 서울광장 철탑 고공시위 이후 노동·시민사회·종교·여성단체, 국회·정당, 법조계가 나서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가운데, 올 6월부터 노사교섭이 진행되었으나 최종 순간 교섭이 결렬되고 말았다.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은 장기간 단식으로 탈진해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응급치료만 받은 뒤 현재까지 70일이 넘도록 목숨을 담보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 단식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사측은 업무방해 혐의로 시위대를 고발하고 농성장을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집행하겠다고 밝혀 사태는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오늘날 지구상 어디에 노사가 고용을 전제로 이처럼 극한적인 대립을 보이는 곳이 있을까? 베이징 올림픽 7위 국가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기륭전자는 2005년 7월 문제가 되었던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을 때 (당시 300여 명의 생산직 근로자 중 비정규직이 290명)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원칙(근로자파견법 제6조의 2 제1항)에 따라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했어야 하는데도 사측은 벌금만을 지불했다. 오히려 사측은 노조를 결성하여 고용보장을 주장하는 노동조합 소속원들과의 고용계약을 해지해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심각한 사내하도급 불법파견

기륭전자 문제의 핵심은 법원이 행정법원(2007.5)과 대법원(2008.1~6)의 연이은 확정판결을 통해 결과적으로 사측에 면죄부를 준 고용계약해지의 정당성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이전에 우리 제조업부문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는 불법파견 문제의 대응방안에 관한 것이다. 이미 제조업 생산 공정에는 금지되어 있는 파견근로가 기륭전자와 같은 전기·전자분야 업종은 물론 기타 많은 제조업부문에 실제적으로는 다양한 방식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편법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즉 기륭전자 문제는 한 회사의 문제라기보다 한국노동시장의 직·간접 고용관행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과 성찰을 요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기간제 계약직 근로자와 파견근로자와 같이 우리 사회의 증가하는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규율 문제와 이에 대한 새로운 법과 제도가 모색되는 과정에서 기륭전자 문제는 더욱 쟁점화되고 있다. 노동부는 1998년 근로자파견법 제정 당시부터 파견과 도급의 구별기준을 ‘고시’의 형태로 제정하여 운용해오다, 2004년 7월에는 동 고시를 상세하게 설명하며 사건의 처리방향까지 제시하는 지침(사내하도급 점검지침)을 마련하여 지방노동관서에 시달해왔다. 이러한 노동부의 고시 및 지침은 모법에 위임근거가 없었고 법규명령으로서 효력을 갖는 것도 아니었으며, 검찰이 2006년 11월부터 같은 사안에 대해서 노동부와 다른 결론을 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7년 그간 구별징표(노무관리상 독립성, 사업경영상 독립성)와 적용상(기륭전자, GM대우 창원공장, 현대하이스코, 라마다호텔, 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의 차이를 보여온 노동부와 검찰은 파견도급의 판단기준을 재정립하여 공동의 기준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지침은 작업배치·변경결정권, 업무지시·감독권, 휴가·병가 등 근태관리 및 징계권 등을 우선 고려하되 다른 여러 징표들을 ‘종합적·전체적’으로 검토하여 파견도급여부를 판단하도록 함으로써, 종래 어느 하나라도 위반하면 근로자파견으로 보는 입장이었던 기존 노동부의 지침에 비하여 완화된 기준을 정하고 있다.

기륭전자에서 보는 것과 같이 파견근로 문제의 핵심은 일부에서 논란이 되는 파견근로 활용 업종의 범위라기보다 생산직 근로에는 활용되어서는 안 되는 파견근로가 적법하지 않은 사내하도급의 형태로 활용되고 있는 불법파견이 문제의 핵심이다. 즉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부문에는 파견근로 활용이 금지되고, 하도급을 하고자 할 경우에는 업체가 원청업체와 사업경영상 독립성과 노무관리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며, 이 경우 원·하청 혼재근무, 업무지시·감독권행사, 연차수당·퇴직금의 원청 지급 등을 위법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많은 기업들이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사내하도급을 주로 활용하는 기업들이 자동차, 전기·전자, 철강, 기계, IT 등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주력산업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와 같은 불법 고용관계가 기업에게 단기적인 비용경쟁력과 인력활용의 유연성을 제공하는 듯하지만 기륭전자의 경우처럼 궁극적으로는 노사관계를 악화시킬 뿐 아니라 기업경쟁력은 물론 기업의 존폐를 좌우할 수도 있겠다.

  

명분과 형식 넘어 문제해결에 임해야

법과 정책은 생산 공정부문에 파견근로의 활용은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는 데에 이의가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실제 근로자를 위해 그리고 장기적으로 기업을 위해 고용관계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기륭전자 사태를 비롯해 법과 원칙은 그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고용보장을 요구하는 당사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민·형사처벌이라는 표면적이며 단기적인 법과 원칙의 강조가 아니라, 불법파견금지, 적법도급요건 심사 및 이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직접고용관계 정립, 노사관행 개선 그리고 정책담당자와 법원의 일관된 의지와 자세이다. 즉 정부와 법원은 관련 고용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점검을 하고, 시장의 주체에 적법한 고용관계 확립을 위한 확실한 시그널을 노동시장에 주어야 한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건강한 노사관계는 물론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지난 6월 교섭시 밝힌 바와 같이 국내생산이 불가피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냉각기로 1년의 시간을 갖고 교육훈련과정을 거쳐 단계적으로 고용보장을 하기로 노사가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루었던 점을 상기하면서, 다시 한 번 노사가 명분과 형식을 넘어 대승적 차원에서 조건 없이 조속히 문제해결에 임하기를 촉구한다. 또한 기륭의 장기화된 단식사태는 이미 이 사태가 노사문제의 영역을 넘어 한계 상황에 다다른 사람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인권의 문제가 되었다. 기륭전자 문제는 개별기업의 단일한 사안이라기보다 상징성 깊은 사회적 해법을 요구하는 문제이므로 현 단계는 정책적 요구와 기업차원의 해법을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는 지혜를 모색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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