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11월 2008-11-12   1162

특집_교육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압력

교육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압력


박경양  참교육학부모회 고문, 사단법인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이사장 kmpeare@chol.com


교육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행위 또는 그 과정”으로 지식과 기술 등을 가르치고 인격을 길러주기 위한 모든 행위를 말한다고 한다. 또 교육이라는 말의 한자적 의미를 살펴보면 ‘아이를 길들인다’는 뜻의 ‘敎’와 ‘갓 태어난 아이를 살찌우게 한다’는 뜻의 ‘育’이 합쳐진 말로 ‘기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영어의 ‘education’은 라틴어의 ‘educatio’에서 유래한 것으로 ‘빼낸다’는 의미와 ‘끌어올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내부적 능력을 개발시키고 미숙한 상태를 성숙한 상태로 만든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교육의 본질적인 이념에 부합되는 이와 같은 교육이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은 상당한 부분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교육은 본래의 교육이념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교육방식 또한 그렇다. 그동안 한국에서의 교육은 지식전달이 주요한 목적이었다. 이 때문에 학생은 교사가 전달해주는 지식을 달달 외우면 그만이었다. 요즈음 초중등학교에서 실시되는 일제고사를 두고 일어난 논란도 교육방식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지난날 학교에서는 학생으로 하여금 네댓 개의 답안 중에서 하나를 고르게 하는 방식으로 시험을 치르고 누가 더 많은 답을 골랐는가를 살펴 학생 개인과 학급, 혹은 학교의 서열을 매겼다. 그리고 이때 유능한 학생은 시험에 나올 만한 것을 잘 골라내고 그 정답을 외우는 학생이고 또 족집게처럼 예상 시험문제를 짚어주고 쉽게 외우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교사가 유능한 교사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교육과 평가방법은 소위 창의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식기반사회에 맞는 교육방식이 아니다.

최근 19세기의 학교에서 20세기의 교사들이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말로 우리나라의 학교교육 현실을 설명하는 이들이 있다. 참으로 명쾌한 비유다. 그렇다. 아이들은 지금 학교를 감옥에 비유하고 있다. 20평의 교실에서 사방 40센티미터의 의자와 책상 앞에 앉아 하루에 일고여덟 시간 동안 한 시간마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학교, 명령과 복종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군대나 범죄자들이 수용된 교도소에서도 용납되지 않는 폭력이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반복되고 있는 공간이 바로 우리나라의 학교다. 이런 학교에서 아이들은 날마다 외우기를 연습하고 그 외우기 능력이 상급학교 진학여부를 결정하며 어떤 학교에 입학하느냐가 개인의 평생을 좌우한다. 이것이 한국교육의 자화상이다. 이것을 진정한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참으로 의문이다. 

과도한 욕망이 불러오는 불안 심리

2000년대 초반 대학의 기부입학 문제를 두고 커다란 논란이 일던 시기에 서울의 한 일류(?) 사립대학이 신입생을 선발할 때 입학정원의 일부에게 기부금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교육부에 공식 요청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이 대학은 입학의 대가로 학생의 부모에게 기부금 20억 원을 받을 계획이었단다. 또 그 정도의 기부금을 받을 경우 자신들이 원하는 수만큼의 기부금 입학생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시 기부금 입학을 추진했던 대학의 판단이었다고 한다.

이 사례는 한국사회에서 교육과 관련한 욕망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대학 졸업장으로 상징되는 교육에 대한 욕망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일류대학의 졸업장이 개인이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주고라도 얻고 싶을까?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일류대학 졸업장이 발휘하는 힘이 개인이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을 만큼의 돈의 힘보다 크다고 사람들이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한국사회에서 일반이 갖고 있는 일류대학 졸업장으로 상징되는 교육을 향한 욕망은 그 무엇으로 채우기 어려운 것임에 틀림이 없다.

입시에 대한 부담 때문에 수험생이 자살하는 사건은 매년 연례행사처럼 이어지고 있다. 수능 모의고사가 있던 얼마 전 고3 수험생이 모의고사를 본 후 집에 돌아와 14층 자기 방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정황상 입시 부담감이 부른 자살”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전교에서 상위 1% 성적을 유지했다는 이 학생은 입시에 대해 큰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입시에 대한 부담이 이 학생을 죽음으로 몰아 간 것이다.

한 초등학생이 “죽고 싶을 때가 많다. 어른인 아빠는 이틀 동안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는데, 어린이인 나는 27시간 30분 공부하고 20시간 30분을 쉰다.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이것은 학습에 대한 부담과 공포가 고등학생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교육을 둘러싼 불안이 학생들만이 느끼는 불안이겠는가? 학부모들 또한 그렇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자녀의 성적표를 두고 울고 웃고 때로는 희망하고 때로는 절망한다. 그렇다. 한국 사람에게 교육은 거대한 욕망의 분출구인 동시에 때로는 커다란 불안의 요소임이 분명하다.

서점에서 판매되는 일제고사 문제지들

‘미친’ 열풍에 한 몫 하는 학부모

세계적으로 한국의 학부모들이 극성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자녀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사회에서 일류대학 입학을 두고 벌어지는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일류대학 입학을 위해서 가능한 빠른 시기에 자녀교육에 자신이 투자할 수 있는 가능한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가계 수입 중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자녀교육을 위해서 지출하고, 자녀교육을 위해서라면 파출부는 물론 더 힘든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학부모들이 이렇듯 자녀교육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교육에 대한 신화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교육은 계층상승이나, 개인적인 꿈의 성취, 혹은 성공으로 가는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인식되어왔다. 이 때문에 자녀가 자기보다 좀 더 나은 경제적 환경 속에서 살기를 꿈꾸는 학부모나, 자녀의 개인적 성공을 기대하는 학부모라면 그 무엇보다도 자녀교육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투자하고 또 거기에 목숨을 거는 것을 당연히 생각해왔다.

지금 고위 공직자, 기업, 대학교수, 법조계 등 우리사회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집단의 대부분은 서울대를 비롯한 몇몇 일류대학 출신이 독점하고 있다. 그리고 권력의 핵심을 장악한 이들은 대학의 연줄을 이용하여 끌어주고 밀어주며 끼리끼리 해먹고 학벌을 중심으로 새로운 계층구조를 형성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끼리끼리 결혼하고 서로 도와주면서 계층을 세습해가고 있고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신분은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듯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학벌, 능력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학교를 다녔는지 구분하는 학력이 개인의 취업이나 임금, 승진과 결혼 나아가 신분을 결정하는 사회에서 학부모들이 자녀교육에 목숨을 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이런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도외시한 채 학부모의 치맛바람을 지나치게 비판하는 것이나, 교육문제에 대한 책임을 자녀교육에 목을 매는 학부모에게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처한 두려움

최근 교육과 관련하여 교육주체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걱정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학부모들이 교육에 대해서 느끼는 두려움은 교육비 부담과 관련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부모가 자녀 1명을 대학교육까지 시킬 경우 부담해야 할 평균 지출비용은 약 2억 2천만 원이라고 한다. 이것은 돈이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의 현실을 말해준다. 이 때문에 기혼 여성들이 출산율을 기피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자녀 양육과 교육에 대한 부담이 커다란 몫을 한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학부모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교육비를 지출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정책들은 대부분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을 늘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학교자율화조치, 대학입시 자율화, 최근 커다란 사회문제로 등장한 국제중학교 설립, 자립형사립고 확대 등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정책들에 대해서 대부분의 교육 전문가들은 이들 정책 모두가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기보다는 사교육의 창궐을 가져올 것이고 바로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요즘 학부모들은 이전보다 더욱 교육문제 때문에 불안하다.

교육에 대한 두려움의 문제는 학생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지금도 학생들은 과도한 학습부담 때문에 힘겨워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아래서 학생들은 지금보다 훨씬 커다란 학습 노동에 시달려야 할 것이고 지금보다 더욱 치열한 성적경쟁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학습 부담과 살인적인 경쟁이 이제 고등학교를 넘어서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적경쟁과 과도한 학습 부담으로부터 일부나마 자유로웠던 초등학생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10여 년간 우리나라의 초등학생들은 만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중고등학생과는 다른 학습 부담과 경쟁 속에서 학교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진단평가 등 실질적인 일제고사와 국제중학교의 설립은 그동안 중고등학생 중심으로 이어져왔던 전국적인 성적경쟁을 초등학교로 확대하게 될 것이고, 또 대학입시의 자율화나 자립형사립고의 확대 등은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학습 부담과 경쟁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문제와 관련한 두려움은 어른들 뿐 아니라 아이들도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교사들 역시 지금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다. 교사들은 지금처럼 안정된 신분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 교사들에 대한 사회적 위상이 더욱 추락하는 것은 아닌지, 학교가 교사와 학생이 자유롭게 소통하며 가르치고 배우는 공동체적 공간이 아니라 교사는 가르치는 기계로 전락하고 학생은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으로 전락하는 교육공장이 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두려움과 걱정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현재 교사들은 종종 사설학원의 강사들과 비교되며 사설학원의 강사들보다 교육에 대한 열정도 능력도 모자라는 무능한 집단쯤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 학교는 수익을 목적으로 돈을 받고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해주는 학원과 비교되곤 한다. 이런 현상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이명박 정부는 교사들이 열정을 갖고 학생교육에 임하도록 하고 또 모자라는 능력을 갖게 한다는 명목으로 교사들에게 다양한 채찍을 들이대고 있다. 교원평가와 교원성과급, 학교장의 권한강화, 일제고사 성적공개, 학교정보공개 등이 그것이다. 가장 우수한 학생이 입학하는 교육대학을 졸업한 후 임용고사를 거쳐 성적순으로 임용된 교사들을 향해 능력이 모자란다고 말하는 것이나, 전국에서 매년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자격증을 취득한 학생 중에서 20~30%, 그것도 고시보다 더 어렵다는 임용고사를 거친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임용되는 교사를 무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교사들의 열정이 부족하다면 그들로 하여금 열정을 회복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가 교사들에게 가하는 채찍은 가혹하기만 하다. 오늘 교사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서, 학교가 어떻게 변화해 갈지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교사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질 것인지에 대해서 걱정하고 또 두려워하고 있다. 

교육, 제도와 정책 바꾼다고 달라지지 않아

그동안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교육정책은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그 때마다 국민들은 이번에는 혹시나 하고 기대했다가 정권이 끝날 때쯤이면 역시나 하고 실망하는 일이 반복되어왔다. 정부가 새로운 교육정책을 내놓고 그 정책의 효과를 어떤 말로 설명해도 국민들은 곧이듣지 않는다. 또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단순히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교육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교육은 지금까지 개인이 성공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수단으로 인식되어왔고 여기에 기생하여 학벌주의와 학력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학벌주의와 학력주의에 기생하여 변형적인 대학입시가 탄생하고 이 대학입시제도가 초중고등학교를 지배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문제해결 방안이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교육문제를 진정 해결할 의향이 있다면 학교자율화니, 자립형사립고 확대니, 입시자율화니 하는 정책들의 추진 이전에 교육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는 근본문제 해결을 위한 분명한 대안과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교육주체들 사이의 진실한 소통과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 많은 학부모들은 단순히 부모의 이기주의에 입각하여 교육을 바라보며 이에 기초하여 교육정책을 판단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교사도, 학교도, 정부도 움직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교사는 교사대로 정책 입안자는 정책 입안자대로 자신들의 잣대로 교육문제를 재고 학부모를 대상화하면서 학부모나 학생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려 하고 또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교육정책을 이끌어가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교육주체들이 진지하게 소통하고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넘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생각의 변화가 없는 한 교육 현장은 교육주체들 간의 각축장으로 오랫동안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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