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11월 2008-10-06   452

칼럼_ 비루한 권력

비루한 권력

박영선『참여사회』 편집위원장 baram@pspd.org

가을이 오긴 오려나봅니다. 한가위가 지났는데도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더니, 기어코 한풀 꺾이고 마네요. 30도까지 치미는 한낮 더위에 시달리던 어느 날은 혹시 가을이란 계절이 없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답니다. 사계가 뚜렷하단 우리의 자랑꺼리도 곧 남의 일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제 걱정은 그저 우려로만 그쳐야 할 텐데요. 기후도 우리가 사는 모습을 점점 닮아가는 걸까요. 날씨마저도 여유롭게 한숨 고를 수 있는 지대는 점점 엷어지고 극단으로 치닫기만 하는 세상살이 같습니다. 

요즘 제가 몸담고 있는 시민운동 판이 시끄럽습니다.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이 ‘이명박 정부를 욕하고 타도하자면서 정부에 여전히 빨대를 꽂고 밥을 먹고 있다’며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개정안을 제출한 것이 신호탄이었나 봅니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엔 창립 기념일 즈음에 연례적으로 열리던 참여연대 후원의 밤 행사에 기업이 왔네, 안 왔네 어쩌고 하며 한 마디로 짖고 까불어대는 기사나 칼럼이 연일 실리고 있습니다. 평소 참여연대가 정부나 거대기업, 국회, 사법부 등 사회 권력을 어떻게 감시하고 견제하는지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도 없어 스트레이트 기사 한 줄조차 쓰지 않던 행태와는 매우 대조적이지요. 그뿐입니까. 김 선생도 환경연합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하여 압수 목적과는 상관없는 활동가들의 개인 다이어리까지 모두 가져갔다는 소식 들으셨지요? 광우병대책회의 사무실을 한 번 압수 수색해보더니 재미를 보았나봅니다. 현명한 사람들은 대운하 반대 운동과 관련한 자료까지 모조리 가져간 걸 보고 압수의 본래 목적을 확인했겠지요. 환경재단 최열 대표가 출국 금지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처음에는 경악을 금치 못했어요. 하지만 조중동에 광고를 실은 기업의 리스트를 온라인에 게시한 누리꾼이나 평화 시위의 상징이었던 촛불시위 유모차 참가 시민에 대한 경찰의 과잉 수사 양태를 보건데, 최 대표에 대한 출금조치는 당연지사겠구나 하며 이해(?)를 하기도 했습니다.

칼럼을 쓰는 이 시간에도 어처구니없는 소식들이 빗발칩니다. NGO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유일한 해외연수기회였던 포스코 청암재단을 국정조사 해야 한단 주장도 나오고 있다지요.  진보, 좌파 단체의 활동가들을 외국에 보냈다는 게 그 이유랍니다. 뉴라이트 계열 사람들에게 일찌감치 좌파로 찍힌 참여연대는 그렇다 치고, 열린사회시민연합이나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나머지 단체들은 어떤 연유로 좌파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설령 그 단체들이 좌파라고 해서 외국에 나가면 안 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한나라당 김용태 의원은 청암재단의 해외 연수생 선발기준이 이념이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걸까요? 시민단체에 광고를 주거나 행사 협찬을 했던 기업에게 ‘무엇이 두려웠길래’라고 호통 치는 이른바 보수 진영이 오로지 기업의 자율성, 시장주의만 주장했던 그 보수 세력들과 같은지 의아스럽기만 합니다.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해 기업이 시민단체와 파트너십을 맺어 추진하는 공동 사업에 왜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일까요? 규제가 필요한 곳에 시장의 자율성 운운하며 어깃장을 놓던 이른바 보수 집단은 왜 아무 말도 없는 걸까요? 검찰은 기업들에게 시민단체들로부터 협박을 받지 않았는지 조사한다고 합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참 친절한 검찰이지요. 시민사회 활성화란 대의는 간데없고, 아예 시민단체를 횡령, 배임도 모자라 이제 협박, 공갈범 취급할 모양입니다.

김 선생, 저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실용정부란 별칭을 포기하고 노골적으로 이념정부라고 본색을 드러내는 게 좋겠단 권고를 하고 싶습니다. 전국적으로 꺼지지 않는 촛불에 놀라 홀로 뒷산에 올라 사색도 하고, 고개 숙여 국민들께 사과도 했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었노라고, 절치부심하며 본색을 드러낼 때를 기다렸노라고 솔직히 토로하는 게 좋겠단 말도 전하고 싶습니다. 최소한 그 정도는 돼야 상대로 인정할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애들 말로 ‘잽도 안 된다’는 것들과 상대하다보면 시민운동단체들의 ‘가오’만 상하게 되지요.

최소한의 품격과 논리를 갖추고 상대를 공격해야 아픈 법인데, 지금 이른바 보수 진영의 공격은 실소만 자아내게 합니다. 정부의 사업 공모 절차에 따라 시민단체 간 경쟁과 심사를 거쳐 받은 공익사업 지원금을 ‘보조금’ 운운하며 마치 공짜로 받아 엉뚱한 데 써버린 것처럼 매도하거나,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따라 2008년 선정된 공익사업 지원 대상 중 가장 많은 지원금을 받은 단체는 새마을운동중앙회와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란 사실엔 눈감는 비열한 행태가 대표적이지요. 큰 웃음을 주는 사례도 있습니다. 집회복면금지법이나, 상습시위꾼 리스트 같은 사례는 정말 웃기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비루한 권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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