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12월 2008-12-02   2500

이제훈이 만난 사람_단순소박하게, 청안청락하게




단순소박하게, 청안청락하게



생명평화탁발순례 도법 스님



글    이제훈<한겨레> 통일팀장 nomad@hani.co.kr
사진  김영광사진가 k-photo@hanmail.net



도법 스님과 성미산학교 아이들의 대화가 시작됐다.



–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요?
= 생명이요.


– 누가 생명이라고 그랬어요?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죠?
= (모두  박수)


– 내 친구가 잘할 때 기꺼이 박수를 쳐주는 게 필요하죠.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격려도 해주면서 나도 함께 훌륭한 사람이 돼야죠. 그래요,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어요. 생명이 살아 있어야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컴퓨터도 하죠. 그런데 사람들은 생명의 소중함은 모르고 돈 권력 명예 지식을 좇죠. 그런데 생명을 유지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뭐죠?
= (다들) 자연이요.


– 그렇죠, 물 산소 같은 자연이 중요하죠. 모든 자연이 우리 생명엔 어머니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죠. 물을 마시지 않고 살 수 없고, 공기를 호흡하지 않고 살 수 없죠. 생명이 소중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내 생명의 조건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 다음에 소중한 게 뭘까요? 먹어야 살죠. 컴퓨터를 삶아먹을 수 있을까요? 100평짜리 큰 집, 고층아파트만 있으면 살 수 있을까요?
= (다함께 크게) 아니요.



– 큰 차나 100평짜리 아파트보다 더 소중한 것은 밥이죠. 밥을 먹지 않고는 예수님도 부처님도 대통령도 살 수 없죠. 그런데 밥은 누가 만들어요?
= (여기저기서) 곡식이요. 자연이요. 농부요.


– 그렇죠. 일단 자연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농부가 있어야죠. 여러분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죠? 그러려면 훌륭한 일을 해야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훌륭한 일은 뭔가요?
= (누군가) 나누는 것이요.


–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생명을 살리는 일.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어요. 생명을 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밥이죠. 그러니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 가장 훌륭한 일은 밥을 만들어내는 일이죠. 밥을 만들어내는 일은 누가 하죠?
= (다함께) 농부요.


–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은 생명이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곡식을 생산하는 일이죠.
= (누군가) 그러면 농부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네요.


– 그렇죠. 친구가 맞췄을 땐 어떻게 해야죠?
= (다함께 박수)



세상 제일 훌륭한 일은 생명 살리는 일


도법 스님은 2004년 3월 1일 지리산 노고단을 시작으로 온 나라를 누비며 ‘생명평화탁발순례’(www.lifepeace.org)를 하는 중이다. 성미산학교는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에 자리 잡고 있는,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학교”를 추구하는 도심형 대안학교다. 도법 스님과 성미산학교 아이들의 ‘선문답’은 2008년 11월 13일 이뤄졌다. 이날은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날이기도 하다. 도법 스님과의 인터뷰도 이날 이뤄졌다.


3만 리 길에서 8만 명과 대화하다

왜 ‘생명평화’인가? 스님은 “생명 없는 평화는 있을 수 없고, 평화 없이 생명은 행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럼 왜 ‘탁발순례’인가?

“얻어 먹고, 얻어 쓰고, 얻어 자고 그렇게 다니면서 인생에서 중요한 것,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뭔지 찾고, 소중한 것을 가꾸고,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이를 나누는 것. 예수와 부처, 그분들의 제자들이 그렇게 했다. 그러니까 탁발순례란 얻어 먹고 얻어 자면서 걷고 대화하는 삶이다. 걸으면서는 자기와 대화를 나누고 순례지역에서는 그 동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생명평화탁발순례’는, 도법 스님이 2001년 2월 16일부터 ‘생명, 평화와 민족화합’을 화두로 시작한 1000일 기도의 결과다. 천일기도가 끝나고 이틀 뒤인 2003년 11월 14일 지리산 실상사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평화운동체인 ‘지리산생명평화결사’가 태어났다. 그 이듬해인 2004년 3월 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부터 ‘생명평화탁발순례’가 시작됐다. 스님은 그 즈음 <한겨레>에 보내온 글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탁발순례를 위해 걷는 것, 그 자체가 결과이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 자체가 성과이다.…걷고 또 걷고, 만나고 만난 만큼 생명평화의 씨앗이 온 세상 구석구석에 뿌려진다는 확신으로 그렇게 걸어갈 것이다.”

2004년 지리산권 5개군과 제주 부산 경남 울산, 2005년 전남 광주 경북 대구, 2006년 전북 대전 충남, 2007년 충북 강원, 2008년 경기 인천 서울 등지를 구석구석 누볐다. 그렇게, 지난 5년간 3만 리를 걸었고, 그 길 위에서 8만여 명과 대화했다. 그 길 위에서 많은 이들이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며 순례단의 일원으로 걸었다. 순례는 12월 13일 끝난다.


멋진 말은 있는데, 멋진 삶은 없어

요즘은 생명 평화에 동의하지 않는 이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명 평화와 거리가 멀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들은 것에 근거해 말하고 행동한다. 그게 아니라 구체적 사실과 진실에 근거를 두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지금, 여기, 내 생명’이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절실한 문제에 근거를 두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생명과 평화를 개념이나 논리, 지식, 언어만이 아니라 내 것으로 주체화해야 한다. 평화란 전쟁이나 싸움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게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내 생명이 평화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미움도 대립도 갈등도 없어야 한다. 국가나 사회, 이웃 등 누구를 위해서 한다는 건 부차적이다. ‘지금, 여기, 내 생명’을 위해 하는 게 기본이다. 요즘 세상엔 멋진 말은 있지만, 멋진 삶은 없다. 말과 명분만 있고 삶과 실천이 없다. 이 점에서 현대인들, 특히 종교인과 지식인들이 심각한 성찰을 해야 한다. 자칫하면 자기기만과 대중기만에 빠질 수 있다.”

탁발순례를 지리산 노고단에서 시작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순례를 어디서 끝낼 생각인가?

“현실적으로는 지리산 지역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생명평화탁발순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 현대문명의 반생명성, 비인간성을 성찰해, 싸움과 죽임의 문명이 아닌 살림과 생명의 문명, 대안 문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리산은 우리 민족사의 모든 것을 품어 안은, 민족의 성산이기도 하다. 현대사에서 쫓기는 사람들을 품어 안았고, 산을 찾은 이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안겨줬다. 21세기 현대사회에서 자연과 생태의 가치, 지역 이웃 농업 공동체의 가치처럼 중요하지만 함부로 취급되는 가치가 많이 살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대안을 만들어가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어디서 끝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지금, 여기, 내 생명’을 근거로

5년간 온 나라를 구석구석 다니셨는데, 어디가 특별히 좋다고 생각하시는지, 또 어디 가서 어떻게 사는 게 좋겠는지 추천하신다면?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대안과 희망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삶’이 있느냐다. 살기 좋은 자연환경 등 객관적 조건은 2차적인 문제다. 거기서 이뤄지고 있는 삶의 내용이 아름다운가에 비춰보면 아직은 완성도 높게 이뤄진 곳은 없는 것 같다. 작은 사례를 얘기하고 싶다. 유기농사를 짓는 십여 호가 모여 사는 곳에서 하루 자며 대화를 했다. 70살쯤 된 한 할머니가 이러시더라. ‘나는 배운 것도 없고, 돈도 없고, 재산도 없고, 노동력도 없다. 하지만 함께 사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농사짓고 잘 살고 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이웃 사람들이 나를 버리지 않고 비참하게 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여생이 편안하고 따뜻하고 고맙다.’ 그 할머니 말씀처럼 믿음과 애정, 결국은 이것이 삶을 편안하고 흐뭇하고 넉넉하게 해서, 진정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서울 순례를 시작하며 ‘서울 시민들께 여쭙니다’, ‘이제 자녀와 서울을 떠나십시오’, ‘진정 사랑한다면, 한강을 떠나주세요’라고 쓰신 글을 읽었다. 그 글의 끝에 ‘청안청락(淸安淸樂)하십시오’라는 인사말을 꼭 붙이시던데?

“맑고 깨끗하게 편안하고 즐거우시라는 뜻이다. 청안청락은 삶의 해답이자 만들어가야 할 내용이다. 소유와 승부의 논리는 맑고 깨끗함이 아니다. 너는 모르겠고 나만 이기면 되고 잘살면 된다는 논리가 아니라, 나처럼 너도 편안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5년 동안 걸으며 수련해 얻은 해답은 이렇다. 생활 속에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야 한다. 사회 속에서는 민주주의의 생활화를 이뤄야 한다. 그래야 생태와 인간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게 바로 청안청락이다. 특히 뜻 있는 사람들은 단순 소박한 삶에 맞춰 먹고 살고 집도 짓고 살아야 한다.”




돈타령으론 답을 찾을 수 없다

사람들이 꼭 ‘1등’과 ‘부자’를 원하는 것 같지는 않다. 도태에 대한 두려움에 경쟁에 목을 매는 거 같다.

“정도의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 같다. 추구하는 삶이 단순 소박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늘 상대비교하고 낙오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눈높이를 ‘단순 소박’에 맞추면 ‘지금 정도’로도 괜찮은 생활이 태반일 것이다. 삶의 내용과 목표를 잘 정리하는 게 문제를 풀어가는 기본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돈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경제논리로는 해답이 없다. 내 60년 삶에 철 든 이후로 경제타령 하지 않은 적이 없다. 경제타령은 사기이고 국민기만이다. 경제가 필요하지만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삶의 철학과 방식이 정립되지 않는 한 해답이 없다. 그런데 아무도 이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이 절이든 저 교회든, 이 정치인이든 저 지식인이든 양심과 지성이 너무 빈곤하다. 지식인과 종교인은 반성해야 한다.” 


생명, 삶, 마음을 이어주는 길

지금 지리산 아래엔 ‘국내 최초 도보여행자를 위한 장거리 도보 트레일 코스’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지리산 둘레길이 열리고 있다. 지리산 둘레를 따라 모두 300km, 800리 길을 잇는 게 목표인데, 올해로 90km가 열리게 된다. 지난 4월 길이 처음 열린 뒤로 벌써 4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그 가운데 90%는 ‘다시 오고 싶다’고 했고, 이 길을 찾은 외지인의 50~60%는 수도권에 사는 이들이었다. 이 길의 시초는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지리산권 5개 군을 걸으며 다져놓은 길이었다. 지리산 둘레길을 잇고 열자는 제안도 도법 스님 등이 했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걸어온 길은, 지리산 둘레길처럼 생명을 잇고, 삶을 잇고, 마음을 이어줄 것이다.



도법 스님은 1949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1966년 금산사에서 출가했다. 1990년 불교결사체인 선우도량을 만들어 청정불교운동을 이끌었다. 1994년 종단 개혁과 98년 종단 분규 때에는 산중에서 불려나와 조계종 총무원장 권한대행을 맡아 불교계를 추스르고 개혁에 힘을 보탠 뒤 산중으로 돌아갔다. 실상사 주지를 맡아 귀농학교, 작은학교 등을 열고, 인드라망생명공동체운동을 펼쳤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인도의 간디처럼 생겼다”고 표현하곤 한다. 작은 체구에 비폭력을 외치고 사람을 대할 때에는 부드럽지만 안은 차돌처럼 단단하다는 것이다. 특히 두 발로 걷는 것을 좋아하고. 하지만 그는 산사에서 마주치는 장난꾸러기 동자승을 더 닮은 듯하다.
 순례단의 끼니를 챙겨주던 어떤 이가 차려진 음식에 고기가 있는 걸 보고 걱정했단다. 도법 스님 웃으며 “중이 절문을 나서면 대중이 주는 대로 먹습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 선은 물과 같다고 했던가, 바로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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