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1월 2006-10-31   1136

계급불평등 재생산하는 입시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이른바 SKY 대학에 입학하려면 고소득층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사교육을 받고 강남지역 학교나 외고·과학고 등 특수목적고를 다니다가 일 년쯤 해외어학연수를 다녀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까울까?

[표1]을 보면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관리직·전문직이 차지하는 비율은 18.7%인데 비해 2001학년도 서울대 신입생 중 관리직·전문직 자녀가 차지하는 비율은 52.8%나 된다. 반면 46% 정도를 차지하는 노동자, 농민층의 자녀 가운데 서울대에 입학한 비율은 15.9%에 불과하다. 이렇게 볼 때, 관리·전문직 자녀의 서울대 진학률은 농어업·노동자 자녀의 서울대 진학률보다 9배가 높은 셈이 된다.

[표2]를 보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학생 중 서울 강남권과 특목고 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30%에 달한다. 전체 수험생을 대략 60만 명으로 추정해 볼 때 이 중 약 4.5%(27,153명)에 불과한 강남권, 특목고 학생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입학생의 30%를 차지하는 셈이다.

이렇게 소위 명문대 학생 중 부유층 자녀의 비율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점점 더 심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입시제도의 변화를 들 수 있다. 과거의 입시제도는 매우 단순했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출제되는 학력고사 시절에는 누구나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그 노력 여하에 따라 상위권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입시제도는 매우 복잡하다. 이른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 불리는 ‘내신-수능-대학별 고사’를 모두 잘 해야 상위권 대학 입학이 가능하다. 당연히 사교육의 혜택을 어려서부터 받을 수 있는 부유층의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고, 기댈 언덕이라고는 학교밖에 없는 서민층의 학생들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경쟁을 요구받는 셈이 된다.

갈수록 심화되는 계급불평등

게다가 최근 서울대 및 주요 사립대학에서 발표한 2008학년도 입시안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2008학년도 입시에서 당락의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이른바 통합교과형 논술이다. 그런데 통합교과형 논술은 현행 고등학교 교육과정과는 전혀 무관한 고난이도의 시험이다. 어려서부터 가혹한 입시경쟁에 시달린 나머지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볼 기회가 없었던 학생들은 고액의 논술 학원에서 문제풀이 요령을 배울 도리밖에 없다.

논술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른바 서류 전형 및 구술 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해외유학 경험도 있어야 하고 토익, 토플 등의 영어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놔야 한다.

소위 일류 대학에 입학한 부유층의 자녀는 또다시 사회 기득권층으로 편입되며 반면에 그렇지 못한 서민층의 자녀는 광범위한 청년 실업층 혹은 비정규직 노동자층을 형성하게 된다. 즉,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이 그대로 교육에 영향을 미쳐 학벌을 형성하고 이것이 또다시 계급불평등을 확대재생하는 것이다.

교육을 통한 계급재생산, 이를 조금이라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입시제도의 변화가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학교 교육을 중심으로 한 입시제도가 정착이 되어야 한다. 즉, 학교 교육과는 무관한 논술, 구술면접, 서류 심사 등 일체의 대학별 고사가 폐지되고 학교 교육의 결과가 그대로 반영되는 방향으로 입시 제도가 변화해야 한다.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부여하는 이상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손쉽게 선점하려는 욕구를 끊임없이 지닐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야 입시제도로 왜곡되었던 공교육도 정상화되고,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도 줄어들며, 학생들도 가혹한 입시지옥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대학서열화체제가 해체되어야 한다. 입시교육의 본질은 조금이라도 더 상위권의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욕구, 조금이라도 더 우수한 학생을 조기에 선점하려는 대학의 욕구, 자신의 권력을 확대재생산하려는 기득권층의 욕구이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서열화체제가 해체되지 않는 한 어떠한 입시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이러한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이형빈 이화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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