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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11월
  • 2006.11.01
  • 614
길은 반드시 있다

뭔가 노련한 프로의 느낌을 주는 사람을 만나면 우선 그 살아온 내력이 궁금해진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이인경 사무국장 역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대전에서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을 했다. 노동상담소가 문을 닫자 상경해서 의료기 회사에 잠깐 다니다가 해양수산과 소방 관련 잡지사를 전전했다. 그리고 시민의 신문 기자로 입사했다. 이후 경실련과 시민운동기금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웹사이트 제작 기술을 익혔다. 지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를 6년째 지키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날카로운 인상 때문에 완벽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덜렁대며 잦은 실수를 연발”한다고 평가한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따스하면서도 진지한 눈빛에 금방 매료되고 만다.

“저에겐 두 가지 확신이 있어요. 길은 반드시 있다. 그리고 이인경 주머니에 돈 떨어지는 날은 없다는 거죠.”

위도 아래도 아닌 가운데서 하는 시민운동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총선연대를 모태로 한 개혁연대준비위원회와 경실련이 주축이 된 한국시민단체협의회가 통합되어 2001년 2월에 발족한 기구로 현재는 449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이인경이 그해 말 연대회의에 발을 들여놓게 된 사연은 이렇다.

“발족 당시 연대회의 사무국은 각 시민단체에서 파견한 실무자들로 구성되었어요. 그런데, 1년 단위의 파견 근무제라 총회나 프로젝트 준비가 필요할 때 책임을 맡을 실무자가 없는 경우가 생겼죠. 그래서 상근 실무자를 두기로 하고 사람을 물색하게 된 거죠.”

연대 운동 역사가 일천한 시민운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면서 어려움도 많았다.

“창립 초기에는 시민사회 활성화에 관한 모든 짐을 지고 정치와 사회개혁을 힘 있게 추진하는 강력한 연대체를 기대한 것 같았어요. 하지만, 1년 만에 각자 운동 영역의 안정화가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면서 연대기구 활동을 힘겨워하는 운동가들이 연대피로감이란 말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죠.”

연대회의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다시 진행되었다. 그리고 연대회의는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위해 소속 시민단체의 중간 지원 기능을 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칭 시민사회내의 서포터즈가 되었다.

“연대회의에서 저는 훌륭한 관리자는 아니지만 무던히 버텨주는 그런 사람인 거 같아요. 지지자를 모을 수 없는 사무국 운동이긴 하지만, 연대회의가 우산과 같은 존재라면 그런 자리에 필요한 사람 말이죠.”

시민사회의 균형 발전을 위해

그녀는 연대회의를 꾸리면서 시민사회의 균형적 발전을 화두로 사업하고 고민한다. 먼저, NGO 관련법의 제정과 개선 사업을 벌였다. 2002년 연대회의에 NGO 법제개선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발단은 당시 재경부가 법인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고시하면서 참여연대, 경실련에만 지정기부금혜택을 주겠다고 공시한데서 비롯되었다. 이 위원회 활동으로 대표적인 것은 현재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의 대체법안인 민간공익활동지원법안이 있다. 올 하반기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균형 발전을 저해하는 장벽 중 하나가 중앙집중식 운동방식이다. 연대회의도 이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최근 지방과 서울이 5 대 5의 지분으로 움직이는 것을 내규로 정해 놓고 있다. 그녀는 중앙집중식에서 탈피하여 중앙과 지역 간, 그리고 지역과 지역 간 소통이 원활하기 위해서는 좀 더 창의적인 방식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연대회의가 만든 지역연대정책협의회다.

지역 풀뿌리 운동의 활성화 역시 시민운동의 ‘지역 분산’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다. 또한, 지역 공동체를 회복해가는 일이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가족 친지 이외에는 어디 위로 받을 때가 마땅치 않죠. 또 나와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 해보고 싶은데 그 길을 잘 못 찾는 것이 우리 사회예요. 그래서 지역 사회가 상부상조하고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공동체 작업이 중요해요.”

그래서 구상한 것이 광역단체 권역별로 시민과 NGO활동이 모이는 공간, 즉 시민센터의 설립이다.

“굳이 사무실이 필요하지 않은 작은 단체들이 연락처로 쓰고 회원모임도 하고 행사나 교육 프로그램을 하면서 서로 도울 수 있는 센터가 있었으면 하는 거죠.”

시민운동은 동원 대상이 아니라 동반자

참여정부 들어와 시민사회가 정말 바빴다. 정권의 2중대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주민소환제 사례에서 보듯, 국회가 할 일을 알아서 미리 준비해야 하는 형국이었다. 관료 또한 시민사회를 협치(協治)의 동반자가 아니라 동원 대상으로 보는 전통적 시각을 고수했다. 시민운동가들이 그래서 더 고달팠다.

“의회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손놓고 있으니 시민사회가 그 짐을 지고 있죠. 국회의원들이 미안하다고 해야 할 일입니다. 또 한편, 노무현 정부 들어서 공무원들은 NGO를 책상 위 장식용 꽃처럼 대했죠. 시민단체들은 구체적인 사안을 가지고 접촉하는데 아직도 공직사회에서는 ‘의견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혹은 ‘참조하겠습니다’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요.”

그녀는 협치에 대한 정부의 ‘자각’이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제 국가는 시민사회에서 창의적인 동력을 끌어내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려워요. 시민이 공익을 목적으로 국가와 파트너십을 가지고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기조를 유지하려면 시민사회의 균형 발전을 위한 환경 개선에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합니다.”

그녀가 보기에 시민사회를 동원 대상으로만 보아왔던 독재적 환경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연대회의가 정부와 함께 한시기구인 시민사회발전위원회를 만들고 그와 관련된 정책제안을 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시민운동가들 안에 ‘만연한’ 위기론은 그녀가 볼 때 계기가 있을 때마다 있어오던 것이다. 격변기마다 상대적으로 일할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시민사회에서 전문성이 축적되기 전에 다른 곳(?)으로 이전해서 생기는 인적 공백이 그것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근본적 위기는 소통 부재에서 오는 것들이다. 우선 시민운동조직 간의 소통이 문제다.

“시민운동이 그물처럼 네트워크를 강화할 필요가 있어요. 극우와 극좌가 아니라면 필요에 따라 소통하고 만나는 식의 그물망이 효과적으로 작동해야 하는데 지금은 끊어져 있는 것 같아요.”

운동단체 내 소통 부재도 심각하다. 어느 단체나 활동가의 책상에 자료가 많이 쌓여 있어도 그 사람이 떠나고 다른 활동가가 오면 처음부터 다시 일을 해야 하는 낭비는 반복되고 있다. 시민운동가와 대중과의 소통도 쉽지 않다.

“운동권이 이야기하면 통역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어요. 일반 시민과 접촉하며 사용하는 언어들이 딱딱하고 거칠어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귄위적으로 비춰질 것 같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이 위기를 타개할까.

“시민운동 스스로 재정이 빈약한 단체 실무자를 돕기 위한 상조회도 만들고 내부에 전문 인력을 축적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밖에서 위기가 와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연대회의도 할 일이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시민사회의 튼실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개별단체로는 불가능한 광범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정보 공유를 위해 정보도서관을 만드는 일도 욕심이 난다.

활동가들이여, 행복한 운동을 하자



연대회의는 해마다 시민운동가대회를 연다. 이인경에겐 준비 작업에서 한발 물러선 올해 대회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풀뿌리 시민운동 사례를 들으면서 감동해 울었죠. 시민운동가들과 흉금을 터놓고 얘기할 기회도 있어 좋았어요.”

이번 대회의 구호 ‘활동가, 행복을 상상하라’는 그녀의 제안이었다.

“활동가들이 사회적 행복을 고민하면서 자신의 행복은 잊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에서 만들어보았죠. 무겁고 차가운, 어렵고 딱딱한 운동을 행복한 운동으로 바꿔보자고 이렇게 정한 겁니다.”

‘돈 떨어지고 몸은 힘들고 일은 안 되고 직장이니까 스트레스도 받는’ 시민운동가들에게 보내는 그녀의 애정이 가슴을 따스하게 한다.
김정인 참여사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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